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피자는 맛있었다.
2025년 11월 6일 저녁 6시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목이 아프거나 열이 나는 건 아닌데, 온몸에 몸살기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꽤 누워 있었는 데도, 몸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감기약을 챙겨 먹었다.
오늘은 요 며칠 냉전 중이었던 큰 애와의 극적인 화해의 밤을 보낸 기념으로, 아이가 같이 보길 원하던 영화를 감상하기로 한 날이다. 낮 동안 어떻게든 컨디션을 끌어올리려 애썼지만, 내 몸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싸움 끝이라 큰애가 그래도 이런저런 양보를 하려고 애를 쓴다.
다정히 차려먹는 저녁 대신, 배달음식을 선택했다.
피자를 주문하고 거실에서 영화를 볼 준비를 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프로젝터에 뭔가 남편이 연결을 바꾸어 놨다. 아이의 표정이 영 신경 쓰인다.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해서 잘못된 연결을 어떻게든 다시 바꿔 끼워 놓았다. 낑낑거리며 이 케이블 저 케이블 찾아 대느라 반쯤 혼이 나간 상태로 소파에 앉았다.
이번에는 같이 보기로 한 영화가 디즈니 플러스라는 것이 문제다. 어제부로 만료되어버림. 큰 애 눈빛이 흔들린다.. 안 돼... 화해의 장... 이러다간 또다시 냉전의 시작...
"내 용돈으로 한 달 더 볼까..."
아뇨!
남편에게 전화해서 한 달 만 더 보겠다..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다 통보를 한다.
오케이.. 해결..
영화는 총 2시간.
둘째가 학원에 간 6시부터 7시 근방까지 1부를 보고, 내가 둘째를 데리고 온 뒤 저녁을 먹고 나서, 둘째의 화상수업 시간인 8시부터 9시까지 2부를 보는 걸 목표로 하기로 했다.
피자를 먹으면서 어렵사리 앉아서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난 생전 처음 보는 영화인데. 큰 애는 몰입하기 시작하고, 그 몰입에 엄마도 함께하길 원했다. 아이가 선택한 영화는 '타셈 싱' 감독의 '더 폴:디렉터스 컷'. 타셈싱 감독은 미장센으로 유명한데, 살인자의 꿈속을 들여다보는 영화 '더 셀'이 대표작이다. 18살. 나도 그 나이 때 그 병에 걸렸더랬다. '예술병'. 아무래도 그 병은 유전성이 강한 듯싶다. 과거로 돌아간 듯한 마음으로 나도 같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예정대로 1부 감상을 잘하고, 작은 아이를 데려오고 저녁을 먹이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2부 감상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하필 오늘 작은 아이의 화상토론수업에 큰 낭패가 생긴 것이다. 30분이 지나도록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필리핀에 전화를 걸 수도 없고.. 시간이 늦어서 상담도 안되고.. 담당샘한테 카톡을 날렸으나 대답은 없고.. 하필 그 순간이 또 영화의 클라이맥스고..
큰애는 뚝 뚝 끊어지는 영화감상에 불만이 잔뜩 올라온 얼굴. 인내심이 한계심에 이른 게 눈에 보였다.
결론적으로 그 사건은 해결이 되지 않은 채, 우리 둘의 영화감상 시간을 잡아먹었다.
하필이면 작은 아이의 수학도 다 해결 나지 않아서, 영화를 보다가 채점을 하다가. 오답을 하다가;;
모처럼 오붓하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려는 큰 아이의 계획이 실시간으로 망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표정이 변화하는것이 눈에 보였다.
내 새끼 눈치가 너무 보이네.
우여곡절 끝에 영화 감상이 끝났다.
심신을 다해서 영화감상평을 해주었다. 비슷한 영화도 추천해 주고, 네 덕분에 이런 영화를 알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마무리를 짓는다. (이건 사실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영화 감상과 화해의 장은 성공적인 끝을 맺었다.
작은 아이도 못다 한 숙제는 내일 하기로 하고, 씻으러 들어갔다.
자 이제 씻고 나오면 둘째도 해결이다.
저녁 시간 그 짧은 몇 시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였던 건지...
몸살약으로 버텨오던 몸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다.
그러다가 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뵈도 이번이 세 번째 고쳐 쓰는 일기다.
하지만 온갖 생각을 정리하며 쓰기에는 오늘의 내 몸 형편이 좋지 않다.
그래서 초등학생처럼 이랬으므로 이랬었다.라는 원론적인 일기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오늘도 남의 집 TMI를 억지로 듣게 된 독자님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오늘 하루 마무리하고 지친 몸을 뉘이러 가겠습니다.
위시초딩의 일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