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위하여
2025년 12월 8일 오후 5시.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빵이 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한 조각, 한 조각 얇게 잘라먹는 슈톨렌.
올해도 어김없이 큼지막한 마지판이 가운데 턱 박혀있는 먹음직스러운 자태로 내 앞에 놓여 있다.
이 빵을 먹기 위해 일 년을 기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크로 조금씩 떼어 입 안에 넣고 한참을 우물거린다.
1년 내내 럼주와 향료에 스며든 견과류, 촉촉한 빵의 식감이 특별한 향을 풍기며 입안 가득 퍼진다.
아, 한 조각 한 조각 사라지는 게 너무나 아쉽다.
"아, 나 굴전이랑 육전이 먹고 싶어."
"난 싫은데?"
며칠 전, 남편과 나의 대화다.
나는 기가 막혔다.
'아니, 내가 먹고 싶다는 데 왜 자기가 싫어?'
물론 남편이 싫다 해도 내가 해 먹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싫은데?'라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그래? 그게 먹고 싶어? 그럼 사 먹을까?"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입맛이 뚝 떨어졌다.
"알았어. 그럼 먹지 말자."
샐쭉해져 토라져 버린 채,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 바람으로만 남아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봉지째 내 앞에 턱-- 놓여 있던 빨간 상자.
풀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빵집의 '슈 톨 렌'이라는 것을.
누가 경상도 남자 아니랄까 봐,
'오다 주웠다'
딱 그 시추에이션이다.
아이고, 참 친절하게 영수증까지 넣어두셨구먼.
그런데 이 날은 갑자기 폭설이 와서, 온갖 교통수단이 멈췄던 날이다. 길바닥도 꽝꽝 얼어 빙판이었다.
남편의 회사에서 빵집까지는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몇 년 전 수술했던 발목 때문에 겨울마다 불편해지는 그 다리로, 굳이 그날…?
슈톨렌은 물론 반가웠다.
하지만 걱정이 더 되었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다음 날 사 와도 됐을 텐데.
"여보,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이걸 사러 다녀온 거야? 위험하게."
그러자 남편은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낭만 있잖아!"
'아아, 그렇구나 낭만 있구나.
낭만이 밥 먹여주나.
그러다가 또 다치면 어떡할라고.'
할 말을 속으로 꾸욱 삼킨 채 웃으며 말한다.
"고마워! 내 슈톨렌은 매 년 당신이 챙겨주네! 잘 먹을게!"
굴전이랑 육전을 같이 먹기는 싫지만, 내가 좋아하는 슈톨렌은 매년 챙겨준다.
그리고 그건 그만의 '낭만'인 것이다.
그래. 안 다쳤으니 됐지.
남편의 씩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마지막 한 조각을 입 안에 넣는다.
한 조각 더 자를까.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다음 조각은 내일 몫이지.'
남편의 '낭만'을 매일 조금씩 쪼개서 맛봐야지.
꿀꺽- 입 안의 슈톨렌을 삼키며
'음, 이 맛은 조금 낭만적일지도'
슬며시 그렇게 생각해 보는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