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체 Dec 14. 2023

유명해지고 싶지만 유명해지기 싫어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메일이 왔는데 창작자들은 네이버에 인물검색 될 수 있도록 프로필을 올리라고 한다. 하. 어쩌지? 난 아직 유명해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직업표기는 표준분류를 따른다고 하고 "성교육강사"라는 직업은 없었다. 그냥 강사는 있던가? 다행스럽게도 "작가"라는 직업은 있더라. 그래서 내 직업은 당분간 "작가"가 될 예정이다.


어쩔 수 없는 이유 덕분에 나를 대표하는 직업은 "작가"가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조금 마음이 놓인다. 사실 아직 나를 성교육 강사라고 칭할 자신이 없다. 성교육 강의 경험은 정말 몇 번 밖에 없으니까. 폭력예방교육 강사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도 다 기관에 소속되어 있을 때나 쓸 수 있는 이름이었지, 자격을 따는 내년이나 후년까지는 불가능할 것 같아.


물론 지금 당장 성교육 신청이 들어오면 어찌어찌해내기야 하겠지. 그럼 나는 강사가 맞지 않을까?


강의를 본격적으로 해볼까, 열심히 홍보해 볼까 고민하다가도 자꾸 부족한 점만 수면 위로 떠오른다. 교구나 워크지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한 현실, 마이크도 다시 알아봐서 사야 하는데 또 돈이 들겠네. 이런 생각들. 어쩐지 좀 두려워지는 것이다. 만들까...? 생각해 보면 또다시 자신이 없어지는...


이래 가지고 뭐가 될 수 있을까. 자꾸만 뭔가가 되려고 하는 게 문제적이다. 그냥 하면 사실 나는 꽤 잘하는 편이다. 발표도 강의도 못 한다는 피드백은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잘한다, 잘했다는 피드백은 많이 들었지.


그럼에도 내 속에는 정체 모를 두려움이 똬리를 단단히 틀었다. 절대로 풀리지 않겠다고 각오라도 한 냥 거만하게 군다. 나는 변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온라인 강의를 보다가 "Core Belief(핵심 믿음)"이라는 걸 접했다. 나에 대한 믿음, 상대방에 대한 믿음, 세상에 대한 믿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잘 살 수 있어.

나는 열심히 살 수 있어.


이런 믿음. 나한테는 이런 믿음이 없다. 나는 내가 해낼 거라 기대해 본 적 없었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지도 못한다. 나를 바꿔낼 자신이 없다. 손톱 물어뜯는 버릇조차 아직도 고치지 못했는걸?


나는 물컵에 채워져 있는 반잔의 물을 보고 "반 밖에 안 남았네." 비관하는 사람이다. 이런 나를 바꿀 수 있다고?


이런 내게 단호하게 얘기해 주셨던 코치님이 계시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부족한 사람인 내가 나아질 수 있을까, 나도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 없어서 의기소침해하던 그때 아주 단호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믿어야 변화가 시작될 가능성이라도 열립니다.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아요."


머리를 띵- 맞은 것 같았다. 마치 로또 같았다. 로또를 사야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생긴다. 변화할 수 있다고 믿어야 변화할 수 있는 확률이 생긴다.


나 같은 마음을 "고정마인드셋"이라고 부른다. 나한테는 아무 통제력이 없고 주어진 조건에서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반대의 개념은 "성장마인드셋"이다. 나와 내 주변은 바꿀 수 있으며, 바꾸고 싶을 때 바꿔도 되며, 그 모든 선택은 내가 한다는 마음상태를 말한다.


나는 고정마인드셋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눈으로 흘깃 훔쳐보지도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았다. 희망 자체는 이미 내 것이 아닌 사치스러운 어떤 것, 내 주제에는 맞지 않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제야 인생에서 희망을 가져보려는 내 시도는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심지어 외롭다. 지난날의 인생을 파헤쳐보고 과오를 인정하는 고통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조차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


딱 절반 채워진 물 잔을 보고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생각해도 괜찮구나. 누군가의 결과물을 보면서 좋은 점만 봐도 괜찮구나. 심지어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때에도 그렇구나.


요즘은 연습을 한다. 긍정적으로 보는 연습, 나를 돌보는 연습, 나한테 칭찬을 해주는 연습.


결국 돌고 돌아 칭찬일기라니 참 평범한 결론인 것 같아 김이 빠지는 느낌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하는 수밖에.


돈을 벌고 싶다. 내가 가진 것들을 꺼내 놓으며 살아가고 싶다. 사람들과 더 많이 대화하며 살아가고 싶다. 말하고 듣고 쓰고 싶다.


처절하게 원했지만 이제 원하는 것도 지겹다. 생각한 대로 하고 싶다. 물 마셔야지 하면 딱 물 마시고, 쓰레기 버려야지 하면 딱 버리고 이렇게 빨리빨리 행동하고 싶다. 내 몸에 내가 갇혀버린 듯 답답하다. 펑- 터져도 좋으니 에너지 그대로 다 해버리고 싶다. 이런 감정이 바로 "마음만은 굴뚝같다."는 그 감정일까? 서럽다. 이렇게 뭣도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할까 봐 두렵고 이런 걸 두려워한다는 게 서럽다.



이전 04화 이런 몸을 끌고 뭘 할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