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jae
봄 밤
며칠 동안 황사바람이 몰아쳤다
이제 막 새 순을 피우던 쑥 잎도 눈을 뜰 수 없다
누렇게 마른 잔디 밑으로 얼굴을 묻는다
시市 청사 대리석 계단에는
엊그제와 똑 같은 포즈의 한 젊은 남자가
수은등 불빛에 온 시신경을 모으며 책을 읽는다
상암동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상에 대한 붉은 목소리로
그는 늦은 봄밤을 끝까지 읽고 있다
소리 없는 저 아픈 독서는 언제쯤 끝이 날까
그 옆 화단에는 요정 같은 이국종 프리뮬러가
태연하게 웃고 있다
아직도 걷어내지 못한 추위를 무겁게 걸치고
오늘도 나는 봄과 겨울 사이에 서서 그들을 지켜본다
칼칼한 모래 바람이 사납게 일고
내 안에도 한 뼘의 사막이 생긴다
고철 같은 기억들 철거된 자리에 녹슨 상처 하나
삐죽삐죽 솟고 있다
봄이 또 그렇게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