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약대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대학병원 앞에 위치한 문전약국에 취직했다.
약국장은 나보다 세 살 많은 남자 약사님이었다. 약국 운영에 대해서 3년만큼의 경험은 있을 수 있으나, 또래나 마찬가지였다.
젊은이의 열정이 대단했던 약국장님은, 늘 자신이 투입한 데에 비해 좋은 결과를 얻기 바랐다. 대학을 갓 졸업해서 약국 경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나에게도 최선의 성과를 기대했다.
"국립대 나왔는데, 그것도 몰라요?"
약국장님 또한 명문대 약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본인이 다녔던 학교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십 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학교 나온 사람은 어떤 성향이더라.'라는 편견이 있었다.
나는 조제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가뜩이나 '공부만 잘하는 -다른 건 못하는- 샌님들'이라는 편견에 사례를 더하는 것 같아 더욱 속이 상했다.
엄연히 시간제로 급여를 받는 계약이었으나, 착실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마음에 급하지도 않은 일을 처리하느라 1시간씩 퇴근을 늦게 하기도 했다.
'성실하고 똑똑하고 순한 사람'이라는 암묵적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부당한 처사에도 입을 다무는 일이 많았다.
상대방이 무엇을 바라는 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저 '잘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다.
남편은 나에게 시어머님 수준의 보살핌을 기대했다.
나는 남편에게 친정아빠 수준의 자상함을 기대했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했던 만큼 공부에 집중하길 기대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구체적이지도 않고, 기대를 받는 사람에게 확인을 받지도 않았다.
'당연히 해 주겠지.'라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설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영문도 모르는 사람에게 화를 냈다.
당하는 사람에게는 폭력이다.
'그 학교를 다녔으면 당연히 다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기대에 그토록 속상해했으면서, 나 또한 남편과 아이에게 막연한 기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라는 기대는 '이 정도도 못해?'라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나에게 이만큼도 해주지 않는 것, 이렇게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건가?'라는 분노로 이어졌다. 기대하는 바를 허락받았던 것도 아니면서.
마음대로 기대하고 제멋대로 화냈던 빌런의 기대에 움츠러들었던 어린 나를 기억한다.
함부로 기대하지 않기로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상황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습관처럼 '기대한다'는 말 또한 쓰지 않기로 한다.
잘 해내기를 '응원한다'.
좋은 결과를 바라기보다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너 자신을 '믿는다'는 말과 마음을 전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