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읽는 책 │노랑이 잠수함을 타고
홀로 먹고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아빠였습니다.
이상하죠.
평소에는 늘 아빠보다 엄마를 먼저 찾았거든요.
힘든 일이 있을 때나, 배가 고플 때나,
마음으로 먼저 그리는 사람은 아빠보다 엄마였어요.
그런데 회사를 다니고, 홀로 나를 먹이고 키우는 모든 과정에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얼굴은, 아빠였습니다.
같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아빠의 뒷모습들이,
홀로 살기 시작하면서 자꾸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아빠보다는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어린 제가 깨어있는 시간에 아빠는 언제나 일터에 있었고,
꿈나라에 가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엄마와 가까워졌습니다.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종알종알해도,
엄마는 그 친구를 기억하지만
아빠는 내가 몇 학년 몇 반이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공감 보다는
자꾸 아빠의 시선에서만 이야기하는 모습에
때로는 차마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쌓이곤 했죠.
섭섭함이 쌓이면서 아빠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 엄마가 있어야만 곧잘 대화를 하곤 했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아빠와 눈 마주쳤던 시간이 많았는데,
어린 제가 자라고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눈보다는 등을 더 많이 마주하기도 했었습니다.
선물 받은 <노랑이 잠수함을 타고>를 읽으며
아빠와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
때로는 내가 아니라 네가 맞을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시간,
시간과 함께 변하는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
우리에게 필요했던 모든 시간을 떠올려 봅니다.
<노랑이 잠수함을 타고>은 엄마가 일하러 나간 휴일,
아이와 아빠가 할머니 댁으로 놀러 가며 시작됩니다.
할머니가 아빠에게 고장 난 전기밥솥을 봐 달라고 부탁하자,
할아버지는 대뜸 잘못하면 망가진다고 핀잔을 놓습니다.
운동을 하는 할아버지에게 아빠는 그러다 다치신다며 잔소리를 하죠.
순간 집안 분위기가 얼어붙었습니다.
“왜 할아버지랑 아빠는 자꾸 싸워요?”
“아빠 어렸을 때 사이좋았어. 둘이 같이 놀고 같이 자고 그랬어.”
옛날 사진을 보면 할아버지와 아빠가
정말 지금의 아빠와 아이의 모습처럼 다정해 보여 놀랍니다.
특히 바닷가에서 노랑이 잠수함을 타러 간 할아버지와 아빠는 정말 행복해 보였거든요.
그리고 아이는 말합니다.
“할머니, 우리 노랑이 잠수함 만들어요.
아빠랑 할아버지랑 타고 놀라고요.”
아들은 아빠와 할아버지를 노랑이 잠수함에 초대하고,
그들은 노랑이 잠수함을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 잊고 있던 날들을 기억해 냅니다.
우리가 등을 맞대고 있느라 잊고 지냈던,
눈을 맞추던 다정한 때를요.
<노랑이 잠수함을 타고>를 읽으며
아빠가 가진 어떤 딱딱함은
어쩌면 삶의 형태가 주는 모양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켜야 하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
하나씩 입고 있는 딱딱해지는 껍질들처럼요.
우리는 때로 이 껍질 때문에
소중했던 기억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잠시 잊곤 하니까요.
동화책을 읽는 내내 아빠의 뒷모습이 떠올라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아마, 이젠 제가 어른이 된 탓이겠죠.
아빠가 입고 있던 그 투박했던 껍질을 발견할 수 있게 된
이제야 어른이 된 탓이겠죠.
우리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이렇게 서툰가 봅니다.
동화책이지만 어른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작고 연약한 것들이
가장 단단하고 딱딱한 것을 이기기도 하니까요.
아빠가 보고 싶은 밤,
책을 덮고 아빠에게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밥은 먹었냐고,
요즘 건강은 어떻냐고.
그리고 보고 싶다고요.
언제까지나
지금을 기억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밤에 읽는 책
마음이 쓸쓸한 어느 밤,
침대에 앉아 읽기 좋은 따듯한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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