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상이 Aug 26. 2023

나의 아르바이트

- 추억의 오락실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가 있고, 하라고 하면 하기가 싫어진다. 나 역시 그러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청개구리 심리는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학에 입학하고 1년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놀았다. 집에 일찍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 과 MT, 동아리 모임, 학과 활동 등 모든 곳에 내 에너지를 쏟고 다녔다. 다행히 집에서는 그러려니 하고 지켜봐 주었다.


 1학년 겨울방학 즈음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도 하고 싶었다. 집에서는 하지 못하게 했다. 집에는 알리지 않고 몰래 제과점(당시엔 석빙고라는 이름의 유명한 제과점이었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제과점엔 빵 종류가 많았다. 빵 이름과 가격을 다 외워야 했다. 지금은 기계로 바코드를 찍으면 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제과점의 빵을 자주 사 먹었으면 조금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매점에서 고르케나 팥빵이 전부였던 나에게 다양한 종류의 빵 이름을 외우는 건 쉬운 건 아니었다. 제과점의 사장님은 좋으신 분이어서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대견하게 생각하여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 불행히도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했다. 집에서 알게 된 것이다. 


 '그냥 하게 두지 왜 못 하게 하는데?' 라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을 하기 보다 공부만 했으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알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커피숖이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러다 두 번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오락실이었다. 대학 4학년 2학기쯤이다.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어서 시간이 많았다. 다들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데 뭔 생각으로 오락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까. 아침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였다. 내가 할 일은 동전을 바꾸어 주는 일이었다. 천 원짜리를 기계에 넣으며 백 원짜리가 나오는 기계가 있었지만 자주 고장이 나고 만 원짜리를 천 원짜리로 바꾸어 주기도 했다. 오락실 사장님이랑 함께 출근하여 문을 열고 간단하게 청소를 한 후, 조금만 방에 들어가서 동전을 바꾸어 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방 안에서 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괜찮았다. 가끔 친구들이 와서 놀다 가면 사장님은 점심을 사 주었다. 오락실 사장님은 기술이 좋아서 오락기가 고장 나면 직접 수리를 했다. 지금은 PC방이라고  하지만 당시엔 ‘갤러거’, ‘테트리스’, ‘격투’하는 게임이 있는 오락실이었다.  


 그때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오락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을 때는 그만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뭐 오락실? 당장 그만둬.” 라며 야단을 칠 줄 알았는데 그냥 알겠다며 잘해보라고 하셨다. 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이해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미리 얘기를 했을 수도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오락실 아르바이트는 그만두었다. 그만둘 때 사장님은 선물을  주었고, 멋진 레스토랑에서 점심까지 사 주셨다. 그냥 아르바이트생인데 너무 잘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결혼을 하면서 다시 고향에 내려와 그때의 오락실을 가 봤지만 이미 다른 점포로 바뀐 후였다. 내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할 때마다 그때의 내가 생각이 나고, 그때의 사장님이 떠오른다. 


 사회는 매운 곳이지만 사장님들이 내민 손길은 따뜻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그런 온기가 필요하다.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어른의 애정과 지혜가 전해져야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그들을 어리다고만 볼 게 아니라 잘 자랄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시선과 배려가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찰나의 즐거움과 양다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