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영혼과의 조우 - 1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 이상을 말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음은 무엇인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답 또한 내 경험의 테두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다행한 것은 내가 꽤 다채로운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고,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볼 기회 또한 충분히 누렸다는 것이다.
그 경험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경험은 나의 세계가 광속으로 확장되었던 지난 20년가량의 시간 동안 일어났다. 경험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삶과 정신의 변화를 동반한다. 그래서 그 기간, 나의 육체는 줄곧 좁은 영역을 맴돌고 있었지만 나의 정신은 빅뱅에 버금갈 만한 변화를 겪었다.
지금부터 기록할 이야기도 바로 그 시간, 다시 말해 나의 의식이 놀라운 확장과 상승을 경험했던 시간에 관한 것이다.
이륙의 시작
이십 년 전의 나는 지독한 염세주의자였다.
카뮈는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도 신통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니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고, 살아야 하니 견디는 것일 뿐.
젊은 시절, 나의 인생관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적어도 내 인생관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일어나던 그 날까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생각을 근본부터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
그 날이 잊지 못할 날이 된 것은, 그 날 ‘전생 퇴행’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호기심이 동했고, 마침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무렵이라 더 관심이 갔을 뿐이다. 그런데 별 뜻 없이 신청한 그 경험이 나의 인생관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남겼다. 정말로 전생을 믿어 버리게 된 것이다.
나중에 나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친구는, ‘너의 뇌가 창작해 냈을 그 이야기를 정말로 믿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것은 정확히 그 경험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사자였던 나는 알 수 있다. 그것은 창작이 아니었다. 또 설사 창작이었다 해도 중요하지 않다. 창작이든 환상이든, 핵심은 그 경험이 내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는 데 있다.
내가 전생 퇴행을 신청했던 곳에서는 마음을 괴롭히는 몇 가지 질문을 적어 내면 그와 관련된 생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도 몇 가지 질문을 적었는데 그 중 하나는 ‘무시 당하는 느낌’에 관한 것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유달리 무시 당하는 느낌에 예민한 편이었다. 작은 일에도 무시 당하고 있다는 자극을 받았고, 한 번 자극이 되면 필요 이상으로 기억을 반복하며 마음을 힘겹게 했다. 그래서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몇 번의 생을 떠올린 후에 드디어 그 생을 볼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감은 눈 위로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펼쳐졌다.
그 생에서 나는 어느 나라의 공주였다. 태어날 때부터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보호가 필요했지만,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어 막대한 지참금과 함께 이웃 나라로 보내졌던 모양이다.
처음 떠오른 모습은 무도회장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나를, 아니 그녀를 맞이한 것은 단단하고도 차가운 냉대였다. 걸어가는 내내 구경거리를 바라보는 듯한 수군거림이 들려 왔고, 왕 앞에 섰을 때는 곁에 늘어선 정부情夫들이 보내는 ‘너는 허수아비에 불과해’라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느껴졌다. 무도회가 끝날 때까지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구석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년에 이른 그녀는 결국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인기피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잠옷 차림으로 아무렇게나 자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침실 구석에 웅그리고 앉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마음이 21세기 서울의 어느 구석에서 낮은 뇌파 상태에 빠져 있던 나에게까지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저런 인생이었다면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생길 만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 ‘왜 그런 삶을 살아야 했는지 영혼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안내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지시대로 질문을 되풀이해 보았을 때, 놀랍게도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분명하고도 또렷한 목소리였다.
“무시 당하는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은 바로 그 한마디였다. 타인을 무시하지 않는 영혼이 되기 위해서 무시 당하는 삶을 경험하고 싶었다는 답, 그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답이 아니었다. 나는 이전에 한 번도 그런 관점으로 삶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이런 답은 정말로 수많은 생을 산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답인 것 같았다. 혹시 정말로 영혼이, 윤회가 존재했던 것일까?
형이상학의 힘
이런 종류의 경험에 대해, 과학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뇌의 특정한 상태에서 발생한 환상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경험해 보면 안다. 그것은 꿈도, 일시적인 환상도 아니다. 그것은 분명 무의식 어딘가에서 솟아오른 기억이며, 그 기억은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선명한 자취를 남긴다. 꿈을 꾸었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대개 뚜렷한 인생의 변화를 겪게 된다.
사실 당시에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정신적 고갈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아무 것에도 의욕이 나지 않았고 굳이 의욕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수많은 ‘살아야 할 이유’를 이야기했지만, 어느 것도 생을 이어가기 위해 쏟아야 할 에너지와 그로 인한 피로감을 이길 만큼 솔깃하지 않았다. 만일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의무감으로 근근이 생을 연명해가고 있던 그 때, 내게 새로운 형이상학적 메시지가 날아든 것이다.
‘삶은 육체의 시간이기 이전에
영혼의 여정입니다.
비루하고 힘겨운 생마저
영혼에게는 의미있고 보람있는 경험입니다.’
내 안에서 불현듯 솟아난 그 메시지는 이후 하나의 파문이 호수 전체로 번져가듯이 내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인생의 목적이 반드시 ‘행복이나 편안함’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내 인생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평가하게 했다.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애써 물었다. ‘이 힘겨움의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 무엇을 배우려고 이 경험이 필요했을까‘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것은 내 삶에 어떤 논리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회고록을 남긴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살아야 할 이유와 목표가 정신력의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고 역설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조차도 살아야 할 이유를 자각한 사람은 희망을 잃지 않음으로써 고통을 견뎌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사람은 죽음에 앞서 정신이 먼저 무너지는 파멸을 겪었다는 것이다.
수용소에 갇힌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말하자면 그 관문을 통과한 셈이었다. ‘생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던 철석같은 믿음이 ‘인생에 다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으로 변한 순간, 그 어떤 논리로도 부수어지지 않던 굳은 허무와 무기력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동안 자연스럽게 생의 의지도 회복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나는 형이상학의 힘을 실감하게 되었다. 카뮈는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고 물었지만, 나에게는 인생이 정말로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로 보였다. 그 결론에 따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염세주의를 유보하고, 대신 영혼에 대한 탐구에 나섰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것이 20년이상 지속될 긴 여행이 될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 줄 비행기는 이미 이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