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 Jul 20. 2018

해외로 이사는 어떻게 해?

집안 살림 전부 호치민으로 옮기기

호치민으로 간다고 했을 때 나조차도 이사 방법이 궁금했었다. 학생 때 노르웨이 가서 잠깐 지냈던 적은 있지만 그 때야 이민가방 하나면 충분했고 살림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많은 살림들을 손으로 들고 갈 수는 없을 테고, 식탁이며 냉장고 세탁기 전부 산 지 3년도 안 된 새 것인데 중고로 팔기도 아까웠다. 다행히 남편 회사에서 이사 서비스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우리는 못 가져가는 것 말고는 전부 가져가기로 했다. 


짐은 컨테이너에 실어서 배를 타고 3주 뒤에 도착합니다.


이런 쇠 박스에 짐을 싣고 이사


이삿짐은 비행기를 타고 뿅 도착하는 게 아니라 배를 타고 온다. 사람은 6시간 이면 오는 호치민, 하지만 이삿짐은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부산에서 싣고 중국도 들렀다가 어디 다른 도시도 들렀다가 천천히 가는 것이다. 게다가 이 땡볕에 쇠로 된 컨테이너 안이 온도 조절이 될 리 만무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음식물은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냉장고 안에 쟁여둔 모든 음식물은 단 하나도 가져갈 수 없으니 가족에게 주거나 미련 없이 싹 버렸다. 


문과생이 Hz까지 공부하게 만드는 해외 이사

또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모터로 돌아가는 대형 가전들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이었다. 우리나라는 220V에 60Hz에 맞춰서 가전제품을 생산하는데, 베트남을 포함한 대부분은 규격이 50Hz였다. 그러면 일본 제품이나 미국 제품 쓸 때처럼 도란스(..라고 부르는 변압기)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제대로 된 Hz 변환기는 엄청나게 비싸고 가정에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뭐, 사실 쓰려면야 쓸 수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고장 날 가능성이 있어서 우리는 패스하기로 했다.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호치민 가져와서 고장 나면 AS도 안되고 고스란히 버려야 하니 큰 가전은 여기서 사는 걸로. 대신 저 큰 가전들은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참고] 60Hz 제품을 50Hz 규격인 나라에서 사용하면 생기는 문제는 이 블로그에 매우 자세히 나와있다. 이 분이 말씀하신 대로 이사 비용과 가전제품의 상태, 돌아올 가능성 등을 모두 고려해서 본인이 선택하면 될 듯하다. 

http://compis72.blog.me/221254477665


대신 컨테이너에 담아도 될 만한 건 미리 사서 쌓아두었다. 원칙대로라면 새로 산 물건은 세관 통과할 때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 내 짐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라서 얼마나 세금이 부과될지는 모르겠다. 고양이 모래나 사료, 그릇이나 필요할 거 같은 작은 생활 가전들을 몇 개 사 두었다. (밑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컨테이너 자리가 많이 남았는데... 뭐 쟁일 수 있는 건 더 쟁일 걸 그랬다.) 


그리고 이삿짐 빼고 한국에서 1주, 그리고 3주 간 베트남에서 쓸 물건들은 따로 캐리어에 담아야 했다. 놀라웠던 건 의약품 (영양제 포함)은 컨테이너에 담을 수 없다고 해서 내 캐리어에 전부 담았다. 그동안 쟁여 둔 비타민들로 내 작은 캐리어 하나가 꽉 찼다. 거기에 내가 한 달간 입을 옷, 간단한 세면도구, 도미 사료까지! 캐리어를 두 개나 가져가는데 가방이 금방 가득 찰 정도였다. 


대망의 이사 당일


이사 업체에서 예쁜 노란 차를 타고 오셨다!

약속한 대로 아침 9시에 이사업체에서 오셨다. 당시 가져가지 않을 물건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이 있는 상태라서 가져가지 않을 물건에 대해 설명드리고, 엄마와 나는 부엌 베란다에서 이사 현장을 지켜봤다. 우리가 딱히 할 건 없지만 애매한 물건들이 나왔을 때 이건 담을지 아닐지 얘기해 줘야 한다. 지금 집어넣으면 3주 뒤에 베트남에서나 물건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권 따로 챙겼냐고 모든 분이 돌아가면서 물어보셨는데 컨테이너에 여권 담아버려서 출국할 때 대략 난감인 케이스들이 많이 있었던 듯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 


점점 집안 살림들이 박스로 들어가는 모습


자잘한 것들은 박스에 담는다 쳐도 큰 가구들은 어떻게 하나 했더니 분리 가능한 건 다 나사 풀어서 분리하고, 그 바깥에 박스를 만들어서 포장해 주셨다. 국내 이사와는 다르게 모든 짐은 박스로 다 밀봉하고, 어떤 품목인지 박스에 다 적어두어야 했다. 그래야 통관할 때도 문제가 없고, 현지에서 이삿짐 풀 때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그나마 사람 둘에 고양이 하나만 사는 곳이라 짐이 아주 많지는 않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넘버링된 박스가 120개 나왔는데, 이 정도면 미니멀리스트라고 얘기해 주셨다. 아이들 있는 집은 보통 박스가 200개 이상, 3-400개도 나온다고. 박스 개수가 곧 이사 비용이니 거리에 따라 다르기는 해도 박스가 3-400개 되면 이사 비용이 3-4천 나온다고 했다. 포장하는 인건비, 운송하는 데 드는 비용, 통관처리 비용 등등. 아마 우리는 겨울옷이나 안 가져갈 것들은 시댁에 미리 가져다 놔서 컴팩트(?)하게 이삿짐을 쌀 수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한 해외이사 에피소드


이사해 주시는 분들은 워낙 경험이 많으시니 별별 에피소드도 많다고 했다. 외국인들은 낡은 가구나 텃밭 가꿀 때 쓰던 모종삽 같이 작은 것 하나도 다 가지고 다녀서 짐이 정말 많다고 했고, 어떤 집은 포장만 이틀, 삼일 째 되는 날에야 짐을 싣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해외에 직접 가셔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짐을 포장해 주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북한에 가서 이사 준비를 해 본 적도 있다고 하셨다. 정말 대단한 직업이다.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니 참 죄송스러웠다. 그나마 냉장고를 미리 안 빼서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물은 드릴 수 있었다! 


모든 박스에는 번호, 품목, 어떤 방에 들어갈 지 전부 표시해 둔다

우리 집은 오전 9시부터 12시 전까지 대부분의 짐들은 포장이 끝났다. 점심식사 후 한 시간 정도 마무리하고 나니 컨테이너와 사다리차가 도착했고, 3시쯤 되니 모든 짐이 다 빠져나갔다. 원래 계획은 9시부터 5시까지 이사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짐이 별로 없으니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이사 끝
우리 짐 싣고 배에 탈 컨테이너 박스


우리 집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짐들은 전부 컨테이너에 실렸다. 컨테이너에 싣고 나서 나무로 마감을 하는데 흔들리지 말라는 걸까? 아니면 이게 끝이라는 표시일까.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공간이 꽤 남았는데 뭐 리클라이너 의자라도 사서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아까도 얘기했지만 박스가 3-400개 나오면 저 컨테이너가 빠듯하게 모자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해외이사를 한다면 내가 쓸 컨테이너에 짐이 다 들어갈지 여러모로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이삿짐이 다 빠져나가고 나는 별로 한 게 없었는데도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온 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아침부터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피곤했다. 엄마와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지 혼자였다면 엄두가 안 났을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 주재원으로 보내고 아이들이랑 홀로 이사 준비하는 분들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나는 고양이 한 마리만 챙기는데도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고양이 출국 준비는 또 다음 포스팅에서!)  


부산에서 출발해 호치민까지

나는 당연히 가까운 인천항에 가서 출항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에서 차에 실린 컨테이너는 먼저 의왕에 있는 컨테이너 터미널(컨테이너 터미널이 있는 건 또 처음 알았다.)에 간 다음 육로나 기찻길을 이용해서 부산까지 가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이 도시 저 도시를 거쳐 호치민까지 온다고 했다. 그래서 3주나 걸리는구나. 미국이나 유럽처럼 더 먼 곳은 5주까지도 걸린다고 하니 그야말로 이삿짐 대장정이다. 어릴 때는 해외로 이사하는 걸 상상도 못 하였었는데 내가 베트남으로 이사를 가다니! 아직은 임시로 머물고 있어서 여행하는 기분인데 3주 뒤에 우리 짐을 만나면 정말 집에 사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얼른 우리 짐을 만날 수 있기를! 


귀염돋는 노란색 트럭들, 감사했어요!

[덧] 프로페셔널한 이사 업체 담당자분들 덕분에 무사히 이삿짐을 싸서 호치민으로 보냈다. 이사 끝나고 오히려 나에게 조심히 호치민으로 잘 가라고 하셔서 감동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전 03화 호락호락하지 않은 해외이주 준비, 서울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