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휴아빠와 장꾸아들의 발리 한달살기] D 29~30,251013~14
오지 않을 것 같던 마지막 날이 왔다. 천천히 짐을 싸며 아쉬움을 달랬다. 몇 장 남지 않은 색종이로 미니카를 접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가 진짜 마지막으로 물을게. 서핑해보지 않을래?"
"안 해. 서핑하기 싫어."
발리에 오면 서핑을 꼭 하고 싶었다. 꾸따 해변은 서핑하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서핑 강습 학교와 강사도 많다. 마지막으로 지낼 곳을 꾸따로 정한 것도 서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였다. 그런데 아들은 한사코 싫다고 했다. 서핑이 얼마나 재밌는지 슬쩍 얘기를 건네고 해보지 않겠냐고 거의 매일 물었다. 아들은 무섭다며 매번 거절했다. 짜증 섞인 답을 하는 아들에게 더 이상 강요할 수 없었다. 대신 6살보다 더 크면 서핑을 하자는 약속을 받았다. 아쉬움을 새로운 기대로 바꿔놓고 짐 싸기를 서둘렀다.
체크아웃을 했다. 리조트 직원이 손목을 내밀어 달라고 했다. 빨간색과 흰색, 검은색의 작은 끈을 묶어줬다. 마지막 날까지 발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귀국 뒤에도 행복하라며 행운을 빌어줬다. 아들은 팔찌를 계속 쳐다보고 자꾸 만지작거렸다. 행운의 팔찌를 절대 벗거나 끊지 않겠다며 조심했다. 자신과 아빠는 손목에 특별한 팔찌를 했는데 엄마는 못 했다며 서운해했다. 팔찌를 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받은 행운을 나눠주자고 아들을 달랬다.
서핑도 워터봄 발리도 싫은 아들. 마지막 날을 보낼 계획이 없었다. 갑자기 바쁘게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우리는 한 달 사이 가장 편안했던 곳을 가기로 했다. 사누르의 아이콘발리다. 택시를 타고 발리 서부에서 동부로 가로질렀다. 아들은 익숙한 풍경이 나타나자 "사누르다" 하며 반겼다. 찾았던 카페와 식당, 키즈카페와 미술교실 등이 스쳤다. 불과 2주 전 우리의 일상을 마치 2년 전 일처럼 떠올리며 함께 복기했다.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얘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 즐거운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스러웠다.
아이콘발리에 들어선 아들은 잊었던 고향을 찾은 사람처럼 움직였다. 좋아했던 레고스토어와 장난감 가게에 가장 먼저 달려갔다. 자주 가던 디저트 가게도 다시 찾았다. 아마도 발리에서는 마지막이 될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해변을 잠시 걷기도 했다. 세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저녁 식사 시간에 즈음해 꾸따로 돌아왔다. 서핑도 못 하고 워터파크도 못 갔지만 조용한 마무리가 더 나았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발리에서 부산 김해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자정.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리조트로 갔다. 공항 출발 전 샤워를 하고 싶어 리조트 측에 미리 샤워룸 예약을 해뒀었다. 갈아입을 옷도 따로 챙겨놓았다. 밤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했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러놓고 리조트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발리에서 남긴 마지막 사진이 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용품 가게를 찾았다. 아들이 사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대다. 아들은 엄마가 챙겨 온 안대를 가지고 싶어 했다. 엄마가 출국할 때 필요하니 네 것은 네 출국 때 따로 사자고 약속했었다. 작은 어린이용 안대는 따로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자기 얼굴의 절반을 덮는 안대도 마음에 들어 했다. 얼른 비행기에 타서 안대를 쓰고 자겠다며 빨리 가자고 졸라댔다.
밤이 늦어질수록 아들의 눈이 감기고 걸음이 느려졌다. 보안 검색과 출국 심사에 긴 줄이 늘어섰다. 아들은 언제 들어가냐며 계속 물었다. 입국 때보다 기다리기를 힘들어했다. 겨우 진정시키며 탑승. 자리에 앉고 나니 마음이 놓였는지 얼굴이 조금 풀렸다. 가방 안에 넣어뒀던 안대를 꺼내 썼다 벗었다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들은 10분도 되지 않아 잠들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이었다.
아들은 착륙 직전까지 잘 잤다. 제공된 기내식을 먹을 시간도 없었다. 덕분에 내가 기내식 2인분으로 아침 식사를 꽉 채웠다. 비행시간은 약 7시간. 밤 12시부터 아침으로 이어졌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날아왔다. 드디어 이미 밝은 김해공항에 바퀴를 내렸다. 30일이다. 큰 탈 없이 잘 보냈구나 안도했다. 무릎을 베고 자고 있는 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하는 분주한 소리에 아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김해국제공항' 한글 간판을 천천히 읽었다.
"우와. 한국이네. 엄마가 타이달샤크 가져왔겠지."
아들은 출발 전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며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을 챙겨 와 달라고 했었다. 아들은 지난 30일을 돌아보기보다 새로운 놀이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떠나던 날처럼 돌아온 날도 엄마와 함께했다. 엄마가 반차를 내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줬다. 나흘 만의 재회. 한 달 만에 카시트에 올라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해야 했다. 멀리 가지 않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기내식 2인분을 먹은 나는 패스. 엄마와 아들은 우동을 시켰다.
"엄마, 우리 보양식 먹네."
굵은 면을 한 젓가락 하더니 만족의 한마디가 나왔다.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 저녁 식사는 진짜 보양식으로 고기를 구워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발리에서 보낸 30일. 낮 동안 비를 만난 것은 딱 하루였다. 그것도 약 두 시간 정도. 적도 아래 항상 뜨거운 햇살이 비쳤다. 볕이 너무 따가워서 오히려 피해 다녔었다. 도착한 한국은 비가 오고 있었다. 추석 연휴 내내 비가 잦았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랜만이라 약간 어색한 운전을 하며 계속 하늘을 보게 됐다. 짙고 우중충했다.
5천 킬로미터 떨어진 섬을 떠난 지 7시간. 벌써 그 햇살이 그리워졌다. 손목에 걸린 행운의 팔찌를 만지작 거리며 언제 다시 발리에 갈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과 함께 발리의 해변을 꼭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는 함께 서핑 보드를 타게 되겠지. 즐거워하는 아들에게 “너 6살 때는 이거 무서워서 안 한다고 했잖아.” 하며 핀잔을 줄 거다. 어떻게 답할까. 아들의 대답이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