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잎 접시와 취소된 워터봄 발리 티켓

[육아휴직아빠와 수영러버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ay 28,251012

by 이음바다

엄마를 떠올리는 손


발리는 우리에게 늘 새로움을 줬다. 꾸따의 리조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오전 재밌는 수업이 열렸다. 우리는 숙박 기간 동안 모든 수업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손마사지가 첫 번째였다. 마사지를 거부하던 아들이 선생님께 손은 쉽게 내밀었다. 스스로 하는 법도 배웠다. 선생님의 동작을 곧잘 따라 했다. 소화가 잘되는 마사지, 잠이 잘 오는 마사지라는 설명에 신기해했다. 엄지와 검지 사이 손금을 따라 문지르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했다.

"엄마한테 이거 해줘야겠다."

자주 본 엄마의 편두통 장면을 기억한 것이다. 괜한 시샘에 '아빠는?' 하고 물었더니 답이 없었다. 발리에서 지내는 동안 아빠에게 뭘 해주겠다고 한 적이 없다. 아들은 좋은 것을 보면 늘 엄마를 떠올렸다.


잎사귀로 엮어낸 우리만의 기념품


짜낭사리 만들기 수업도 빠지지 않았다. 아들은 이미 몇 차례 만들어본 솜씨를 발휘했다. 함께 참여한 호주 삼촌들이 아들의 야무진 손놀림에 박수를 쳐줬다. 짜낭사리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선생님도 아들에게 칭찬을 해줬다. 그렇게 완성된 새로운 짜낭사리 두 개를 호텔 방문 앞과 테라스에 각각 모셨다. 아들이 고열에 시달린 날이었다. 짜낭사리에 마음을 다한 덕분에 빠르게 회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코코넛잎은 만능 재료였다. 주머니가 되고 바구니가 되고 접시도 됐다. 우리는 동그란 작은 접시를 만들었다. 선생님이 잘라준 잎을 엇갈리게 연결했다. 다른 재료 없이 오직 코코넛잎만 사용했다. 접어 올린 부분을 역시 코코넛잎으로 감싸 고정했더니 훌륭한 접시가 됐다. 두 개의 접시는 한국에 가져가기로 했다. 망가지지 않도록 곱게 싸서 가방 한쪽에 미리 잘 넣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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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만들기 장인이 되어간 아들

수영장의 배신


컨디션이 돌아왔으니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수영장이다. 며칠 만의 물놀이에 한참 신나게 놀았다. 물장구가 줄더니 아들이 몸 여기저기를 긁기 시작했다. 심해지나 싶더니 간지러워서 수영을 그만하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얼른 수건으로 감싸 호텔 방에 데려와 샤워를 시켰다. 침대에 드러누워 "수영 안 해. 수영 안 해."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다. 간지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온몸에 로션과 아토피 연고를 바르고 꽤 시간이 지나서야 긁기를 멈췄다.


한참 놀 때까지는 좋았는데

발리가 준 마지막 시험


아들의 피부는 민감한 편이다. 한국에서도 아토피가 자주 올라왔다. 피부 질환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것은 발리 한 달 살기를 하며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동안 잘 지내나 싶었는데 막판에 피부가 뒤집어진 것이다. 좋은 수영장이라 더 많이 뿌린 소독약 때문인지, 떨어져 버린 아들의 컨디션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발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시험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더 완벽해지는 여정


중요한 것은 전날 고열에 이어 아토피까지 겹쳐 아들의 상태가 100%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음 날 밤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귀국. 화려한 마무리는 워터봄 발리라는 워터파크에서 장식하려 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발리에서 수영장에 가지 않겠다는 아들의 비명에 예약한 티켓을 취소했다.


워터파크 슬라이드에서 신나는 비명을 지르며 끝내지는 못하게 됐다. 그래도 아쉽거나 슬프지 않았다. 여행의 완벽함은 오히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순간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오는 것 아닐까. 화려함이 아니라 돌아갈 힘을 다지기로 했다. 이제 진짜 딱 하루를 남겨두고 있었다.


20251012_110614.jpg 마지막으로 묵은 리조트 테라스에 모신 짜낭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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