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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Aug 07. 2018

해외이사 대장정 마지막 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난번 부동산 계약 이후 드디어 입주 날이 앞으로 다가왔다. 이사 날짜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세관 통관이 언제 끝날 지 몰랐기 때문이다. 대강 날짜는 알려줬지만 정확한 날짜는 7월 31일에 알려준대서 우리는 계약 시작일을 8월 3일로 일단 정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일 이사 가능?

내일 당장 이사할 수 있겠냐고 메일이 왔다. 뭐라고! 내일?! 지금 청소업체도 안 알아봤고 부동산에도 얘기 못했는데! 부랴부랴 부동산 통해서 집주인한테 '내일' 이사 가능하냐고 물어봤지만 이래저래 커뮤니케이션이 지체되면서 결국 24시간 이내 이사는 하지 못하게 됐다. 예정된 시간보다 하루 더 늦게, 우리는 짐을 받기로 했다. 


대망의 이삿날, 아침 일찍 새 집에 와서 보니 청소를 했다는 집 상태가 생각보다 깨끗하지는 않았다. 특히 바닥에 먼지가 많았는데, 이삿짐 들어오기 전에 후딱 청소를 하면 되겠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급히 청소업체를 불렀고 여기서부터 오전 일정이 완전히 꼬여버렸다. 


이사 안 해 본 초짜 부부라는 게 여기서 티가 난다. 이사랑 청소는 같은 날 하면 안 된다는 걸 상식적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그 순간 무슨 생각이었는지 홀린 듯 청소업체에 얘기를 해 버린 것이다. 이 와중에 그들의 영어와 우리의 영어는 100% 통하지 않았고 (아마 나 오늘 이사한다는 얘기를 그쪽에서 못 알아 들었을 것이고 그쪽에서도 뭔가 얘기했겠지만 우리는 못 알아들은 게 틀림없다.) 그야말로 멘붕이 시작됐다. 신혼집 이후 첫 이사를 해외로 하는데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다니.... 


이삿짐이 생각보다 일찍 왔고 청소업체는 생각보다 늦게 왔다. 


그래서 이삿짐 업체 직원과 청소 업체 직원이 같은 곳에서 맞닥뜨렸고 모두 어리둥절. 우리는 청소업체에 전화해서 미안한데 오후에 오거나 내일로 서비스를 미룰 수 있겠냐고 얘기했지만 전화로는 영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현장에 와 있는 청소업체 매니저가 이 상황을 인지해서 업체에 잘 얘기해줬고, 다음 날 더 비싼 패키지(...)를 쓰는 걸로 합의(?!)한 다음에야 온전히 이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동천동에서 출발한 호랑이 박스 호치민에 도착!

이사가 시작되면서 복도에는 이삿짐 박스가 가득... 이사 스타트를 알리는 순간 빈 집에 박스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매니저로 보이는 한 아저씨는 집으로 들어오는 박스 번호를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우리가 보낸 118개의 박스가 호치민으로 잘 들어오는지 확인해 주었다. 


118개의 박스가 다 들어오고 이제 박스를 풀겠다고 하는데 맘 같아서는 옆에 서서 이건 어디 저건 어디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온 박스가 집안에 다 들이차면서 사람이 서 있을 공간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쫓겨나듯이 밖으로 나가 밥을 후딱 먹고 돌아오기로 했다. 


이건 이사를 한 것도 안 한 것도 아니야

두어 시간쯤 지난 뒤에 집에 와보니... 반가운 우리의 세간살이가 온 집안에 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사실 그들에게 하나하나 다 시켜서 정리해 달라고 해도 되지만 그러느니 그냥 내가 하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이삿짐 업체 직원들에게는 큰 가구들 위치만 잘 잡아달라고 하고 우리는 폭탄 맞은 것 같은 집안에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먼지만 쌓여있던 바닥은 박스를 해체하면서 더 너저분해졌고 다음 날 청소업체가 온다는 게 새삼 다행인 상황이 됐다. 


우리는 일단 저 모든 선반이나 옷장, 3주 동안 컨테이너 안에서 묵은 수납장들을 닦아야 물건 수납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대충 짐들의 위치만 잡아놓자고 했다. 나머지는 청소업체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청소.. 되고 있는 거죠...?

이사 다음 날, 청소 업체에서 아침 일찍부터 와서 청소를 시작했다. 방 2개짜리 집인데 사람은 거의 8명 가까이 온 것 같았다. 역시 가장 비싼 패키지의 힘인가... 모든 수납장은 물건 다 꺼내서 닦은 다음 다시 물건 정리해달라고 했고, 특히 그릇들은 새로 다 닦아서 담아달라고 했다. 우리가 청소 업체로부터 안내받은 청소 시간은 약 6시간. 아침 8시에 시작했으니 오후 2시쯤이면 끝나려나 했지만....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모든 청소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모든 물건들이 각 잡힌 채로 정리됨!

음? 예상보다 일찍 청소가 끝났다는 말에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청소 상태를 점검하러 갔다가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먼지투성이였던 바닥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밖에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은 모두 수납장 안에 들어갔다. 바로 맨발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집이 깨끗해졌고 물건들도 대체로 자리를 잘 잡았다. (물론 고양이 간식과 사람용 조미료가 한 서랍에 들어가긴 했지만...)


야반도주 아님, 임시숙소에서 이사 중

우리가 살고 있던 임시 숙소에서 이사한 새 집까지는 같은 단지 안에 있기 때문에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임시 숙소의 짐(과 고양이)을 사람 불러서 이동시킬까 하다가 별거 없겠거니 하고 짐을 싸들고 나온 순간 우리는 후회했다. 저 캐리어 4개가 끝이 아니고 내가 면세점에서 힘겹게 사 온 휴롬 (거의 10kg), 우리의 뚱냥이 도미 (캐리어까지 하면 거의 10kg)와 각종 고양이 짐, 기타 등등하면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고, 그냥 우리가 여러 번 움직이기로 했다. 


베트남의 이케아, 우마(UMA)

노옵션 집은 우리의 짐과 가구로 집을 채울 수 있어서 편한 대신 원래 집에 있던 가구가 없으면 또 사러 나가야 한다. 집 근처에 '베트남의 이케아'로 불리는 우마(UMA)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정말 이케아에서 본 듯한 가구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물론 이케아처럼 쇼룸이 그럴싸하고 그랬던 건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디자인도 나쁘지 않았다! 우마에서 신발장을 사고 빈프로(VinPro : 베트남의 하이마트 같은 전자제품 매장)에서 세탁기와 냉장고를 사니 신혼살림을 다시 장만하는 기분이었다. 


다음 이사에는 정말 이사만 하고 싶다. 


이사했는데 쓰레기가 왜이렇게 많이 나옴?

이사 후 처음으로 이 집에서 자는 날, 우리는 정리를 끝내야 잘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저녁식사 이후부터 완전한 노동 모드에 돌입했다. 각자 방 하나씩 맡아서 우리가 쓰기 편하게 집기들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대부분 물건들은 제자리에 들어있었지만 미묘하게 동선에 안 맞거나 이상한 위치에 놓여있는 건 우리 입맛대로 다 바꿔둬야 한다. 그리고 버릴 것들은 다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하다 보니 쓰레기가 또 한가득. 베트남에서는 분리수거를 안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또 쓰레기를 한 무더기 내다 버렸다. 


안전한 침대가 되기 전까지는 누울 수 없다!

이제 침대에 누워볼까 생각이 드는 밤 12시... 우리 침대는 머리맡에 전구가 있는 모델이라 어댑터를 끼워야 하는데 이사 업체에서는 이걸 모르고 침대를 벽에 딱 붙여두었다. 벽과 침대 사이에 공간을 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에 침대를 잡아당긴 순간, 침대를 지탱하고 있는 가운데 있는 기둥이 살짝 휘어져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침대에 누우면 침대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학도 출신인 남편은 직접 침대를 분해해서 정상화시키겠노라 다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 시간이 이미 밤 12시가 넘었다.)


퀸 사이즈 매트리스를 걷어내고, 드라이버로 프레임을 감싸고 있는 보드를 떼어내면 제일 밑에 철제 프레임이 있다. 그 밑에 작은 기둥들 위치를 하나하나 맞추고 나서야 비로소 '안전한 침대'가 되었다. 그리고 침대 프레임이 이렇게 허술하게 생겼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Home Sweet Home

이제야 집에서 씻고 잘 수 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정리가 끝났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내가 쓰던 가구들과 물건들이 이 곳에 있으니 정말 '집'에 있는 느낌이 든다. 고양이 도미도 자기가 쓰던 스크래쳐와 캣타워, 먹던 밥이 있으니 많이 울거나 보채지도 않고 금방 새 집에 적응했다. 


늘 하던 것처럼 집에서 먹고 자고, TV 보고, 고양이랑 노는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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