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수학 시장에서 고객들이 바라는 것은 '점수'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단기간으로 얻는 점수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 학원이다. 그렇다면, 입시 수학 학원의 역할은 유형을 빠르게 정리하고, 그 유형을 암기시키는 것이다. 어차피 고난도 문제라는 것도 해부해 보면, 몇 개의 유형의 합성이기 때문에, '고난도 문제를 풀려면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라는 말은 맞지 않는다. 진짜 사고력을 판단하는 문제는 아이큐 테스트이지, 수능이나 내신에 나오지 않는다.
자, 이제 '사고력,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여러 시도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창의력과 사고력은 근본적으로 slow thinking에서 나온다. 천천히... 여유롭게.. 몰입하며 사고의 재미를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은 미리 공식을 알아버리고, 배워버린 다음에는 이미 사고의 근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 1부터 100까지 합을 구하는 법을 고민해 보지 않고, 그저 가우스가 발견한 합의 원리를 알려줘버린다. 혹은 등차수열의 합 공식을 알려준다. 학년마다 주어진 고민의 과제는 그저 선행으로 답을 알아버리고, 사고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현재 선행 열풍과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조급증 등으로 인해 사교육에서 '천천히'는 절대 시도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성과가 단기간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학부모들은 당연히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게 이 바닥 생리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던가. 천천히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인데, 학원가는 반대로 흘러간다. 남의 돈을 받는 업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
사고력, 창의력 수학을 추구하는 학원은 망할 것이고, 정리 및 주입을 잘해주는 학원은 성공할 것이다. 학원의 탓이 아니라, 빠른 점수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며, 그 고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학원은 생존하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점수를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문제이다.
또한,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협소한 땅과 자원을 가진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인적자원'이고, 이것의 가치를 높게 쳐주는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상황 때문이며, 역사적으로는 과거시험 합격으로 인해 인생이 역전되는 고려~조선시대로부터 줄곧 이어져 온 '오직 공부만이 살길이다'라는 마인드가 DNA에 각인되어 있는 우리나라는 유독 세계적으로 '학구열'이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학벌'이 곧 '신분'이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고, 입시에 실패한 90%의 대다수들은 20살을 지나며 '실패'라는 것을 통과의례로 경험한다. 그런 이들이 자라서 아이를 낳으며, 자신의 '패배감'을 자식들로부터 보상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발생한 것도 한몫한다.
결국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의 문제도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이며, 전 국민의 의식(학벌주의)이 바뀌지 않는 한, 적어도 100년간은 사교육은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상을 반영한 사교육 시장에서는 '천천히'가는 교육은 절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