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알람이 신나게 울린다.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정신 차린다. 물도 마시고 간단하게 일기도 쓰고 좋아하는 책도 본다. 출근 전 이 시간이 유일하게 나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천천히 갔으면 하는 시간이다.
아침 7시 30분
이제 출근준비 하자. 화장은 안 한다. 선크림 바르고 눈썹 정리만 하면 된다. 네이버에서 날씨를 확인하고 오늘은 뭘 입을지 결정한다. 오늘은 영하 10도. 검은색 기모 슬랙스에 체크니트, 그리고 나의 소울메이트 롱패딩으로 출근룩 완성이다. 사기업과 다르게 공무원은 수수하다. 심하게 꾸미는 사람이 없다. 편한 청바지에 운동화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꾸미면 '공무원 답지 못하다'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니까 과한 건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버스에서 읽을 책이랑 텀블러를 백팩에 쑤셔 넣고 집에서 나온다.
아침 7시 50분
버스가 왔다.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버스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이어폰을 준비해야겠다. 어차피 버스에서 책을 보긴 글렀으니까 유튜브라도 듣자. 버스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혼자 눈동자를 굴리며 눈운동도 해본다. 사람들이 보면 미친X 되니까 안 보이게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열심히 눈알을 굴린다. 눈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니깐.
아침 8시 50분
팀장님과 동료들에게 웃으면서(중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직장생활의 80%는 '인사와 보고'라고 한다. 뒤에서 안 씹히려면 인사는 기본이다. 컴퓨터를 켜고 부팅될 사이에 화장실에 가서 머그컵도 닦고 물도 가득 채운다. 개인용 가습기도 씻고 '열일모드 세팅'을 끝낸다. 업무 시작이다.
아침 9시~ 11시 50분
어제 다 못 끝낸 업무를 처리하고 과장님께 보고를 끝냈다. 보고한다고 원페이퍼를 수십 개 만든다.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 최최최최종.... 결국 두 시간 만에 보고를 끝낸다. 그놈에 보고가 뭐라고!
내가 관리하는 민원센터에도 열심히 왔다 갔다 한다. 민원인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 좋게 해결하는 게 최고더라. 아! 가장 중요한 점심메뉴 결정을 해야 한다. 나는 밥짱이다. 밥짱의 임무를 잊어서는 안 되지! 다행히 오늘은 쌀국숫집으로 결정됐다. 오늘 점심은 성공이다.
11시 50~오후 1시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근처 산책을 한다. 어색했던 팀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다. 보통은 업무얘기를 하지만 개인적인 얘기도 곁들인다. 이번에 새로 오신 팀장님은 어릴 때부터 집에서 모텔을 경영하셨다고 한다. 커피나 회식비는 본인이 다 내시겠단다. 좋으신 분이 틀림없다.
오후 1시~ 5시 50분
졸린다. 밥 먹고 산책하니까 더 피곤하다. 책상에서 꾸벅 졸다가 민원인 전화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만한 각성제가 없다.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리다 보니 벌써 4시가 다 되어간다. 다른 부서 친한 동료의 메신저가 깜빡거린다. '바빠? 커피 한잔 할래?
업무협의(?) 차 수다 좀 떨고 들어왔더니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준비할 때가 되었다. 칼퇴준비.
5시 30분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엉덩이가 들썩인다. 지금 전화하는 X은 천벌 받을 거다. 팀장님 오늘 칼퇴하시려나? 과장님은? 엘리베이터에 사람 많을 텐데... 걸어 내려갈까?
6시 00초
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루 중 엔도르핀이 최고점에 이르는 시간이다. 밝은 표정과 미소가 얼굴에 퍼지면서 사무실을 나온다. 내 다리가 이렇게 가벼웠던가. 거짓말 안 보태고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상의 컨디션이니까 운동도 잘되겠다. 운동하고 바로 집에 가서 쓰러져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