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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찐만두 Dec 11. 2024

나는 그렇게 91년생 이혼녀가 되었다.

#22. 도망 다니는 중에도 변호사도 피해다니며, 나몰라라 하던 상대방

아이는 걱정과는 달리 타 지역생활에 잘 따라와 주었다.

조금 걱정과 염려되는 부분은

어딜 갈 때마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다녔는데

손을 꼭 잡고 다닌다는 점?

외에는 좋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잘 적응해서 다행인 나날 중,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상대방이 소장을 계속 거부합니다. 그리고 연락도 피하는데

혹시 상대방에게 직접연락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아니,, 이게 무슨 똥 같은 소리인가 싶었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면 법에도 안 걸리고 최소한 이 기간에 분명

상대방에게 소장전달과 조정이 될 거라고 하셔서

아이랑 이렇게 후다닥 도망친 것처럼 왔는데

저한테 떠미는 게 말이 되나요라고 나는 억눌렀던 화를

변호사에게 의문문으로 뿜어냈고 변호사가 알려준 상황은 가관이었다.


"저도 이런 경우는 좀 당황스럽습니다. 아이를 찾기는커녕

직장까지 지금 등기를 보냈고 직장 사무실에서 찾아가라고 했는데

기간 안에 방문하지 않아서 반송이 두 번째고.

집으로 보냈는데 그것도 그냥 반송시켜 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상대방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본인 비행준비해야 한다고 뚝 끊어버리는데

저희도 이제 다시 보낸 마지막으로 이 소장이 다시 돌아오면 법원에서 집행관이

방문하는 방향으로 가려합니다"


아니 이 내용을 듣는 내내 어안이 벙벙했다.

직업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법원과 변호사가 전화가 오면

뭔가 철렁하지 않을까?

그냥 매번 평생을 내가 해결해 주니까 이것도 알아서 하겠지 라는 마음인 건가?

모든 어이없음이 선물세트처럼 나에게 투척되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비가 많이 왔고 아이와 함께

집에서 놀다가 우산을 쓰고 칼국수를 먹으러 간 그날이었다.

칼국수 사장님이 아이를 얼마나 예뻐해 주셨는지

울컥한 마음이 칼국수집에서 터질 뻔했는데

꾹꾹 참았고 조금 이른 육퇴를 하였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서 맥주하나 까서 마시는데

맥주가 너무 탄산이 많아서인지

눈물이 펑펑 터졌는데

갑자기 곤히 자던 아이가 화장실을 간다고 나오더니

우는 나를 보고는 와서 그냥 토닥거려 주었다.


"엄마 괜찮아. 나는 엄마를 많이 사랑해 우주만큼"


그래,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되지 이 애는 내 아이니까 이 정도로 무너지면

내가 다 진 거라고 인정하는 거니까

다시 내일 끝까지 시작해 보자 라는 다짐을 갖게 되는 하루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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