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버님의 전화
어제는 금요일이었으니, 저녁으로 치킨과 맥주를 마셨다.
추운 날씨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다. 밖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날수록 에너지는 사라지고 있다. 치킨을 먹으며 하루의 일상을 나누고, 힘겨운 하루를 토닥였다.
맥주 한 잔에도 취기가 올라온다. 허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몸이 술을 원하지 않고, 그렇게 취하는 상황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남편은 술이 들어가면 자는 스타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무리하고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침대로 들어갔다.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고 쓸데없는 잡념이 따라왔다.
‘오늘은 나도 일찍 자야겠다.’
하고 누우려고 하는데 아주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 큰일이 난 건 아니겠지.’
한참 망설이다가 받았다.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한 거 아닌가요?”
“아니 괜찮습니다. 아직 안 잡니다. 어쩐 일이세요?”
시댁은 제사를 일 년에 한 번 지낸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제사를 합친 것이다.
합쳐서 제사를 지낸 지 꽤 되었다.
결혼을 했을 때는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 제사를 지냈고,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세 번이 되었다가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네 번이 되었다.
형님은 네 번의 제사가 힘들다며 합치자고 했다. 마침 아주버님의 퇴직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시누들은 합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최자가 아주버님과 우리니까 따라와야 했다.
시누들의 볼멘소리가 있었고, 둘째 시누는 2년 정도 제사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네 번의 제사가 한 번으로 합쳐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제사에 오지 않던 시누가 오기 시작했다.
시누가 네 명인데 큰 시누는 멀리 있고 연로해서 오지 않고, 셋째는 어머님 돌아가실 때부터 왕래를 멈추었고, 둘째와 막내 시누만 참석한다.
제사 때 오랜만에 형제들이 만나는 건 좋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형님 입장에서는 분명 힘이 든다.
나는 제사에 올려지는 튀김과 전 종류를 준비해 간다.
동서는 식당을 하기 때문에 제사가 오면 일이 두 배 늘어난다.
“집 사람이 요즘 힘도 들고 해서 제사 때 그냥 식당에서 만나 얼굴을 보는 걸로 하자고 하는데 제수씨는 어떻습니까?”
“예.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아주버님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형님과 아주버님은 제사 문제로 한참 실랑이를 한 모양이었다.
아주버님도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말에 처음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의견을 들어보니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이 꽤 되고, 동서가 힘들다고 하니 그렇게 했으면 한다고 했다.
문제는 두 시누가 어떻게 나올 것이냐다. 분명 화를 내고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문제이다.
제사란 무엇일까.
돌아가신 분을 기념하고 생각하는 날이다.
누구는 그 기념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고생하고, 누구는 잠시 절하고 봉투를 내민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 몇 시간을 위해 며칠을 고생한다.
살아있는 형제들끼리 오순도순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되기는 쉽지 않다.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작년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올해 제사를 지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버지가 있으니 내 의견을 내 세울 수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는 두 분의 기일을 좋은 식당에서 형제들 얼굴 보며 즐거운 시간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동생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못 할 수도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형제간 끼리의 연도 느슨해지는 건 맞다.
현재 시댁 식구들이 만날 일은 거의 없으니까.
결혼식이나 조문이 생길 때 만나는 게 전부다.
아주버님과는 일 년에 적어도 서너 번은 보지만 갈수록 줄어들 확률이 높다.
제사를 지내기보다 함께 얼굴을 보고 밥 먹는 걸로 하자고 하면 한바탕 난리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흐름은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아주버님의 힘겨운 전화와 시누들의 화난 말들이 들리는 기분이다.
이제 제사는 추억하는 자리로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