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2014)
겉으로 보기에 선망의 대상인 직업들을 가지고 수려하게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아픔을 마주 보려 노력하는 인물들이었다.
거동도 못하고 가족들도 못 알아보는 아픈 아버지가 있는 가난한 집에서 둘째 딸로 태어난 해수(공효진).
아픈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하는 엄마를 보며 해수는 다짐한다.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되어, 반드시 이 가난과 지긋지긋한 환경들에서 벗아나겠다고.”
학자금대출과 가족빚이 산더미지만 해수는 결국 대학병원의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다른 남자와 입 맞추는 것을 본 이후, 그 충격으로 어떤 남자와도 스킨십을 하기 어려운 불안증세들을 겪고 있는 환자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수는 겉으로는 까칠하고 예민해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속 깊은 의사이자,
자신의 장애를 부단히도 극복하고 싶어 하는 환자였다.
비록 그 어떤 사람과도 자신의 불안을 넘겨본 적이 없긴 했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의 폭력으로 엄마는 물론이고, 형과 자신까지도 다치고 도망 다니는 게 일상이었던 재열(조인성).
그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한 엄마는 우발적으로 의붓아버지를 죽이게 되고 그 충격으로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법정에서 재열은 의붓아버지를 죽인 건 형이라고 거짓 증언한다.
그렇게 형은 감옥에서 수십 년째 복역 중이고, 어른이 되어 아주 잘 나가는 작가가 되었어도 언제나 형에 대한 미안함과 거짓증언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며 사는 재열이었다.
그렇게 감당 안 되는 일련의 일들을 어린 나이에 겪은 재열은 결국, 자신의 어린 시절과 꼭 닮은 가상의 인물인 강우(도경수)를 만들었고, 그것이 실존하는 인물이라 믿으며 진심으로 강우를 대하고 위하는 정신분열 증상을 겪는다.
이렇게 겉으로 보기엔 그 어떤 결함도 없는 아주 훌륭한 사회구성원인 해수와 재열이었지만 그 상처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던 둘이었다.
이런 아픔을 지닌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나쁜 의미로 아주 강렬했다.
재열의 눈에는 별일 아닌 일에도 항상 까칠해 보이는 해수였고,
해수의 눈엔 그야말로 개바람둥이 그 자체였던 재열이었다.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하며 지냈지만, 이 둘만큼 잘 맞고 비슷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결국엔 사랑에 빠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엄마의 부정이 자꾸만 떠올라 그 어떤 스킨십도 하기가 어려웠던 해수였지만,
자신만을 바라봐주고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는 재열에게는, 긴장으로 땀을 한 움큼 흘리면서도 지긋지긋한 불안증세를 극복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재열과의 하룻밤도 가능해지게 된다.
그리고 해수는 의사 선배인 영진(진경)에게 그날 일을 털어놓는다.
“늘 떠오르던 김사장하고 웃으면서 입 맞추던 엄마가, 전에는 그게 그렇게 더럽고 밉고 싫게만 보이던 엄마 얼굴이... 그날은 예뻐 보이더라.
전신마비에 서너 살의 지능을 가진 남편과 가난한 집안에서 의대를 가겠다고 고집하는 이기적인 딸.
그런 엄마한테 김사장님만은 유일하게 위로가 됐겠구나 싶은 게 우리 엄마 참 외로웠겠다 싶었어.”
불륜을 하는 엄마가 죽도록 미웠지만,
그 아저씨를 만나지 않으면 그 아저씨에게서 어떠한 물질적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되고, 그러면 결국 자신이 의대에 갈 수 없을까 봐 어쩌면 엄마의 불륜을 묵인하고 부추겼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해수였다.
엄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사로잡혀있던 해수였지만, 재열과의 깊은 사랑과 헤어릴 수 없을 정도로 굳건한 사랑에 대한 감정을 겪어본 해수는 미웠던 엄마에 대한 편견을 넘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극복해 내는 해수였다.
이렇듯 서로에 대한 관계가 점점 깊어지는 재열과 해수.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재열의 정신분열 증상은 더욱 심해지게 되었고, 결국은 주위사람 모두 재열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재열을 치료하기 위해 해수는 노력한다.
그렇지만 연인 앞에서 병원복을 입은 채 자신의 모든 치부를 다 보이는 것이 힘들었던 재열은, 더 이상 연인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엄마와 함께 시골집에 가 있겠다며 퇴원을 결정한다.
해수는 재열에게 말한다.
“의붓아버지 사건 때, 너는 아주 큰 잘못을 했어.
널 믿는 형과 변호사와 상의하지 않은 것.
이번에도 너는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있어.
날 버리고 간 것, 내 도움을 거부한 것.
네가 강우를 진짜라고 부여잡는 이상, 우린 이렇게 헤어져야 할 거야.
내 전화가 끊기면 아마 넌 강우가 또 보일 거야.
네 눈앞의 강우를 똑똑히 봐.
그리고 찾아내.
그게 네 착각과 모순이라는 걸.
강우가 보일 때,
너랑 나랑 사랑했던 순간을 기억해.
네가 나를 만지고 내가 너를 만지고,
내가 네 품에서 울고 웃던 그 순간.
그게 진짜야.
그 착각과 모순이 찾아지면 나한테 와.
내가 기다릴게. 정말 많이 사랑해."
재열은 강우의 존재가 환시라는 것이 여전히 믿기 어렵다.
하지만 사랑하는 연인이, 사랑하는 가족이, 그리고 그를 바라봐주는 친구들이 그것은 가짜라고,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자신이 엄청 사랑하고 예뻐하는 강우지만 그런 강우에게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그리고 결국엔 찾는다.
강우는 가짜라는 걸.
그리고 그 모순을 찾아낸 해수에게 달려가 말한다.
자신을 도와달라고.
그렇게 자신의 어린 시절 그 자체였던 강우를 가짜라 인정하며 받아들인 재열은,
매일 아버지를 피해 도망 다니던 강우, 즉 자신의 피투성이인 발을 잘 씻긴다.
그리고 좋은 신발을 신겨주며 더 이상은 아니라며 그를 잘 떠나보내 준다.
이렇게 재열과 해수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아픔을 서로의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이겨낸다.
그리고 그 속에는 아주 치열한 노력과 고통도 존재했다.
이렇게 극적인 상황이 아니어도 인간은 언제나 자신만의 어떠한 것을 넘고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운다.
나와 주의사람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의 고통이든 나쁜 일들을 겪지 않으며 살기 바라지만, 살다 보면 아주 가끔은 나쁜 상황에 처해지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 처해졌을 때 나는 딱 해수와 재열처럼이었으면 좋겠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해 주고, 한없이 믿어주고, 극복할 수 있도록 염려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렇게 그렇게 함께 잘 살아내 가는, 잘 이겨내어 가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그 여름, 아주 치열했던 해수와 재열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