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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체 Dec 01. 2023

이런 몸을 끌고 뭘 할 수 있을까

본의 아니게 수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몸이 또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이 아니라 머리가 문제인가? 몸이 문제인지 머리가 문제인지 아직 밝혀내지도 못했는데 시간이 뒤죽박죽 잔인하게 흘러 버렸다. 


나름대로 일주일에 세 개의 마감약속을 갖고 있다. 화요일은 네이버, 수요일은 스터디, 목요일은 여기에 글을 남기기로 했지. 이번 주는 셋 중 단 하나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패배감에 잠겨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 뻐끔뻐끔 숨 쉬기도 너무 힘들다.


남들보다 좀 지독한 월경전증후군을 갖고 있다. 아랫배 통증, 허리 통증, 두통, 손발 저림, 수면장애, 식욕폭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나? 단언컨대 가장 지독한 PMS는 우울과 무기력이다. 우울과 무기력이라니, 이 시기의 나를 표현하기에 너무 감성적인 것 같아. 어떤 단어가 더 나을까. 예민? 신경질적? 히스테리? 그래, 비관. 비관이 좋겠다.


나를 비관하는 일은 대략적으로 월경 시작 2주 전부터 시작된다. 운동을 나가지 못한 스스로를 비관하고, 마감해 둔 글의 저급함을 비관한다. 쌓기만 하고 읽어내지 못하는 책들과 만들기로 하고 만들지 못한 유튜브 원고를 바라보며 지긋지긋한 게으름을 통탄한다. 꽤 열심히 살았는데 왜 성과가 없지? 결과는 다 어디에 있지? 통장잔고는 왜 십 년 넘게 째 똑같지? ADHD 때문인가? 아무것도 모르겠다. 평소 후회하지 않는 걸 내 성격의 큰 장점으로 여기고 살았는데, PMS 기간만큼은 예외다. PMS는 나의 모든 것을 후회하게 만든다. 


현재를 모두 비관하고 나면 그다음은 과거로 시계를 돌린다. 그런 부모에게 태어난 나를 비관하고, 하필이면 세 남매 중 첫째로, 그것도 여성으로 태어난 나를 비관한다. 말만 하면 뭐든 구해다 주는 든든한 애인을 보며 이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단지 '생각'일 뿐을 깨닫고 이렇게까지 행복한 상황에서 이렇게밖에 행복해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관한다.


이 모든 깔때기의 결론은 명백하다.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너무나도 쓸모없는 사람이다. 

나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이다. 


떠올리는 것조차 소름 끼치는 이 몹쓸 생각이 나를 잡아먹는다.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 매달 일어나는 일이다. 하필 월경주기도 정확히 30일. 이 일이 매달 반복된다는 점을 또다시 비관하고, 앞으로도 십 년은 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점까지 비관하고 나서야 '그렇다면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그나마 중립적인 단 하나의 생각이 힘겹게 싹을 틔운다.


이 시기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끊임없이 질문한다. 몇 번 이 생각을 하다 보면 금방 인생이 무겁고 막막해지기 때문에 '이런 소모적인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라는 새로운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게 될 리 없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해봤자 떠올릴 수 있는 건 결국 코끼리인 것처럼.


살기 싫다. 그렇다고 해서 죽고 싶은 건 아니다. 살기 싫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이 소중한 삶을 너무나도 잘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이다. 그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혹은 그 길은 보이지만 몸과 능력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살기 싫어진다. 누구나 그런 때가 있지?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곁에서 지켜보던 애인이 내게 말하길, 좀 쉬란다. 내가 자꾸만 뭘 한단다. 말로는 쉰다면서 사실은 쉬질 않는단다. 쉬는 게 뭘까? 난 매일 쉬고 있는 것 같은데. 출근을 안 하니까 더 잘 쉬는 것 같은데. 이게 아니란 말인가?


심리상담 선생님은 슬라임처럼 축 늘어져서 쉬어도 된다고 한다. 축 늘어지거나 퍼지거나, 모양이 좀 변한다고 해서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니 안심하고 축 늘어져도 된다고. 


모르겠다. 아무것도. 


이 시기만 지나면 나한테는 열흘의 황금기가 찾아온다. 그 시기의 나는 굉장히 많은 무언가를 해낸다. 이 시기의 나는 그 시기의 나를 상상하면 기분이 이상하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같은 몸, 같은 머리인데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나? 


사실 나는 그 시기의 나만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의 나는 나로 안 쳐준다. 그러고 싶다. 못나고 게으른 나는 아직도 인정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이십 년 살았으면 이제는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긴 해. 이게 겨우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라면 진실은 이미 딱 나와 있다는 것도 알겠고. 그럼에도 인정하지 못하는 나는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걸까? 그런 나도 그저 나라고 인정하면 뭐가 어떻게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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