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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Sep 12. 2019

손칼국수

날씨가 우중충한 날 저녁이면 아랫집 혹은 옆집에서인가 그 집의 메뉴가, 저기압에 눌린 공기층에 실려 내 코끝을 스칠 때가 있다. 김치찌개거나 고등어조림이거나 아니면 동태전이거나... 그날의 음식은 혼자라 저녁을 간단히 해치우는 나에게 추억을 자극하듯 사람 사는 냄새로 심화된다. 안 그래도 낼모레면 추석이라 또 한동안은 이러 저런 음식 냄새로 보름달 만큼이나 그득할 것이다. 우리 집만 썰렁하겠지만.


옛날 누나들까지 6인 가족이 한 지붕 밑에 북적일 때, 그러니까 일요일 저녁 즈음이겠다. 온 가족이 다 모였다 싶으면 가끔 엄마는 무슨 대단한 결심을 하신 듯 밀가루에 콩가루에 소금에 한 사발의 냉수까지, 널따란 신문지를 쫙 펴고 그것들을 모아 놓은 다음 두 팔 걷어붙이고 커다란 볼에 한데 섞어 반죽을 시작한다. 숨어 있는 미세 공기조차 용납 못한다는 결기로 온 체중을 실어 반죽과 씨름하니 30분 후의 승자는 엄마요 패자는 맞아서 부었는지 딴딴해진 반죽이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쫀득한 면발을 상기하며 군침을 흘리게 마련이다. 아버지의 면발 사랑에 엄마의 솜씨가 늘었던 건지 아님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덧 칼국수는 휴일 저녁 우리 집 밥상의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휴일 아침은 불고기가 그랬던 것처럼.


동네 국숫집에서 대나무 틀에 말린 가늘거나 굵은 면을 사다 끓이면 될 것을 엄마는 왜 그리 힘든 노동을 자처하신 걸까. 어디 반죽뿐인가. 그것을 기다란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밀가루를 수시로 뿌려가며 박달나무 홍두깨로 반죽 덩어리를 밀어야 한다. 둥그런 반죽을 가장자리부터 돌려가며 밀면 처음에는 밀짚모자처럼 가운데만 볼록해지다가 결국 밀대에 모든 것이 밀려 밑에 깔려있는 신문지보다 넓으면서도 얇은 종잇장이 돼버린다. 밀대를 굴리는 엄마의 손동작과 체중을 실은 듯한 몸동작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활기찬 폴카의 2박자 리듬을 탄다. 그때 흘린 땀방울이 반죽에 떨어졌어도 그것은 맛을 더하는 조미료가 될 터이다. 음식에는 손맛이니까.


종잇장 반죽을 잠시 말리는가 싶더니 겹겹이 접은 다음 이번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썰기에 들어간다. 균일한 굵기로 써는 것은 그야말로 국수에 '칼'자가 들어갈 만큼 모든 과정의 백미요 클라이맥스였다. '서걱서걱' 리드미컬하면서도 신속한 손놀림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마복림 떡볶이의 비법과는 다른 차원이다. 누설하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음식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과 오랜 시간이 버무려져야만 얻게 되는 결과물인 것이다. 동네 국숫집을 밀어내고 유명 브랜드의 면이 마트에 널려 있는 요즘엔 오히려 쓸모없는 기술이 되었지만.


두 시간여의 진통 끝에 완성된 칼국수는 일요일 저녁 우리 식구 모두를 밥상으로 모이게 했지만 주방은 밀가루며 각종 식재료나 식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난장판이 된다. 주방은 주부의 전용인 만큼 치우는 것도 주부의 몫이었을까. 우리는 벌써 후루룩후루룩 거려도 엄마는 여전히 달그락달그락 하신다. 온 가족이 다함께 먹을 때만 펼치는 커다란 밥상에서 엄마의 빈자리는 우리의 맛난 소리에 묻히고 만다. 배불리 먹고 물러난 뒤, 뒤늦게서야 먹는 엄마의 모습에 많이도 드시네라는 착각을 할지언정 고마움은 몰랐다.



성인이 된 어느 날 문득, 그때의 칼국수가 그리웠다.  마침 여친도 집에 놀러왔겠다 자랑도 할 겸 엄마에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엄마는 그깟 칼국수... 하시면서 흔쾌히 예의 그 '대단한 결심'을 보이며 작업을 시작하였다. 십여 년을 훌쩍 넘긴 공백이 있었지만 그 이상의 세월을 만들어봤기에 엄마나 나나 그 실력이 어디 갔겠냐는 확신을 가졌고 그것은 옆에 있던 여친에게 기대감으로 전이됐으며 누워있던 아버지는 뭐, 칼국수? 하면서 벌떡 일어나셨다. 모두가 칼국수의 기치 아래 대동단결, 두 시간여의 협동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보던 신문을 깔아주셨고 나는 체중 실어 반죽을 하였고 여친은 호박이며 양파, 풋고추 등의 식재료를 준비하였다. 엄마는 식탁에 앉아 밀가루와 콩가루, 소금과 물의 계량을 시작으로 잔소리를 양념 삼아 모든 과정을 총괄하였다. 반죽에 이어 밀대로 밀 때쯤부터 잦아드는 엄마의 잔소리에 분위기는 진지해지며 나는 칼국수의 팔 부 능선을 넘는구나 생각했다. 얇게 펴진 반죽을 겹겹이 접어 도마 위에 살포시 놓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소임은 끝이 났다. 깨끗이 씻은 칼을 여친이 도마 옆에 놓았을 때 드디어 오늘 하이라이트의 주인공, 엄마는 분연히 일어나서 도마 앞에 정좌했다. 그리고 썰었다. 서걱서걱... 반죽이 잘릴 때마다 풍기는 밀가루 내음이 나의 시장기를 자극했다. 그런데...


삐뚤빼뚤...


엄마의 칼질은 옛날의  솜씨가 아니었다. 그리고 당당하고 활기찼던 옛날의  표정도 아니었다. 역시 땀을 흘리고 있었으나 그때의  땀방울도 아닌  같았다.  이렇게 안되지? 하는 허탈과 실망에서 오는 식은땀이었을까. 분위기는  진지해지며 모두가 엄마를 주시했다. 녹이  칼질을 시작으로 결국 그날의 칼국수는 예전의 맛을 재현하지 못했다. 쫀득하지 못한 면발의 식감과  같은 국물, 콩가루 향이 날듯 하면서도 밀가루 맛을 잃지 않는 절묘함도 없었다. 그것은 그냥 칼국수였다. 비교가 되는  맛을 경험하지 못한 여친만이 맛있다고 했었던가.


그때 나는 알았다. 사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뇌졸중을 앓고 계셨다. 발병 시점부터 엄마는 칼국수처럼 모든 것이 예전만 못한 내리막의 길을 걸으셨던 것이다.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활달했던 말투며 민첩한 손놀림이며 세세한 기억력까지, 단 변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식구들에게 뭐든 맛있게 먹이려는... 의욕뿐이었다. 그 의욕이 이제는 불편해진 육신에 갇히게 되었고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날의 칼국수는 이래저래 맛이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엄마가 너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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