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앨리스 Jun 24. 2018

호락호락하지 않은 해외이주 준비, 서울편

시골쥐 부부의 서울 여행

내가 회사를 퇴사한 건 6월 1일, 6월 3일부터 12일까지 우리는 여행 중이었고 남편의 출국일은 6월 27일에서 23일로 당겨져 본격적인 해외이주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 해봐야 10일밖에 없었다. 10일이라고 하면 꽤 길어 보이지만 처리해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매우 빠듯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캐나다에서 돌아와 거의 일주일은 시차 적응한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10시면 잠드는 날을 반복했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혼을 쏙 빼놓은 하루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베트남대사관: 남편 여권 공증

이 날은 서울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일은 베트남대사관에 가서 여권 공증을 받는 것인데, 방법이 좀 까다로운 데다가 일하는 시간도 하루에 얼마 되지 않아서 직접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행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많다. 남편이 다른 건 다 대행을 맡겼는데 여권은 한국 여권이 아니라서 대행업체에서 거절했다며 (처음 보는 케이스라 될지 안 될지 몰라서 거절한 듯...) 직접 가봐야겠다고 했다. 우리의 목표는 아침 9시에 삼청동의 베트남대사관에 도착하는 것. 부랴부랴 막히는 출근 시간을 피하기 위해 8시 이전에 나왔지만 베트남대사관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30분 정도였다. 



가정집 대문 같기도.. 

예상은 했지만 주차할 공간도 없고 구불구불한 언덕 어딘가에 위치해서 입구를 찾기에도 난감했다. 우리는 대충 차를 아무 데나 구겨 넣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나도 외국 대사관을 가봤지만 이렇게 야외에 있는 대사관은 처음이었다. 보통 오피스 빌딩 안에 있지 않나... 여하튼 출입증 같은 목걸이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컨테이너 가건물 같은 게 하나 있었다. (사진을 꼭 찍고 싶었는데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 찍지 못함) 비좁은 그곳에서 신청서를 쓰고 번호를 부르면 여권과 함께 신청서를 제출한다. 


문제의 2천원짜리 복사카드

바로 되는 줄 알았더니만 여권 사본을 다시 내라고 한다. 지금 이미 복사해 온 거 있는데..? 했더니 캐나다대사관 도장이 찍혀있어서 안된다고 새로 해서 내라고 했다. 그럼 여기 복사기 어딨냐고 했더니 대기실 뒤편에 복사기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무료로 복사할 수 있게 하는 관대함은 없었다. 복사카드를 충전해야 하는데 충전은 현금만, 2천 원부터 가능하다. 복사 20번 할 수 있는 카드인데 다시 여기 올 일이 없으니 1장에 2천 원짜리 복사를 한 셈이다. 혹시 이거 베트남대사관의 부업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사람 손에 저 카드가 들려있었다. 현금이 없어서 뽑으러 가는 사람도 있었다. 


삼청동: 아침식사

복사카드의 공격에 멘탈이 탈탈 털린 우리는 그다음 펼쳐질 일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우아한 브런치 아니면 푸짐한 밥을 생각하면서 아침이나 먹자며 삼청동으로 내려갔다. 12시면 여권 공증이 끝난다고 했으니 2시간 정도는 여유 있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삼청동의 가게들이 아침에 이렇게 문을 다 안 여는 지는 몰랐다. 그 흔한 밥집들도 다 11시는 돼야 문을 연다고 했다. 차를 세울 곳도 마땅치 않고, 별 수 없으니 일단 발레파킹을 맡기고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 


바로 옆에서 찾은 조용한 브런치 가게, 만세! 

주차를 맡기고 나오자마자 발견한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다행히 브런치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차한 곳 바로 옆 건물이기는 한데 이 건물 앞에 대야 주차비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차를 빼오겠다고 했다. 차 맡긴 지 5분도 안 됐으니까 빼오겠다며... 그렇게 우리는 조금 전 넣었던 차를 다시 빼서 이 카페 앞에 주차했다. (이때만 해도 거기가 이 카페 앞인 줄 알았다.) 



문제의 치아바타 프렌치토스트

나는 프렌치토스트를, 남편은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지금 식빵이 구워져 있지 않아서 모든 메뉴는 치아바타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조금 의심쩍기는 했지만 맛있게 만들어주신다고 해서 그럼 알겠다고 했다. 쫄깃쫄깃한 치아바타를 칼로 썰어먹는 기분이라니... 우리는 오늘 정말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며 맛은 체념하고 적당히 배를 채웠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도 쉬는 게 아니라 우리는 둘 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다음 일을 준비했다. 나는 성남 차량등록사업소의 콜센터와 전화를 하면서 자동차 양도 관련 서류를 챙겼고, 남편은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제 서류를 찾으러 갈 시간이 돼서 차를 빼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가 밥을 먹은 곳의 주차장이 아니어서 발레파킹 비용을 2배나 더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아니 그 앞이나 저기나 별로 차이 안 나는데요, 했더니 그래도 그 주차장이랑 여기랑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 거였으면 얼굴에 철판 깔고 처음에 주차한 곳에서 차 안 뺐을 텐데 말이다. (처음에 주차했던 곳이랑 가격이 똑같았음) 뭐 별 수 있나, 주차비를 무려 만원이나 지불하고서야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베트남대사관에서 서류를 찾는 것도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지만, 서류 찾을 때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아니고 줄 서서 들어가서 물어보고 다시 나오고를 반복해야 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고생하면서 온 보람은 있었다. 베트남대사관 도장이 찍힌 공증 문서를 받은 것! 이제 우리는 다음 미션을 수행하러 명동으로 향했다. 



명동: 달러 환전

명동에서는 돈 환전을 하기로 했다. 베트남 돈으로 환전할 생각은 아니었고 일단 달러로 환전해서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베트남 돈으로 환전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은행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환전소에서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서 (우리는 큰돈을 환전할 예정이니 차액이 컸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환전소를 가기로 했다. 


출국할 때 세관 신고 없이 들고나갈 수 있는 돈은 인당 최대 1만 불. (1만 불 초과해서 반출할 경우 사전에 신고해야 하고, 신고한다고 따로 돈 드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3만 불을 환전해서 들고나가기로 했다. (남편 1번, 내가 2번) 환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금을 찾아야 하는데 3천 만원을 들고 환전소를 갈 생각 하니 갑자기 우리 둘 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5만 원짜리 묶음을 챡챡 세어서 건네주는데 혹시나 오토바이 날치기 같은 거 당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 내 숄더백이 컸기에 망정이지, 내가 조그마한 가방을 들고 왔으면 돈이 든 종이가방만 든 채로 걸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참고: 외화반출 관련 규정>

 - 일반해외여행자의(외국인 거주자 제외) 미화 1만불초과 해외여행경비

ㆍ출국시 세관에 신고하여야 합니다.

http://www.customs.go.kr/kcshome/main/content/ContentView.do?contentId=CONTENT_ID_000000585&layoutMenuNo=49



베트남을 생각나게 하는 환전소 비주얼

나는 환전소라고 해서 은행처럼 번호표 받고 기다렸다가 환전해주고 그런 곳인 줄 알았더니만 또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의 조그마한 부스였다. 원래 한꺼번에 얼마 이상 환전하면 기록이 남는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본인 확인도 없고 환전소에서 갖고 있는 만큼 환전해 주는 곳이었다. 처음에 갔던 곳에서는 3만 불까지 갖고 있지 않아서 일부만 환전해 줬고 나머지는 쌀국수 집 3층에 있는 환전소에 가서 하라는 것이었다. 이 무슨 영화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좁은 골목길 상가 위에 있는 환전소에서 2천 만원을 환전해야 한다니... 내심 불안했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덜덜 떠는 시골쥐 부부 2인이었을 것이다.) 


내 눈앞에서 기계가 돈을 세긴 했지만 혹시 돈을 덜 준 거면 어떡하지, 한국 돈 거스름돈 덜 받은 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저 조그만 의자에 둘이 앉아 돈을 세고 있었더니 환전소 아저씨가 푸훗하면서 뭐하냐고 물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꿋꿋이 돈을 셀 수는 없어서 일단 대충 정리하고 차로 향했다. 



<참고: 외화 살 때 저렴한 곳 찾는 법>

환전소별 환율 알려주는 사이트가 있어서 우리는 그걸 보고 찾아갔다. 우리는 1달러에 1,108원 정도에 샀고 당시 은행권에서는 1달러에 1,123원 정도였다. 

https://www.mibank.me/exchange/saving/index.php?currency=USD#none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큰돈을 손에 쥐고 긴장했던 탓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나는 차에서 편하게 돈을 다시 세 보았다. 당연히(?!) 우리가 원했던 3만 불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휴,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지. 적은 돈이었으면 아무 생각 없었을 텐데 큰돈은 그냥 송금하는 게 싸기도 하고 정신건강에 훨씬 이로운 것 같다. 


집에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서, 유명템 소떡소떡


야탑: 성남 차량등록사업소 서류 확인

그다음은 차량등록사업소에 가기로 했다. 지금 타고 있는 차를 내 동생에게 공동명의로 넘기고 동생이 타도록 할 예정이라 이것저것 서류가 필요했다. 내 남편은 동생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출국해 버리는 거라 미리 서류 작업을 해 두는 게 필요했다. 콜센터에 전화해서 미리 확인하기는 했지만, 신청서 같은 걸 받아와서 양식을 먼저 채워두고 싶었다. 사업소 안에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고, 베트남대사관과는 다르게 복사기나 팩스도 자유롭게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다행히 내가 미리 콜센터에 물어봤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서류 준비도 순조롭게 끝났다. 


차량등록사업소 가는 길.. 왜 이리 험난해 보일까, 우리의 미래인가

<참고: 차량 양도 시 필요한 것 - 자동차 이전등록> 

1) 자동차 이전등록 신청서 : 차량등록부서에 비치, 홈페이지에서 서식 출력 가능

2) 자동차등록증  

3) 의무보험가입(피보험자 : 양수인 가입) 

4) 대리 신청 시

 - 위임자의 인감증명서(본인서명사실확인서)1부

   ㄴ 인감증명서는 양수인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까지 기재되도록 발급 + 양도인 일반도장 또는 인감 

 - 대리인 신분증

 - 신청인 본인 신분증 

5) 소유권 공동명의 조서

6) 양도증명서 - 잔금지급일 기록: 가족 간 거래의 경우 잔금지급일은 방문일로 신청해도 무방 

7) 이전등록신청서: 양수인 직접 방문 시 인감증명서 필요 없음, 서명으로 대체 


(**) 비용: 취득세 및 공채 

- 대표자 주소지가 경기도라면 공채 면제 

- 취득세: 중고차시가표준액 7%에서 지분으로 결정됨 



그다음에 주민센터에 가서 차량 양도를 위한 인감증명서를 받고,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을 위해 거소 사실 확인증명서(남편 것), 나의 가족관계 증명서와 혼인관계 증명서까지 모두 발급받았다. 이렇게 우리의 바빴던 하루는 끝났고 저녁시간이 되기도 전에 우리는 지쳐서 넉다운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옷을 너무 편하게 입고 가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어른스럽지 못하게 제대로 요청하지 못하고 좀 버벅대서 그랬던 건지 모르지만 매끄럽게 착착 진행된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끝내긴 했지만 확실하지 않고, 어딘가 좀 불안한 상태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우리를 괴롭혔던 대부분의 일들은 이 날 하루에 모두 끝났다. 이런 일은 누구나 처음이니까,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을거라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이제는 또 변화된 상황에 맞춰서 조금씩 움직여야만 한다. 

이전 02화 해외로 살러 나갈 준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