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결국, 시댁과 의절한 게 내 탓이라고? - 2
이 공간은 나의 기록을 하는 소중한 공간에
나도 상대방이 나에게 하대한 기억을 들 끄집어내는 거 자체가
엄청 큰 고통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나는 열심히 노력했다는 기록으로 계속
나의 기록을 진행해보고 싶다.
사람을 비난하는 일이 자주 생기다 보니
결국 나는 큰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해도 해도 너무 하시는 거 아니야?"라고 하자
상대방은
"딸이 없어서 어떻게 말할지 몰라서 그래
부끄러워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 이게 말인가 싶은 마음에
"그럼 우리 엄마는 사위라는 사람을 뭐 몇 번이나 받아봤어?
그냥 남의 자식이니까 더 소중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니
"알았어, 내가 다 해결하고 올게"
상대방의 그 말에 결국 난 터졌고,
"지난 결혼식장에도 친척들 없이
지인들만 불러 조촐하게 식 올리자고 하고
사돈에 팔촌 육촌까지 다 데리고 오면
우리는 무슨 가족도 없는 사람인 줄 아셨겠다.
그리고 그렇게 식장에서 술 먹고 취하는 시아버지가 어딨 어?"
라고 되물어보니
회피형 대화만 추구하는 상대방 때문에 결국 이야기는
매번 그렇듯 마무리되지 않았다.
사이의 원인은 계속해서 한 번도 빠짐없이
상대방의 부모님이었다.
IMF때 어려워지신 걸 핑계로 일어서려고 하지 않고
신용불량자가 되셨지만 절대 남아래서는 일 안 한다고
(내 기억으론) 지인의 사무실에서 바지사장으로
사장님 소리만 듣기를 바라셨고,
편하게만 사려는 모습과
돈 없다~ 우리는 돈이 없다고 하시면서
골프 다니고 하는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런 시댁과 당분간 만나지 않다 보니
싸움이 아무래도 잦아들었기에,
나는 오랜만에 우리 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제안하였다.
상대방은 요새 바빠서 다음에 가자 다녀오자
다음차반에 가자라고 슬슬 넘기기 시작하더니.
동기들과 내가 가고 싶다던 강릉도 다녀오고
스키도 타고 오고 할 거 다 하며
곧 죽어도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하는
누구의 모습과 정말 닮은 모습이었다.
다녀와서는 알랑방구로 사람 풀어주는 시늉만 하고
결국, 아무것도 아무 지인도 없던 나는
딱 한 번의 실수로 임신이 되었다.
이건 나에게 더 고통스러운 시집살이를 알리는
알람벨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