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걱정이네요.
하룻밤 휴식을 위하여 잠잘 공간은 소중하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은 더 그러하다.
도서관에 갔더니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예전에 읽었지만 가물가물하여 다시 골랐다.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리즈 머리,다산책방,2013)라는 책이었다. 리즈는 어린 나이에 길 위에 나 앉게 된다. 잠잘 곳을 찾아 이리 저리 헤메며 다닌다. 친구집에서 며칠 잘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생활을 하는 그녀를 보니 문득 내 지난날이 생각났다.
결혼을 하고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한다고 서울로 오르내리던 시절, 버스를 타고 3시간 30분을 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40분 거리의 학교에 갔다. 이틀 연속으로 수강신청을 잡았다. 서울로 올라 온 김에 강의를 몰아서 듣기 위해서였다. 목요일 강의를 듣고 그날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는 잠잘 곳이었다.
모텔을 잡아서 잘 수도 있었지만 너무 싼 곳은 불안하고 비싼 곳은 부담이 되어서 선택한 곳이 찜질방이었다. 학교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있는 곳이었기에 적당했다. 아는 언니가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학교와 거리도 멀고 매주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낯이 뚜껍지 않은 내가 문제였다. 아마 언니에게 내 사정을 말하면 얼마든지 자고 가라고 했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닌 매주 부탁 할 수는 없었다. 몸이 조금 불편한 것은 감수할 수 있었다. 찜질방은 가격도 저렴했고 따뜻해서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잠만 자면 되니까 괜찮았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날도 학교에서 늦게까지 책을 보고 찜질방까지 걸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 쉬다가 여성 전용방으로 이동하여 자리를 폈다. 아마 가을쯤이지 싶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다가 옆에 두고 잠이 들었다. 옆으로 몸을 살짝 돌려서 잤던 것 같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누군가 나를 건드리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뭐지 하는 생각에 눈을 떴다. 아저씨가 내 몸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상태로 눈이 마주쳤다. 어? 여긴 여성 전용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놀라 일어났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후다닥 일어나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일어나 한참동안 멍한 상태였다. 혹시 내가 잘못 들어온 것인가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주위엔 다 여자분들이 자고 있었다. 남성전용 숙면실은 옆이었다. 들어오는 입구 두 개가 크게 뚫려 있으니 이상한 남자가 들어 올 수도 있는 구조였다.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다. 아침에 나가면서 관리자에게 어제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집으로 내려와서 찜질방에서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선뜻 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내 잘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생각한 방법은 일인용으로 만들어진 토굴에서 자는 것이었다. 토굴은 혼자 들어가면 딱 맞는 구조라 약간 갑갑해 보이기도 하고 갇히는 느낌이 있어서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또 그런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들어가서 안전한 게 나을 것 같아 눈 질끈 감고 들어갔다. 토굴에 들어가고 나서 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울로 오르내리면서 새삼스레 편히 누울 공간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아들의 친구나 아는 형이 아들 방에서 자고 가도 되냐는 말에 안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