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결국, 시댁과 의절한 게 내 탓이라고? - 3 <마지막>
무튼, 임신과 동시에 그런 관사에 있는 건
정말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임신기간 내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배는 안 나오고 화장실에서만 박혀 살아서
조산기만 보이는 나날 중,
휴가를 받아서
시댁과 친정에 들르기로 하였다.
바지사장으로있던 사무실에 가서
인사드리고 (어우 그 당시 내 모습 짜증 나)
그래도 임신해서인지 뭐 먹고 싶냐고는 물어보시길래
정말 소고기만 먹던 때이고 철분이 너무 없어서
주마다 철분주사를 2팩씩 맞고 있어서
소고기 먹고 싶다고 말을 하자마자
"너 소고기 사주려면 우리 집 팔아야 하는데?
비싸 가지고 "라고 말하더니 단칼에 거절과
6900원짜리 양념갈비를 사준다고 가셨는데
그 와중에도 젓가락을 치익치익 눌러서 익힌 고기는
내가 아닌 본인들 아들 접시에 내려주고는
"우리가 밥 사줬으니 집에 좀 데려다줘라"라고
또 당연하게 요구를 하였고
이번엔 나도 몸이 힘들다고 말을 하니
"뭐 얼마나 힘들다고 그러냐"라고 빈정대자 상대방은
복귀해야 한다는 말로 둘러댄 후,
친정으로 향했다.
양념갈비의 양념이 뭐가 안 맞았는지
40분 정도 운전거리에
설사병이 심하게 나고 설사를 하고 친정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온몸에 두드러기까지 올라오고
총체적 난국의 모습으로 친정에 도착하였다.
임신을 했으면 뭐 하나 살이 더 빠진 모습을 보고
친정오빠는 한우집에 가서 한우를 잔뜩 사줬는데
상대방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본인입에만 넣어 먹는 모습에
친정오빠도 혀를 차고 질려하는 표정으로
고기 굽는 소리만 나는 식당의 기억일 뿐이었다.
어린 나이라고 하면 어린 나이였던
나의 임신생활은 그 누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모든 순간"이라는 거
개복치처럼 작은 스트레스에도
픽픽 혈압이 떨어지는 성향이라서인지
대학생활 중,
난소에 혹이 맹장이랑 꼬여있어서
큰 수술을 겪은 후,
수술이라는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친정엄마는 자연분만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딸을 위해
제왕절개 비용은 물론,
혹여나 본인처럼 살쪄서 우울증 올까 봐
최고급 조리원까지 지새끼 낳는 순간까지 100원들지 않은
상대방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제왕절개 수술 중,
잦은 마취를 해서인지 중간에 눈이 떠져버렸는데
눈물만 또르륵 또르륵 하다가 다시 마취가 되었는데
회복실에 가는 도중에 내가 눈을 다시 번-쩍
떴다고 후에 간호사를 통해서 들었다.
욱신거리는 배를 움켜잡지도 못하고
눈에서는 눈물만 흐르는데 병실로 흐르는 침대에서 본건
수술하는 층, 그 엘리베이터 앞에서
핸드폰 가로로 두고 핸드폰게임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그때부터였을 거다.
정말 보기도 싫을 만큼 정이 떨어지고
네놈의 새끼를 내가 이렇게 목숨 걸어야 했냐?라는
상대방에게 억울함만 가져진 마음은
그게 시작인 거겠지? 사실 노선을 모르는 이혼소송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