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15)
특별히 달라진 상황이랄 게 없었다.
특별히 사고가 났다거나 큰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그냥 사소한 것에도 무너진다.
적당한 농담을 주고받는 사무실이
공기 한 줌 없는 숨 막히는 공간으로
선배의 사소한 지시가 부당한 대우로 느껴진다.
그냥 일이란 건 이런 거고
내가 참으면 얻게 되는 반대급부라는 게 있는데
표정이 더 이상 밝아지지 않는다.
조용하고 따뜻한 나의 집은
세상 혼자 있는 듯,
깊은 공허함으로 가득 찬다.
무얼 먹고 싶다는 욕구,
뭔가 해보겠다는 갈망,
몸을 움직일 의지조차 없는 날이 있다.
나에게 기쁨이란 게 있었나.
보람이란. 즐거움이란.
사랑받는 기분이란.
내가 알고 있는 감정인가.
내가 누릴 수 있는 감정인가.
어떤 날은
새벽 요가에
한강 러닝에
책 한 권의 깊이에
맛있는 와인에
누군가 응원의 말에
충분하다. 행복하다. 외치기도 했는데.
내 마음 하나 움직이면 된다는 걸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수련하는데도.
어떤 날은 이렇게
아주 사소한 것에도,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도,
이렇게 그냥 무너져 내린다.
다시 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잘 모르겠다. 삶이 계속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