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한 외침
나는 연기학원을 한 때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연기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연기였다.
그때는 그냥 연기라는 것 자체가 어려워 그런가 보다 했다.
훗날 나는 그 난제를 풀 열쇠를 찾을 수 있었다.
더 돌이켜보면 중학교 시절에 나에게만 말을 공격적으로 혹은 함부로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는 내게 저건 너무하지 않냐며 너는 괜찮냐고 묻곤 했다.
나는 싫은 소리 할 줄 모르는 바보천치였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화를 내지 않고 꾸역꾸역 쌓아온 탓에 신체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처럼 열이 오르는 게 잦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한의원을 찾았다.
맥을 짚던 한의사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화나는 일 있어요? 젊은 사람이 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지요"
그날 나는 생에 처음으로 콧속에 침을 맞았고 그날을 이후로 깨끗이 나았다.
아마 막힌 혈을 뚫어서, 화가 어떻게든 빠져나갔기 때문이리라.
늘 때를 놓쳐버린 말들이 가슴에 쌓여서 한 번에 빵 터져버리곤 했다.
그러니 어딜 가나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이 생기기 쉽상이었다.
나는 그날의 상담에서도 일터에서 할 말을 제때 하지 못하고 있어
가슴이 답답했음을,
용기를 내어 얘기했지만 그때는 타이밍이 많이 늦었음을 고백했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부터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정말일까?
나는 돌이켜보았다.
고교시절 나는 병든 어머니와 계속 기울어만 가는 가세에 함부로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나마 용기 내 고백한 편지에 어머니는 응답을 하지 않았고,
같이 살던 외할머니 역시 나보다 늘 엄마가 먼저였다.
질책과 무관심으로 돌아오는 반응에 체념한 나는 이야기를 잘하지 못했다.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아버지라는 존재가 술을 먹고 부리는 행패에 나는 늘 불안감에
휩싸인 채 살았다.
한시도 불안과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게 내가 범불안장애를 앓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참 막막했다.
시작도 안 한 내 인생이 벌써부터 문제가 태산이었다.
"이렇게 문제가 많아서 어떡하죠 선생님? 저는 뭐부터 해야 할까요.."
"온화한 외침이요.
웃으면서 할 말을 하는 거예요.
제가 본 우주씨는 융통성이 없어요"
"선생님, 저는 억지로 웃으면 얼굴에 경련이 와서 부자연스러워 보일 거예요"
"그럼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연습해야 해요. 그게 가장 첫 번째예요."
옛날부터 착한 사람과 만만한 사람은 다르다고 했다.
착하지만 만만하지 않은 사람의 특징이 바로 이 능력의 유무가 아닐까.
나름 세월의 풍파를 겪은 나는 이전보다 많은 것에 단단해졌다.
타인한테 근사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화병으로 한의원 가는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집에 와서 때를 놓쳤다며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것이 삶에서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