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르고 계약금 내기까지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던 것처럼 호치민 정착 초기 우리의 가장 큰 과제는 들어가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이삿짐도 보냈겠다, 지금 살고 있는 임시 집 계약기간도 얼추 끝나가니 나는 남편이 출근한 사이 다시 House Hunting에 나섰다.
이전에 만났던 부동산 사람들에게 Zalo 메시지를 쫙 뿌리고 (*베트남에서는 Zalo를 많이 쓴다. 베트남의 카카오톡 급 메신저인데 나중에 서비스 리뷰는 다시!) 그들이 보내 준 매물 리스트를 보며 투어에 나섰다. 지난번에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이 와중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이 나타났다!
이 집이 마음에 들었던 건...
- 일단 거실이 넓다. 한국에서 소파를 들고 오는데 다른 집들은 거실이 의외로 작아서 소파가 못 들어갈 것 같았다.
- 앞 동과 가깝지 않고 나름 리버 & 랜드마크 81 뷰 (그렇다고 랜드마크 81로 창문이 다 가려지는 건 아님)
- 집이 깨끗하고 베란다에 나무 데크가 깔려있었음
- 베란다에 나가면 나름 공원도 보임
이 날 집을 보고, 남편에게 브리핑을 해 준 다음 바로 그 날 저녁 부동산 담당자에게 다음 날 만나서 보증금을 내겠다고 했다. 베트남에서의 보증금은 원래 월세 2달 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삿짐 들어오는 날을 확정할 수가 없어서 입주 날짜를 조금만 더 미루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그럼 일단 1달 분이라도 만나서 걸어두라고 했다.
다음 날 부동산 사무실로 가면 되냐고 했더니 내가 입주할 건물 로비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진에 개인정보가 많이 나와서 가렸는데, 집주인의 신상정보와 나의 신상정보 (여권번호 포함)를 적고 나와 집주인 그리고 부동산까지 3자가 하나의 계약서에 사인하는 구조다. 이건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고, 한 가지 특이한 건 보증금 계약서가 3부였는데 모든 페이지마다 사인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과 다르게 본 계약은 입주하는 날 만나서 또 쓰자고 했다. 그럼 그때 나머지 보증금 (1달 치 월세)을 또 주고 입주하면 끝.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 뒤에 집주인이 나타났는데 나보다 어려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부럽다...) 그녀는 매우 친절했고,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빈 집이니 입주일 전에 가서 물건을 세팅해도 된다고 했다. (관대하다...) 우리 이삿짐이 늦게 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이번 주에 호치민에서 가까운 항구에 짐이 도착하고, 일주일 정도 통관절차 거치면 다음 주에 짐을 풀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우리가 특별히 월세를 낭비할 필요도 없게 됐다.
집주인에게 1달치 월세를 달러로 주고서 간단하게 보증금 계약서 작성은 끝났다. 그 후 나는 부동산에 여러 가지 사항들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다행히 대부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었다. (요구사항 리스트업 해서 보내는데 오래간만에 일하는 기분이....)
1) 월세를 달러가 아닌 베트남 동으로 낼 수 있는지 --> YES
- 우리는 수입이 베트남 동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월세를 베트남 동으로 내는 게 유리했다. 달러로 내려면 환율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또 손해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니 최대한 손해를 줄여야 했다.
- 관리비도 월세에 포함시키고 싶었는데 집주인이 이 단지에서 멀리 살기 때문에 매달 관리비를 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럼 관리비는 우리가 매달 고지서를 받아서 따로 지불하면 되니까 이건 수긍했다.
2) 부엌 유리가 손상된 부분이 있었는데 고쳐줘야 함 --> YES
- 집 볼 때 부엌 쪽 유리에 금이 가 있었다. 이 부분 고쳐달라고 했더니 집주인이 보고 갔다며 우리 들어오기 전까지 고쳐준다고 했다.
3) Local residence certificate (Giấy tạm trú) 받기 --> YES
- 현재 남편에게 Work Permit이 나왔지만 아직 거주증(Resident Card)이 발급되지 않은 상황이라 땀주를 받아야 나와 남편 모두 거주증을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입주일인 다음 주 중에 부동산에서 진행해 준다고 했다.
* 참고: tạm trú(땀주) - 임시거주증
베트남에서는 본인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외국인도 마찬가지고, 월세 계약을 하는 경우 집주인이 땀주를 신청해줘야 한다. 여행자들도 호텔에 여권을 제시하면 호텔에서 임시거주 신고를 해 준다. 임시거주 신고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 공안이 와서 이래저래 복잡해질 수 있으니 베트남에 거주한다면 꼭 땀주를 챙길 것!
4) 입주 청소 --> YES
- 보통 한국에서 입주 청소는 세입자가 했는데 여기는 어떤지 물어봤다. 다행히도 집주인이 다 청소해 준다고 했다. 만세!
베트남에서는 집주인만 복비를 냅니다
참,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세입자가 복비를 내지 않는다. 집주인이 내는 부동산에 복비를 주는데, 복비가 보통 월세 한 달 분이라고 들었다. 베트남 물가 생각하면 부동산들도 아마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집 구할 때 복비 내고 이번에 계약 못 채우고 나가면서 또 복비 냈는데 (....) 베트남 와서는 보증금과 월세만 내면 끝이다. 게다가 보증금 금액이 크지 않으니 한국 전세제도처럼 전 세입자와 현 세입자가 같은 날 이사할 필요도 없고, 빈 집으로 있어도 집주인은 부담이 별로 없다. 내가 호치민에 와서 노옵션 집들을 거의 20개 넘게 본 것 같은데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손에 꼽을 만큼 있었고 다 빈 집이었다. 대신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면 아무리 길어도 보름 내에는 입주하길 바란다는 것.
내가 들어간 집은 노옵션이라 그렇지만 보통 풀옵션 집들은 세입자가 빨리 나가거나 안 구해지면 단기 임대로 돌리고 수익을 낸다고 했다. 여기 베트남의 풀옵션 집들은 기본적인 가전, 가구는 기본이고 집주인에 따라 침대 시트나 이불, 간단한 그릇 같은 것까지 포함된 경우가 있다. 그야말로 자기 몸하고 옷만 챙겨서 오면 바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집값에 맞먹는 전세금을 구하기 위해 은행 대출 구하고, 계약 끝나서 이사 나간다고 했지만 다음 세입자 안 구해지면 보증금 못 받을까 봐 불안해하고, 이사할 때 또 그 보증금 받아서 새로 이사 갈 집 잔금 치러야 하고, 잔금 입금돼야 또 이삿짐 풀 수 있고... 지금이야 인터넷 뱅킹이 워낙 잘 되어 있으니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말잇못)
물론 여기 월세가 싼 건 절대 아니다. 베트남 물가에 비하면 (물론 내가 구한 집이 엄청 새 집이고 편의시설도 아주 가깝고 여러모로 거의 최상급이긴 해도) 엄청나게 비싼 월세고, 한국이랑 비교해도 내가 월세 그만큼 낸다고 하면 다들 놀랄 정도다. 아, 이건 다들 월세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뭐 그래도 보증금 거의 없이 들어가는 집이니 급변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장점.
이제 다음 주에 한국에서 온 이삿짐 채우면 진짜 우리 집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