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공학석사를 받고 몇 년 연구소 언저리에서 일했었다. 그리고 병을 얻어 퇴사한 뒤 다시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비영리 영역에서 매거진도 발행하고, 팟캐스트 패널활동도 하다가 서울에서 23명과 함께 살았다. 그 뒤로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했는데 올해 7월, 허리디스크가 심해져 그나마도 그만두게 되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진단 주수가 부족해서 신청도 하지 못했다. 난 이제 뭘 해야 할까?
다시 취직을 하자니 취직하려면 NCS 필기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건 자신 없다. 글쓰기? 내 글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생각과 지식을 정리해 보는 정도의 기능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유튜브는 카메라 앞에서 혼자 떠들어야 한다는 부자연스러움에 숨이 턱 막혀버렸다. 성교육 강의를 뛰어볼까? 그러면 프로필도 만들고, 블로그도 만들어야 하는데... 또 주저앉고 만다. 블로그 만들었는데 아무도 신청하지 않으면 어쩌지?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걱정들이 질긴 밧줄이 되어 내 몸을 꽁꽁 옭아맨 느낌이다. 요즘은 고민상담 방송을 해보겠다며 트위치 방송세팅을 해보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냥 방송을 일단 키라고 말하는데 그것조차 어렵다. 뭐가 그렇게 어렵고, 뭐가 그렇게 두려울까? 나한테 지쳐버렸다. 내가 지겹다. 또 멈춰 선 내가 답답하고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요즘은 하루 종일 이것저것 기웃거릴 뿐 앞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가지 못한다. 앞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길도 방향도 모두 잃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머릿속에 온갖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친구의 즉흥극을 홍보하는 문화기획자 일을 하고 싶었고, 성폭력상담소에서 겪은 일로 드라마를 쓰고 싶기도 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세계관을 기획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 지난 연애사를 오디오드라마로 쓰고 싶기도 했다. 결국 지금까지 이중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다.
왜일까?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긴 한데 도전하는 건 싫다. 도전하면 성공해야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실패하기가 두렵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걸까? 제대로 뭔가 실패해 본 기억이 없어서 잘 모르는 걸까?
그저 다른 일로 도망치기 바쁘다. 요즘은 퍼즐에 빠져 버렸다. 500피스 퍼즐을 매일 새로 한 판씩 맞추기도 하고, 1000피스 퍼즐을 이틀 만에 다 맞춰버리기도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큐브퍼즐이 재밌어 보여서 유튜브를 보면서 시도해보기도 했다. 큐브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어지러워서 토할 것 같았지만 아무리 토할 것 같아도 도망치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왜일까? 미드 시리즈를 한 번 시작하면 눈이 벌게진 건 말건 밤을 새워서라도 끝을 봐야 하는 내가 왜 일에서는 제대로 시도하지도, 실패하지도 못하는 걸까?
궁금하고 답답하던 와중에 심리상담을 받게 됐다. 심리상담선생님은 내게 모래를 만져보라고 주셨다. 모래는 시원하고 묵직하고 부드럽고 찰랑거렸다. 투명하게 반짝거렸고 다채로웠다. 나는 모래의 느낌에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모래에 손을 담가서 흔들고 모래를 움켜쥐었다가 모래시계처럼 조금씩 떨어뜨려 흘려보기도 했다. 산을 만들기도 하고 평평한 모래사장을 만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열심히 하면서 모래를 만졌지만 나중에는 선생님이 뭐라고 질문하셨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만큼, 질문을 하셨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금방 모래가 주는 촉감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상담선생님은 이런 나를 발견하고 모래놀이를 중단했다. 모래가 주는 감각에 집중하는 내 모습을 퍼즐에 집중한 내 모습과 연결시켜 주셨다. 퍼즐이 주는 감각 중 만족감을 주는 느낌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요즘 퍼즐은 내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던 걸까?
기존에 맞춰져 있던 퍼즐을 제대로 해체하기 위해 손으로 퍼즐을 섞으면서 작업루틴을 시작한다. 나한테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인데 퍼즐조각을 하나하나 만지면서 퍼즐의 무게와 재질의 주는 느낌을 느낀다. 이 촉감이 좋다. 종이퍼즐을 섞을 때 나오는 종이먼지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도 좋다. 어떻게 퍼즐을 맞출지 계획을 세우면서 퍼즐을 분류하는데 분류작업도 좋아한다. 각 퍼즐은 색깔도 다채롭고 모양도 다르니까 보고 만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쌓여있는 퍼즐을 하나씩 분류하면서 그루핑 해주는 작업을 하다 보면 마치 내 뇌를 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나씩 퍼즐을 맞출 때 오는 희열은 말해 무엇하리! 어떤 때는 하나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어떤 퍼즐은 눈으로 쓱 보고 한 번에 맞추기도 한다. 이렇게 맞추면 희열은 더 커진다. 이런 희열 500번이나 1000번쯤 느끼고 나면 퍼즐 한 판이 완성된다. 별다른 성과가 없는 백수의 하루일과 속에서 완성된 퍼즐 한 판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어쩐지 조금 숭고한 의식을 치르는 느낌이 든다.
지금도 퍼즐에 대해 얘기하느라 글이 길어져 버렸다. 당황스럽다. 상담선생님은 내가 즉각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걸 원하는 성향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자꾸 자극을 찾아 눈을 돌리게 되고, 그래서 스스로 보기에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고.
TCI 심리검사를 했을 때 자극추구 영역에서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았지만 이게 어떤 뜻인 줄 몰랐던 것 같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성향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자극추구 성향이 크다는 건, 한 가지 일을 할 때 그 일에서도 끊임없이 자극점과 만족감을 찾아야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유레카!
드디어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그럼 어떻게 나를 계속 만족시키지?
여기서 상담샘이 제안해 준 방법은 칭찬이다. 칭찬은 만족감을 주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상담선생님과 되짚어보니 나는 칭찬을 받으려고 꽤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퍼즐처럼 시각, 촉각으로 다양한 만족감을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닐 때에는 직장동료나 애인, 친구들에게 칭찬을 갈구했다. 그래서 혼자 조용히 일처리를 못하고 항상 말하고 티 내면서 일을 했다. 칭찬을 해달라는 신호를 보내느라 바빴던 것이다. 동료들은 일도 바쁜데 칭찬까지 하느라 고생하고 있었겠지. 새삼 감사하고 죄송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겠지만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갈구하는 방식은 누구에게도 좋지 못하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바로 셀프칭찬이다.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칭찬해 주는 것.
나는 어차피 남의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칭찬해 주더라도 내 기준에 칭찬받을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칭찬해 주신 분께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지만, 그 칭찬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다. 저주받은 것 같이.
"칭찬받을 만한 일"에 대해 기준이 너무 높다는 얘기도 나왔다. 시험점수가 5점 올랐다면, 몸무게가 500그람 빠졌다면 그건 내 기준에서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30점을 올린다던지, 몸무게가 일주일에 3킬로를 뺐다던지 하는 것만 칭찬받아도 되는 일로 취급했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어떻게 열심히 공부했는지는 무시했다. 늘 과정보다는 결과를 칭찬했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칭찬보다는 평가에 가까웠다. "30점을 올렸어? 왜 이제야 올렸어?! 이제 겨우 90점인데 어떡할래?" "몸무게 3킬로 빼봤자 넌 아직도 70킬로야! 더 열심히 못 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다그치기 바빴다.
상담선생님은 내가 나를 학대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너무 폭력적이라고. 보라라는 사람은 무보수로 비영리활동을 하기도 하고, 성폭력상담소에서 매일 피해자를 지원할 정도로 타인의 아픔에 잘 공감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의 아픔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해 줄 생각도 없어 보인다고 하셨다. 아픔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스스로에게 아픔을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타인에게는 MBTI에서 F성향으로 공감하고 있지만 유독 스스로에게만 강력한 T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 같다고. 외부와 내부에 다른 잣대를 들이밀어서 나를 옥죄는 것도 스스로에 대한 폭력이고 학대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듣고 보니 정말 맞는 말씀이었다. 나는 내 내담자들에게 항상 칭찬과 위로를 얘기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어쩜 이렇게 나한테는 엄격한 걸까? 왜 나한테만 엄격하게 구는 걸까?
상담선생님은 어린 시절 양육자가 나한테 미쳤던 영향이 클 거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께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에겐 종종 칭찬을 받았지만 부모님은 그 칭찬마저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밖에서 받은 칭찬을 부모님께 자랑하기도 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침묵이나 "엄마 닮아서 머리가 좋다"는 말 뿐이었다. 밤늦게까지, 혹은 주말 내내 책을 읽고 학습지를 푸는 내 노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스스로 보듬어주고 인정해 주는 방법이 있다는 걸 몰랐다. 부모님 또한 당신 스스로에게 칭찬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한 사람들이었을 테고. 그러니 나도 그런 방법을 배우지 못한 거겠지.
그래서 이제는 셀프칭찬을 해보려 한다.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니까, 내가 나를 인정하고 보듬어주려 한다. 가장 빠르게 칭찬받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타인에게 의존해서 살아갈 수는 없다. 나도 내 영역을 갖고 싶다. 그 영역에서 오랜 시간 수련하고 싶다.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겠느냐마는, 해봐야 한다. 그래야 산다. 굳게 결심했지만 실행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부터 해야겠지. 오늘도 셀프칭찬 2개부터 일기장에 적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