종종 DH가 쏟아내는 날 것의 말과 감정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아이들이야 정제되지 않고 세련되지 않은 말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는 하지만 이제 DH는 '어려서 그래요'로는 넘기기 쉽지 않은 어린이의 모습으로 서 있다. 그래서 공공장소의 DH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DH는 엘리베이터에 탄 머리숱이 없는 아저씨를 향해 해맑게 말을 건넨다. "아저씨 대머리예요?" 아저씨는 민망함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DH는 계속 말을 건넨다. 말리는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아저씨 대머리예요?" 상대 마음을 잘 모르는 아이. 말리다가 말려지지 않자 결국 내가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DH의 이러한 타깃은 종종 내가 되기도 한다.
그날도 DH와 편의점에 간 참이었다. DH가 먹고 싶다는 과자가 있어서 텀블러에 마시던 커피를 들고 나왔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늘 나보다는 아이가 먼저 보이는 탓에 내 손에 커피가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다른 과자를 막 집어 들려는 DH를 말리다가 텀블러가 기울어지며 커피가 몇 방울 바닥에 떨어졌다. 신발로 쓱 하고 닦으면 감쪽같을 양이었다. 그 순간 DH가 큰 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커피 흘렸어요!"
"DH야! 쉿!" 순간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이를 막아섰다.
그러자 더 큰 소리로 아이가 말한다.
"왜? 엄마가 잘못했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나 작은 양심의 가책 하나쯤은 느끼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나조차도 외면하고 싶은 모습일 수 있다. 나의 아이에게는 더 그러하다. 나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설사 그러한 모습을 보였더라도 모르는 척 넘어가고 싶다. 하지만 DH 앞에서는 그게 되지 않는다.
얼마 전 DH와 같은 경계성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친구인 WB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등굣길에 만난 선생님을 향해 "선생님 냄새나서 싫어. 학교 안 갈래"라고 말했다고,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는 하소연이었다. 선생님이 입냄새가 좀 났던 모양이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이건 상대가 싫어서가 아니다. 아이에게는 사실을 말하는데 무슨 문제인 건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수치스러울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뱉어대니 세상이 아이를 고운 마음으로 봐주기 어려울 것 같은 우려가 생긴다.
오늘도 DH는 나의 사사로운 실수를 대면하게 했다. 아이에게 수학 문제를 설명하다가 답을 잘못 알려준 것이다. 사칙연산의 실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놈 그런 것에 대한 눈치는 기똥차다.
"어! 아니다. 다시 말할게"라는 말에
"왜? 엄마가 틀렸어?"
한숨이 나온다. 오늘은 이러한 나의 감정에 대해 말해줘야 했다.
"DH.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말하면 안 될 때가 있어. 그러면 기분이 나쁘거든. 지금은 엄마 기분이 나빠"
"왜? 기분이 나쁘면 어떻게 돼?"
아이를 이해시키겠다고 시작한 대화는 끝나지 않는 도돌이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순간순간들에 대해 매번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참 어렵기만 하다. 과연 아이가 이해를 하게 될 순간이 올까도 궁금하다. 내 평생의 숙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