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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사 이야기...나에게 사랑이란.

일상공유(21)

by 이음

언젠가 한 번쯤 정리할 때가 있겠지 했는데. 일단 오늘 이렇게 좀 쏟아내 본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

자만추에, 걱정도 많은 내가. 결정사를 갔다는 것 자체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겐 믿기 어려운 일일 수 있는데. 동기는 이렇다. 더 나이들다간 노오력,조차 안 해본 걸 후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설사 혼자 이렇게 늙게 되더라도.. 나 그래도 노오력해봤잖아, 같은 어떤 근거자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거의 끝나간다. 예정 횟수 중 1회만 남았다.


1. 연하는 없다.

걱정과 다르게(나는 나이도 있고, 부잣집 딸도 아닌데) 생각보다 괜찮은 조건의 분들을 소개해주셨다. 나이 차이는 대개 4~5살, 혹은 그 이상. 연하는 처음부터 안된다고 했다. 아마도 거금을 들여 가입하는 분들은 더 어린 여성을 찾는 것이 당연한가 보다. (결정사의 예의를 갖춘 방침인지도. 근데 여자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연하가 안된다니. 이것 참 고리타분하지 않나.) 나보다 훌쩍 연상인 분들은 그래도 나를 어리다고 봐주고, 혹은 예쁜 편이라고 봐주고.. 뭐 그런 대우받는 느낌은 있었다.


2. 외롭지만, 혼자 있고 싶다.

MBTI 'E'로 분류되는 나는, 만남 전후로 'I' 비율이 높다는 걸 깨달았다.

준비 과정도 피곤하고(최소한의 양심으로 미용실 가서 드라이 정도는 받았다. 이것도 후반으로 갈수록 그냥 자체 헤어롤로 해결.) 가면서도 피곤하고(빨리 마치고 와서 와인 마셔야지). 마치고 나면 방전되는 느낌이랄까. 'E' 성향의 단서는 만나는 시간 자체에 있었는데, 대화는 그럭저럭 즐거웠다. 뭐랄까, 어느 시점부터는 직업 탐구하는 마음으로 만났던 거 같다. 혹은 같은 연령대를 살고 있는 고민 공유 같은. 어쩌다보니 아직 혼자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이 직업군은 이런 생활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같은. 그러니까 만나는 시간 만큼은 꽤 집중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에 밖에 안 나왔으면 어차피 집에서 와인 먹고 쉬고 있겠지. 얼마나 건설적인 사회활동인가.


3. 이유는 있다.

대개는 괜찮은 직업에, 좋은 조건인(으로 소개된) 혼기를 꽉 차다 못해 넘겨버린 분들인데. 외람된 얘기지만 혼자인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재미가 없다. 대화가 겉돈다. (여행 얘기를 꺼냈는데, "친구들과 다녀왔지요"에서 끝. 한 번 더 만나면 할 얘기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취미가 없다. 운동을 안 한다. (가끔 산책하거나 골프한단다. 집에서 넷플렉스, 유튜브 보면 시간을 보낸다는데.. 건강도 건강이지만 얘기 소재의 한계..)

자기중심적이다. (늦게 취업한 얘기를 늘어놓느라, 나에 대한 질문을 거의 하지 않더라. 자신의 재정 상태와 주식 실패담 등을 꺼내놓고 "이런 나는 괜찮나요?"라고 면전에서 물어보는데..)


(** 결론은 그냥 나랑 안맞는게 핵심일 것이나.. 나 역시 누군가에겐 이렇게 비춰질 수도 있겠거니 싶어, 씁쓸하긴 하다.. 끊임없는 자아성찰 중.)


4. 시간 낭비가 싫은 나이

만난 분들 중에 비교적 대화가 잘 통하는 경우도 있었다. 외모는 별론(여기서 꽃미남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직업군이 비슷하거나 취미가 비슷하거나. 혹은 수다에 비교적 열려있는 분. 그리고 결정사에서 지침을 주는지 몰라도 꼭 집에 도착한 후에 인사 문자를 보내준다. 매니저분이 "두 분 다 반응이 좋은데, 다음에 잘 만나보세요"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만남 후에는 다시 볼지 어쩔지, "괜찮으나 인연은 아닌 거 같아요"(내가 가장 많이 택했던 항목)든 뭐든 회신을 해줘야 하는데. 둘 다 한 번 더 볼 생각이 있다고 하고는, 연락을 안 하는 거다. 나 역시, 먼저 나서서, 보자,고 할 정도는 아닌지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굳이 또 한 번의 수고로움을 할 정도는 아닌.


그러니까 결론은. 거금을 들였지만,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아직도 그래도 내 또래의(나보다 연상인) 적당히 괜찮은 분들도 남아있구나 하는 위안과 함께. 나도 아직 소개를 받고 괜찮은 피드백을 받을 정도는 되는구나의 안도와 함께. 더불어, 가치관의 정립을 다시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나는 이제 누구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것, 같은 모험을 하는 건 무리인 걸까. 어릴 때 멋모르고 하는 게 결혼인 걸까. 홀로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수고로움을 감행할 의지도 없는 걸까. 혼자가 차라리 나은 걸까.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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