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술로 하루를 마무리하셨나 봅니다. 일이 생겨서 못 나오시는 게 아니고 술을 과하게 드셔서 못 나오시는 거지요. 아침마다 붉은 술톤 얼굴로 출근하시는 우리 팀장님은 착하고 일도 열심히 하시는 분입니다. 정말입니다. 회의 때는 술냄새가 좀 풍기지만 진지하게 업무를 추진하십니다. 아침에 갑자기 못 나가겠다고 카톡 보내시는 것만 빼면 100점 팀장님입니다.
공무원들 중에 유독 술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남자 팀장님들요. 물론 대한민국 아재들의 술사랑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공무원 팀장님들의 술중독은 이 세계에서 유명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드신다는 팀장님을 너무 많이 봤어요. 이유가 뭘까요?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정년보장이네요. 일을 안 해도, 못해도, 잘해도 60살까지 월급은 나옵니다. 내일의 걱정이 없습니다. 미래의 성장을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만 하는 '자기 관리'라는 개념이 없어요. 오늘 신나게 먹고 내일이 망가져도 상관없습니다. 5년 후, 10년 후에도 나는 똑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을 거니까요.
두 번째이유는 술을 거부할 수없는 상명하복의 조직분위기입니다. 예전에는 더 심했겠죠. 그냥 주는 건다 마셔야 했을 거예요.그러다가 중독되셨겠죠.....
세 번째는거주지예요.평생 여기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직장 근처로 이사를 옵니다. 처음부터 그 지역 출신들이 많고요. 한마디로 모두가 '동네친구'들이지요. 동네친구들이랑 10년 이상 같이 근무도 하고 알음알음으로 알게 되지요. 그러면서 커뮤니티가 형성됩니다. 그럼 술입니다.
참 신기하게도 술중독 팀장님들은 모두 정말 건강하시네요. 한 번은 팀장님께 '술좀 그만 드시고 건강 좀 챙기셔라.'라고 했더니 '알코올이 위장을 매일 소독해 줘서 오히려 더 깨끗하다'라고 하십니다. 간이 적응을 한 걸까요 정신이 승리한 것일까요. 그래도 술이 조직에서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간으로 승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자리에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서로 승진도 시켜주고 좋은 부서로 보내주기도 하죠.
저는 술꾼 팀장님들을 만나면서 '척' 하는 버릇이 생겼네요. 팀장님 가까이 가도 냄새 안나는 척, 술을 줄이기로 했다는 팀장님의 거짓말을 믿는 척.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성실한 팀장님들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요. 술 취한 공무원들길들이기는 불가능으로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