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도착했다.
대기실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이렇게도 많았는가.
하지만 내가 가장 아파보였다.
다른 사람의 아픔은 보이지 않았다.
타인의 마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힘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모험하고 있었다.
아이를 앉히고 싶었지만 그럴 힘 조차 없었다.
나는 왜 여기에 온걸까?
살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걸까?
아이를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리고 오는 엄마들의 마음이 모두 다 이러할까?
아니면 나만 유독 나약하게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걸까?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저 아이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렸다.
아이의 코에서 투명한 콧물이 줄줄 흐른다.
나도 목이 간질간질 아프다.
병원에 갔더니 대기번호가 19번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접수를 해놓고 다른 곳에 갈 수 있다.
내 차례가 되면 알람이 온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작성하고 근처 미용실에 갔다.
머리를 자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아직 9번이다.
그래도 괜찮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조용히 소파에 앉아
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더 이상 아이를 원망하지 않는 이 순간이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