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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 Feb 02. 2020

제사란 무엇인가?



#1. 제사란 무엇인가?


아주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해주셨다.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나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늘 독차지했다. 아주 어렸을 때 내 사촌형제들은 놔두고 나만 데리고 나가셔서 맛있는 것을 사주셨던 기억도 난다. 할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신 것을 알았을 때, 이불에 파묻혀서 왜 하필이면 우리 할아버지냐고 울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에 돌아가셨다. 이제는 벌써 17년도 넘은 옛날 이야기다. 


얼마 전이 구정(舊正)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증조할아버지 내외분, 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 늘 명절마다 지내는 제사인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제사의 대상은 내가 아주 사랑하던 할아버지인데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전혀 느낄 수 없고, 한자투성이 병풍과 제사 음식만 있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제대로' 추억하고 기리고 있는것인가?





2. 제사에 대한 인식 변화


시대가 바뀌면 방식도 바뀐다. 고인이 좋아했던 치킨과 피자를 올리는 사람도 있고, 제사는 허례허식이라며 아예 없애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와중에 나는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생각의 별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수십년 동안 명절에는 제사를 지내왔고, 다들 모여서 조상을 기려야 한다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제사'라는 의식에 본질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유교사회에서 제사라는 의식이 차지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제사는 조상에 대한 공경의 표시로 그들을 기리는 것이 그 본질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번 설에 지냈던 제사는 그 본질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할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했다면,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가 쓰여진 지방보다는 할아버지와 우리 가족 모두가 찍었던 사진이 있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고, 아무 말 없이 여러 번 절을 올리는 것보다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에게 어떤 아버지였는지 얘기해주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조상님이 살아계셨을 적에는 기록을 남길 만 한 매체가 많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면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동영상을 남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사의 방식도 조금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3.  내가 그리는 제사


내가 먼 훗날 꿈꾸는 제사를 지내는 모습은 이러하다. 가족이 모두 모여 아버지, 어머니가 좋아했던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으면서 두 분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싶다. 너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얼마나 훌륭하신 분이고 어떤 배울 점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싶다. 아버지가 나왔던 뉴스 영상, 신문스크랩을 보면서 봉사활동을 좋아하셨던 분이라고 전해주고 싶고, 어머니가 딴 자격증을 보면서 늘 배우려고 힘쓰신 분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든 지금, '왜 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지만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두 분의 모습을 남기고 기록해서 좀 더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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