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다음 달 중순쯤 호치민으로 떠난다.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고 '살러' 가는 거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슬로건의 에어비앤비 광고도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거기서 생활을 해야 한다. 여행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호치민에 가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 떠나게 된 이유
100% 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의 상황 때문에 호치민에 가게 됐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이래저래 복잡한 상황으로 문을 닫고(정말 말 그대로 문 닫았다, 폐업.) 대신 해외에 있는 법인으로 옮길 수 있었는데 그중 베트남을 선택한 것이다. 하던 일도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과 외국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이 또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여러 옵션 중에 내가 베트남을 적극 추천하긴 했다.)
올해 2월에 남편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해서 우리 둘 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직 젊으니까 어디든 재취업할 수 있겠지,라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와 정신승리도 하루 이틀이지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리고 퇴사일이 다가올수록 압박감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가슴 졸이는 시간들을 보내다 4월 즈음 베트남 쪽과 이야기가 잘 됐고 4월 말에 우리는 답사 겸 호치민에 한 번 다녀왔으며, 나는 5월 초에 회사에 퇴사하겠다고 얘기했다.
#2. 떠나는 것에 대한 생각
4년 간 잘 다니던 회사와 10년 가까이 살던 지역, 30년 동안 살던 나라와 가족들을 떠나는 게 생각만큼 간단한 건 아니었다. 그간 나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려면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 되긴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 방법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부부가 떨어져 지내야 할 만큼 내가 이 곳에서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중요했다면 내가 남편에게 베트남 법인에 지원하라고 얘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3. 언제 돌아올까?
남편이 주재원이었다면 계약 기간이 있으니 오히려 마음 편하게 일정 기간 내의 삶에만 집중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 돌아올지, 과연 돌아올 것인지에 대한 답변은 우리 둘 중 누구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렇게 단기 생활은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고 떠나는 것이고, 베트남에서의 생활도 어느 정도 장기 계획을 세운 다음 진행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 살아보지 않아서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다음 우리의 자취는 그때 만들어보는 걸로.
남편은 한국 생활이 이제 열흘 밖에 남지 않았고 나도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하나하나 구체화 되어가면서 정신없이 해외 이주 준비를 하는데 생각보다 챙길 것이 많다. 대학생 때 노르웨이에서 잠깐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번 프로젝트는 최소 10배 이상 복잡하다. 이삿짐도 이민 가방이나 캐리어로는 들고갈 수가 없는 수준이니 컨테이너로 이삿짐을 보내야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도 끊을 지 계속 낼 지 결정해야 한다. 거기에 고양이까지...
이제 브런치에 하나씩 호치민에 살러가는 이야기를 남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