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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5년이 지났지만 나무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나무는 편하게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점점 불안해졌고, 두려워졌고, 무서워졌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모든 게 당연한 건 아니었지만,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게다가 나무는 아이를 갖는 것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지도, 미루지도 않았다. 생기면 나을 거였고 생기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처음 1,2년은 별 걱정하지 않았다. 시댁의 아이에 대한 요구는 아주 가끔, 아는 누군가의 손주 돌잔치에 다녀왔을 때, 그때 잠시였다.
결혼한 지 3,4년이 되자 더 자주 물었고, 효인이는 아직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기에, 조금 더 있다가 가지겠다고 별생각 없이 대신 말해주었다. 효인이의 말은 믿어주는 것 같았고, 안 생기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하며, 아직 안 가진다는 사실에 효인이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었다. 너 어릴 때 얼마나 귀여웠냐면..
5년이 넘어가자, 나무는 자신이 불안했다. 묻기도 전에 다른 말을 해야 했고, 물을 까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때쯤 되자, 효인이도 누군가가 되려 걱정하며 묻는 아이의 소식에 자신도 모르는 간절함이 생기고 있었고, 아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이제는 아이를 바라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나무는 병원을 다니며 몸 상태를 체크했고, 아무 문제없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생기지 않는 아이를 오게 하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다. 준비하고 기다리는 과정에 너무도 지쳐갔고, 고통은 여전했지만 점점 무뎌져갔고.. 그럼에도 와주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느라 애가 탔다.
나무는 불안했지만 자신의 운명의 결말, 혹시나 그 결말이 잔인하게도 뜻대로 되지 않을까 봐 두려워, 아이에 대한 간절함을 애써 무덤덤하게 여기려고 노력했다. 너무도 간절하게 원했기 때문에 불편해서 안 오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언젠가 와 줄 아이를 기다리며 나무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무야, 나는 아빠가 되고 싶다.”
술에 잔뜩 취한 효인이의 말에 나무는 무너졌다. 한 번도 나무에게 말하지 않았던 진심인 것 같아, 술김에 전하는 효인이의 심정이 어떨지.. 나무는 고마웠고, 너무도 미안했다.
“다들 나보고 왜 아이를 안 가지냐고 하잖아. 나무야, 이제 나도 아빠가 되고 싶어.”
가족 구성원에 대한 주위의 당연한 인식은 효인이에게 결국 세뇌가 되어 아이에 대한 간절함을 심어주었다. 그러니까.. 아이가 생기지 않았기에 가지게 된, 만들어진 간절함이었다.
나무는 자신의 짐작보다 더 아이를 원하는 효인이라는 생각에, 효인이가 가지고 있는 그 간절함에 주저앉았다.
“미안해.”
나무의 눈물이 넘쳐흘렀다. 효인이는 잠에 들고 있었고, 잠꼬대처럼 계속 말하고 있었다. 나도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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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잠들어 있는 나무를 효인이 흔들어 깨웠다. 이번에도 술에 취해 있었고, 대신 정신은 멀쩡해 보였다.
“늦었네? 얼른 씻고 자. 출근해야지..”
나무의 말에 효인이의 표정이 울듯했다.
“나무야..”
나무는 효인이가 켜 놓은 스탠드 불빛에, 흔들리는 효인이의 눈빛을 보았다.
“내가.. “
효인이는 지방 출장에 가서 알게 된, 그곳에서 자주 어울리던 친한 여자동료가 있다고 했다. 아이 없이 이혼한 여자였고, 서로 친구처럼 건전하게 지냈다고 했다. 건전하게..
그리고 한 번의 실수로 그 여자동료가 임신을 했다고. 나무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뭘 물어야 될지 몰라 효인이만 계속 바라보았다.
“나무야.. 미안해..”
나무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자신이 문제였던 것 같아 나무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지 못했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던 효인이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진 것 같았다. 아빠는 효인이가 맞지만, 엄마는 나무가 아니었다. 나무는 이상할 만큼 냉정해지고 있었다. 모든 게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나무는 그다음 상황이 그려졌다.
“그 아이의 아빠가 되겠네..그리고..”
효인이는 나무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결정 사항이 없다는 듯이, 그럼에도 나무가 터무니없는 제안을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되는 거잖아..”
나무는 그 선택을 할 거였다. 이혼.. 나무는 그 순간 알았다. 여기가 자신과 효인이의 끝이라는 걸.
“자고, 다시 얘기하자.”
지금 여기서 끝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였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이라는 것에 생각이 멈춘 나무는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끝나버린 결혼에, 자신에게는 결국 와주지 않은 아이에, 나무는 혼자 소리 없이 울었다.
***
나무는 어느 누구도 왜 이혼을 결정했냐고 묻지 않음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들 생기지 않는 아이를 원인으로 생각하는 듯했고, 그래서 굳이 나무의 상처를 확인시키고 싶지 않아 했다. 다행이었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고, 아이도 있다는 말을 전하면 나무를 너무도 불쌍하게 여길게 뻔했기에 더 말할 수 없었다. 비참함은 그때 거기서 끝냈다고, 나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밤, 그 소식을 듣던 그 순간, 모든 나쁜 것들을 다 버리고 왔다고..
그럼에도, 나무는 몰랐지만 소문은 퍼져나갔다.
혼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생각보다 좋았다. 어떻게 자신이 결혼까지 하고 10년 가까이를 그렇게 살았는지 나무는 자신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상황이 만든 결정에 그렇게 무작정 따라갔던 것 같아, 나무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신경 쓰고, 노력해도 만족하지 않던 시댁도 더 이상 없었다. 거기서 벗어난 게 나무는 제일 속 시원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였지만, 절대 가족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그곳이었다. 나무는 다시는 그곳에 포함되고 싶지 않았다.
나무는 한참을 숨어서 보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다. 효인이는 자신의 가족들과 웃으며, 나무랑 자주 갔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효인이는 부모님과 아내, 아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야 했지만, 나무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나무는 이제 그만 그곳을 벗어나야 했지만, 잔인하게도 자신의 상처를 계속 헤집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오지 않은 그 모습이었고, 그래서 그 속에 자신을 넣어보고 있던 나무는 눈물이 났다. 자신에게만 잔인한 인생인 것 같아 저주하고 싶었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아, 이혼 후 처음으로 나무는 혼자인 자신이 서글퍼져서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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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우연히 마주친 효인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끝을 냈던 순간의 원망과 미움은 생각보다 옅어졌고, 나이를 먹은 서로를 확인하며 그때를 아름다웠던 추억이었던 것처럼 떠올리고 있었다.
“잘 지냈어?”
“어, 뭐 그렇지..”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지나갔어야 했다. 나무를 바라보던 효인이의 눈빛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나무는 효인이 앞에 서 있었다.
“나무야, 시간 괜찮으면 커피 한잔 하자.”
바쁘다고 갔어야 했지만, 나무는 그러자고 말하며, 이제는 별 감정 없는 전남편을 친구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의아해하기만 했다.
효인이는 아내와 아들을 외국에 보내고 혼자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능력 좋은데.. 나무는 효인이를 진짜 친구처럼 대할 수 있었기에 효인이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었다.
효인이는 나무의 웃음을 바라보며, 예전을 떠올렸다. 자신이 왜 나무에게 호감을 느꼈는지를. 나무의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았다. 이제야 깨닫게 된 사실이었지만, 나무의 웃을 때 사라지는 눈이 마음에 들었다.
효인이는 점점 감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무에게 더 잘해줬어야 했다고, 모든 걸 다 잊고 있던 나무에게 말했다.
나무는 다 예전 일이라고, 잘 지내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다시 웃으며 전했다. 효인이는 한참을 나무를 바라보았다. 너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고.. 효인이는 후회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나무에게 보이고 있었다. 나무는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효인이를 도리어 위로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따져야 했는데, 나무는 다시 상황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나무는 어제의 자신을 증오했다. 효인이와 우연히 만났고,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셨고, 효인이의 노골적인 후회를 들어주었고, 다시 예전의 자신들을 그리워하던 효인이를 밀어내지 못했다. 외로워하던 효인이를 보냈어야 했는데, 자신도 거기에 약간의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효인이의 옆에 있었다. 점점 감정적으로 되는 효인이는 나무에게 기대었고, 나무에게 기울었고, 예전의 나무를 찾고 있었다. 나무는 다시 상황에 빠지고 있는 자신을 건져내지 못했다.
다시는 효인이와 연락하지 않을 거였다. 한 순간의 실수였고, 다음날 당황하던 효인이의 모습에 나무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어리석게도 뒤늦게 깨달았다. 밤이 만든 위험한 감정은 예전의 자신들을 기억하게 했지만, 아침이 되자 지금의 서로를 보고 말았다. 서로의 기억 속에 있던 자신들이 더 이상 아니었다. 더 이상 그때의 자신들이 될 수 없다는 걸 실수를 하고서야 깨닫게 된 나무는 사라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