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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떻게 고발당할지 몰라

by 위드웬디

빌런 동료는 전 직장에서 퇴사할 때마다 노동부에 내부 고발을 했다고 한다. 정말 수 차례 그랬는지 한 번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몰래 대화를 녹취하여 이용한 사람과는 단 한 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이다.

밉살스러운 행동과 말투도 문제였지만, 직원들 사이의 대화를 녹취해서 악마의 편집을 한 후 고발했다는 게 그 동료를 빌런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으니, 편집까지 해서 고발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거라는 불안함에 시달렸다.

다른 동료들과 편안한 일상 대화 한 마디도 나누기 힘들었다.


녹음이 일반적인 전화 통화와는 다르다.

통화는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기본이어서인지,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 대면할 때보다 감정 교류가 적어서인지, 통화 내용은 녹음이 된다고 해도 그러려니 한다. 물론 통화 녹음도 악마의 편집 앞에서는 당해낼 수 없지만, 너와 내가 모두 녹음을 하고 있으니 반박 자료가 있다는 안심이 되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회사에서 마음 편하게 대화를 하겠다는 게 욕심이었을까? 꼬투리 잡힐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자제하는 효과가 있긴 하다.

그러나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어지고, 근로 의욕이 떨어지는 측면이 훨씬 더 크다.


'우리가 나눈 어떤 대화가 어떻게 편집이 되어 고발에 쓰일까?'

'내가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조사를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떤 반박 자료를 제출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나도 녹취를 할까?'

'나는 왜 그때 그렇게 실없는 농담과 과거의 바보짓을 떠벌렸을까?'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에 신경 쓰고, 지나갈 수 있는 실수를 굳이 들춰내어 후회한다. 몰상식한 행동을 한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데, 괜히 내가 감정 낭비를 하는 피해를 본다는 생각 자체에도 화가 난다.


처음에는 빌런에게만 초점을 맞췄던 나머지 동료들도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회사에서 말과 행동에 경계를 늦추지 않으니, 예전보다 훨씬 피로를 많이 느낀다.

당연히 가졌던 서로에 대한 신뢰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게 보였다.




빌런 덕분에 서로를 감시하는 세상이 얼마나 지옥인지 알았다. 감시하지 않아도 눈치 보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았다. 다시 찾기 힘들어진 후에야 알았다.


고발이 두려워서 말을 자제하기보다 자신의 신념과 판단에 따라 말과 행동을 옳게 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자유인지,

빌런 덕분에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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