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2015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중학교 진로특강 시간, 난 준비해 간 청소년지도사 직업을 안내하기 전 자기소개를 하며 어떻게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함께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지금도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책을 쓰는 작가가 될 꿈을요." 이건 내가 준비해 간 시나리오에는 없던 엉뚱하고 준비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그 말을 그때 그 시간에 함께 있던 청소년들은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나 또한 그 기억이 희미하지만 분명 난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입방정이었지만 어쨌든 난 그때부터 '책을 쓰는 작가'라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쓰는 작가'라는 허황되고 어이없는 그 말은 어찌 된 일인지 그 특강 이후로 다른 특강과 교육에서 나를 소개하는 단골 멘트가 되었다. 꿈이 없던 내가 축구선수나 학교 교사에 대한 상상을 하다가 청소년지도사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그저 단순히 직업적인 꿈을 이룬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조금 더 구체적인 삶의 비전을 꾸려가면서 영향력을 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것이 바로 '책을 쓰는 작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내뱉은 말 한마디는 청소년과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나를 점점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누구 하나 나에게 '책을 쓰고 있느냐', '책은 언제 나오냐', '작가가 되긴 하냐'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적 없지만 난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고 당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그 말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고 싶었다. 정말로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살길 원했다.
출처 : pixabay
#작가라는 꿈을 위한 노력 시작, 근데 나 글을 쓸 준비가 되어있던가?!
2018년은 내가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출발점이 된 시점이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어 헤매고 있을 때 우연한 계기에 꿈쌤 백수연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꿈쌤은 <<괜찮아 꿈이 있으면 길을 잃지 않아>>라는 책을 출간한 적 있는 작가이자 나와 같은 청소년지도사였기에 나의 고민을 잘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만남을 추진했고 고맙고 감사하게 직접 만나주셨다. 꿈쌤은 내게 한 가지의 질문과 또한 가지의 미션을 주시며 내 꿈을 지지해주셨는데 질문과 미션은 다음과 같았다.
질문) 글을 쓰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책을 쓰고 싶은 건가요?
미션) 글이든 책이든 어쨌든 연습이 필요한데 일단 무엇이든 써보셔야 합니다. 글 쓰기 좋은 공간, 블로그를 활용하시면서 꾸준히 글을 써보세요!
#선배 작가의 진단, 일단 블로그부터!
꿈쌤은 어쩌면 내가 내 꿈에 대한 진심을 꺼내놓은 첫 번째 사람일 것이다. 조금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섰던 자리에 따뜻한 마음으로 날 맞이해주셨던 그날의 기억이 참 소중하다. 하지만 그 소중한 기억보다 중요한 그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그 자리에서 하지 못했다. 목적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쓰는 것도 아무런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자아성찰도 한몫했다. 그래도 좋은 멘토를 얻었다는 감사함과 함께 블로그 활용의 미션은 당장 수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난 느리지만 천천히, 블로거이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블로그는 내 삶을 바뀌어놓기 시작했다. 그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공간이나 일기장이었던 블로그는 어느 순간부터 책에 대한 서평을 적는 공간, 청소년지도사로서 활동에 대한 소회를 남기는 공간, 좋아하는 취미생활(야구, 영화, 음악)에 대한 느낌을 나열하는 공간 등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시를 적어보기도 하고, 소설도 적어보기도 하며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자꾸 꺼내어놓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블로그의 글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쌓여갔다. 처음엔 내 글을 보는 것이 부끄럽고 민망했는데 그 누구도 내 글에 크게 관심 갖지 않는다는 사실과 내 글을 보고 지적하거나 문제를 삼지 않으니 괜찮다는 안도감 덕분에 글을 쓰는 시간이 한결 편안해졌다. 여전히 내 글을 누군가 읽는다는 것에 대한 수줍음이 남아있긴 했지만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내가 가진 최고의 수확은 바로 그것이었다.
#내 이야기가 책에 실리다니?!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꿈쌤이 다음 책을 준비한다며 책 속의 주인공을 찾는다는 홍보글을 보았다. 나는 처음 꿈쌤에게 다가선 것 마냥 또 한 번 주저하지 않고 혹시 그 주인공 대열에 나도 합류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보통 청소년과의 함께하던 작업이었기에 내가 혹시 부담을 드릴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나타냈음에도 꿈쌤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YES'였다. 대단치 않은 나의 삶도 글로 담아 표현한다면 책에 실리기에 충분하다는 것! 승낙의 기쁨은 곧 글쓰기로 이어졌고 내 삶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에 기꺼이 최선으로 임했다. 몇 달 뒤 내 이야기는 꿈쌤의 세 번째 책 <<괜찮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속 하나의 사례로 소개되었다. 책을 쓰는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하진 않았지만 책 속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난 작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실제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보다!
그렇게 작가가 된 기분을 아주 조금 느끼긴 했지만 여전히 난 갈 길이 남아있었다. 한 걸음 나아갔으나 남은 길, 다음 한 걸음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못했을 때 나에게 또 다른 우연이 찾아왔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서 주관한 <청년야학당>이라는 교육이었다.
<청년야학당>은 2020년 11월, 청소년사업 디지털화 마이크로 칼리지라는 타이틀로 청소년을 만나는 활동가를 대상으로 데이터와 디지털에 대한 배움과 탐구의 시간, 교육과 나눔의 시간이었다. 한 달간 지속된 이 활동은 다섯 번의 지혜나눔(교육)과 약 스무 번의 생각나눔(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생각 나눔)으로 이루어졌는데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교육의 형태였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는데 교육 수료 이후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 책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난 마치 오래전부터 그 제안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적극적으로 참여의사를 표했고 그렇게 책의 편집진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
<<새롭게 만들어갈 우리에게>>라는 제목으로 만들게 된 책은 단 한 번의 오프라인 모임과 서른 번의 온라인 모임, 수많은 구글 문서 작업으로 진행되었으며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거쳐 2021년 8월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약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오랜 시간 책 한 권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고 또 오롯이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4명의 편집자들과 '썬데이채소'라는 이름의 공동작업으로 진행되기에 간단하지 않았다. 책을 만드는 분들이 흔히 말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는 '인고의 세월'의 뜻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새롭게 만들어갈 우리에게> 출판은 비록 ISBN 등록을 거치지도 않았고 정식 판매되는 책이 아님에도 꿈쌤 책의 한 단락에 참여한 것과는 다른 감동과 뿌듯함이 있었다. 내가 참여한 책을 내가 직접 사서 지인들에게 전달할 때의 마음은 무엇으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펀딩으로 만든 책이 이 정도인데 정식 출간은 어떤 마음일까?
#책을 쓰기 위한 나만의 출사표를 던져본다.
이제 그 마음을 느낄 차례가 조금씩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글쓰기 연습 - 책 속의 한 단락 참여 - 크라우드 펀딩 책 출간으로 이어온 나의 스토리는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지난 10월 말, '청소년 활동가의 글쓰기 이유와 방법' 특강 이후, 실제 책을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공동저자)를 얻었기 때문이다. '의지'와 '용기'만 있다면 누구든 책을 쓸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 세분의 멘토가 계시고 또 함께 책을 써보겠다고 자신의 의지와 용기를 표현하신 동역자 분들이 계시니 외롭지 않은 시간이 될 것 같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나의 꿈을 향해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도전 앞에 망설이거나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담대하고 묵묵히, 다음 단계 목표로 삼은 지점을 향해 나아가 보려 한다. 하루아침에 꿈을 이루는 것보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재미를 충분히 느끼며 그렇게 책을 쓰기 위한 나만의 <출사표>를 던져본다. 그렇게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