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면서 감기에 걸렸다. 컹컹 기침을 하면서 콧물이 주르륵 흐른다. 열이 나서 그런지 추운데 동시에 덥다. 거의 다 나았었는데 다시 감기에 걸렸다. 의사샘 말씀으로는 내가 애인에게 옮겼던 감기가 다시 나한테 옮겨왔단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사 오면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옮겼는데 새로운 약을 시도하게 됐다. 스트레스와 긴장이 너무 높아서 좀 내려보고자,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나는 느낄 수도 없는 우울을 좀 잡아 보려는 시도였다.
새로운 약은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린다. 서 있을 수 없고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쇼파에 누웠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눕는 장소만 바뀌길 며칠 째, 이런 상태의 사람도 '살아있다'라고 볼 수 있는 걸까.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어도 감기를 옮길까 걱정되어 만날 수 없다. 미완성으로 남겨 뒀던 그림이라도 작업해볼까 싶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약효가 떨어진 밤이 되어서야 겨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 다시 누워 하루를 마친다.
지금 이 글도 쇼파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깔짝거리고 있다. 앉아서 쓰고 싶지만 허리디스크 시큰한 허리 통증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눕는다. 몸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상은 없다. 지독한 무력감. 오랜 시간 투병하는 분들의 일상이 이런 느낌일까?
의사샘은 내가 쉬어야 한다고 했다. 쉬는 방법을 모른다는 내게 자연을 보고 느끼라고 추천해 주셨다. 지금까지처럼 잠을 잘 생각 말고 긴장을 풀고 스르륵 잠이 드는 삶을 살아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선생님, 저는 긴장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긴장을 내려놓으면 자꾸만 실수를 해요. 자꾸만 까먹고 놓치고 흘려요.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진 않지만 그래도 이런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워요. 계속 계속 까먹고 놓치고 흘리는 사람, 존재 자체가 구멍인 사람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죠?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오른쪽으로 돌아 누워서 휴대폰으로 쇼츠와 릴스를 무한 재생하는 것. 폰에 뜨는 대로 인지심리학, 강아지, 고양이, 각종 훈훈한 이야기, 블랙박스영상... 폰이 재생시켜 주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이 마구 본다.
집중력은 좋아하는 일을 해내는 능력이고 주의력은 하기 싫은 일에도 해내는 능력이라고 한다. 나는 주의력부족이다. 이런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움직일 수 있는 게 머리뿐이라 그런가 쓸데없는 생각만 많아진다.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주의력은 엉망이지만 집중력은 좋다니까 살릴 수 없나. 끄적끄적이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글을 더 많이 쓸 수는 없나. 너무 여러 번 진로를 바꿨지만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제대로 바꿀 수는 없나.
역시 긍정적 방향으로의 생각전환은 어렵네. 일단은 몸이 시키는 대로 좀 쉬어야겠는데 쉴 수가 없네. 걱정 내려놓고 쉬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