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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Oct 13. 2024

14. 나무의 일생 (1)

*

“엄마, 왜 내 이름은 나무예요?”


나무는 유치원 친구들이 유치원 마당에 있는 진짜 나무에 다가가서, 자신을 부르는 장난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대답했고, 너한테 말한 거 아니라는 말을 듣고.. 장난이지만, 그런 장난이 싫었다. 나무 말고 더 예쁜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언니 이름이 이미 사랑이지만, 자신도 그런 이름이 갖고 싶었다.


“그냥, 뭐..아빠한테 물어봐.”


엄마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나무의 말을 귀담아 주지 않았다. 미간의 주름은 지금은 나무의 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신호였고, 나무는 뭔지 몰라도 엄마가 그런 표정일 때는 엄마 근처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빠, 왜 내 이름은 나무예요? 나도 언니 같은 이름 지어주지..”


아빠는 나무의 표정에 나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말해줘야 될지 몰라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음.. 나무는 건강하니까. 건강한 이름이야.”


나무가 이해하기엔 너무도 맞지 않는 설명이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못하는 아빠였다.


나무는 건강한 이름이 뭔지 몰랐다. 건강한 이름.. 혼자서 아빠의 말을 따라 할 뿐이었다.


나무의 언니, 사랑이는 어린아이였지만 세상을 보는 각도에도 필요한 만큼만 넓히거나 줄일 줄 아는, 아이임에도 상대에게 필요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아이였다.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던 아빠와 사랑을 받는 법을 몰랐던 엄마 사이에서 징징거리거나 매달리지 않았다. 아빠에게 더 달라고 하지 않았고, 엄마에게 더 주려고 하지 않았다.


당연히 나무는 사랑이와 달랐다. 더 달라고 했고, 더 주려고 했다. 그런 나무에게 더 다가가지 못한 아빠와 더 멀어지던 엄마였다. 나무는 외로웠다.


남동생 현재가 태어난 후, 나무는 있는 듯 없는 존재가 되었고, 혼자서 노는 법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었다. 현재가 태어났다고 아빠 엄마가 달라지진 않았다. 그 마음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고, 균등하길 원하진 않았지만, 나무에게는 유난히 더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마음을 더 달라고 바라지 않았고, 더 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렇게 나무는 혼자서 조용히 자라갔다.


**

“안녕, 네가 나무꾼이구나.“


나무는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신라임이야. 다들 신라인이라고 불러. 지윤이한테 너 얘기 들었어. 반가워.”


웃으며 반가워한 자신과 달리, 나무의 무표정한 얼굴에 조금 망설이던 라임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웃으며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런 라임이의 모습에 나무도 천천히 미소를 지었고, 눈이 사라지며 웃는 나무의 얼굴은 꽤 귀여웠다. 그러나 나무는 그 사실을 모르는 듯, 다시 조금 어색해지고 있었다.


지윤이를 통해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된 라임이와 나무였다. 특이한 이름에 떠오르는 아무 단어나 연결시킨 서로의 별명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했다.


라임이는 나무에게 마음을 주었고, 나무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만큼 예상하고 있었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라임이는 나무의 곁에서 함께 있어주었다.


나무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해 주는 라임이가 고마웠다. 이제껏 다른 친구들은 겉도는 나무에게 굳이 다가와주지 않았다. 소극적이고 소심해 보이는 나무의 모습에 먼저 다가갈 이유가 딱히 없었다. 그래서 그런 편견 없이 자신에게 다가와 준 라임이가 좋았고, 라임이랑 항상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라임이의 주변에는 라임이의 좋은 성격만큼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의 표현은 나무보다 적극적이었다. 의기소침해지던 나무는 자신도 모르게 라임이의 주위를 겉돌았고, 다른 친구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부족한 자신만을 발견했고, 혼자서 자신의 가치를 수도 없이 낮췄다.


라임이의 주변에 섞이지 못한 나무였고, 그럼에도 라임이를 향한 나무의 마음은 은근히 표현되었고, 그런 나무를 다른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네가 왜 라임이 옆에 앉아?“

 “너도 이 영화 보러 같이 가는 거야?”


점점 그들의 반응에 주눅 들고, 결국 먼저 피하게 된 나무였다.


“꾼, 나한테 뭐 섭섭한 거 있어?”


나무의 행동이 어색해지고 있었기에, 라임이는 혹시 자신도 모르게 무슨 실수를 했는지 나무에게 물었다. 함께 하자고 나무를 끌었지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거절하던 나무가 신경 쓰여 물어봐야 했다.


당연히, 아니라는 말을 기대했고, 라임이의 얼굴에는 이미 장난기가 가득했으며 나무에게 농담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음, 아니.. 그냥, 조금 불편해.”


라임이는 나무의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가, 뭐가 불편해? 내가 너를 불편하게 했어?”


나무는 불편한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라임이에게 전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런 불편한 마음을 분명 이해하지 못할 거였지만, 그럼에도 먼저 말하지 않아도 라임이가 자신의 이런 상황과 마음을 알아주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그건 나무만의 희망사항이었고, 끝내 라임이는 나무의 진심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무의 전해지지 않은 마음은 오해가 되어버렸고, 라임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 미안해.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어.”


라임이는 자신의 마음과 다른 나무의 마음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다가가면 다가왔던 친구들이었고, 싸우기도 해 봤지만 그건 단순히 친구 사이에 생기는 사소한 오해와 섭섭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거절은 처음이었다. 라임이는 나무를 이해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그렇게 나무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무는 라임이에게 한 말을 후회했다. 자신을 향한 라임이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야 될지 몰라 처음엔 낯설어했었고, 그럼에도 라임이었기에 천천히 다가갔지만, 맞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되자 결국 주는 것도 자신 없어진 나무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나무는 눈물이 났다. 라임이에게 상처를 준거 같아, 없던 일로 하고 다시 다가가고 싶었지만, 라임이의 떨떠름한 표정에 나무는 용기를 잃었다.


또 혼자가 된 나무는 너무도 잘난 언니의 후광에 더욱 빛을 잃어갔고 아무도 모르게 숨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가 되는 것에 익숙해진 나무였다.


***

어쩌면 제일 소중한 친구였을 라임이를 잃은 후, 학창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을 뚜렷하게 갖지 못한 나무는 스무 살이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더 넓어진 인간관계에 두려움이 생긴 나무였고, 설렘 대신 걱정만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겨내고 싶어 어떻게든 성격을 바꿔보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더 움츠러든 나무였다. 그런 실패에 대한 기억은 모든 상황을 걱정하는 나무의 모습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나무야, 사랑이랑 현재한테 연락해서 병원으로 오라고 해.”


자신만의 공간이 제일 편했던 나무였고, 학교 생활로 바쁜 언니와 친구가 좋은 동생은 밖을 더 좋아했다.


“너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 병원으로 가야 해.”


엄마는 어제 저녁부터 병원에 있다고 했다. 집에 있었던 나무였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나무였다.


외할머니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기억을 잃는 것에 쓰셨고, 결국에는 그렇게 마지막 길을 가셨다.


나무가 본 엄마는 늘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길 원하지 않았고, 별 감정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삭막하고 메마른 모녀관계, 그래서 나무도 엄마에게 더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그 감정은 쓸데없는 것 같았기에, 나무는 줄 수 없었다.


외할머니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몇 번 가보지 않은 장례식장이었지만 이런 곳은 처음 본 광경이었고, 눈물이 없는 이곳이 신기했다. 누군가를 다시 보지 못하는데, 어느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다니.. 나무는 그 상황이 서글펐다. 눈물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자식들을 그렇게 고생시키더니..”


장례식장에 온 누군가들의 속삭이는 말에 나무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이제는 외할머니의 죽음을 바랐는지도..


“민정이는 역시 울지 않네. 민석이하고 민재는 울었는지 눈이 빨갛던데.. 내가 민정이었어도 안 울지. 엄마한테 뭔 정이 있다고..”


나무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드라마나 뉴스에서 보던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흐트러진 모습은 엄마에게는 없었다. 정이 없으면 슬픔도 없는 것 같았다. 정이 없다는, 그 사실이 슬퍼졌다. 엄마와 딸의 모습, 나무는 엄마와 외할머니의 상황을 자신과 엄마의 상황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늦은 밤, 서늘한 바람이 필요했던 나무는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할머니와의 기억은 없지만, 외할머니가 가는 그 길이 힘들지 않길 빌어드리고 싶었다.


“아니요. 처가댁 사람들도 지금 정신이 없으니까, 내일 오전에 잠시 들렀다 가세요. 승진이한테 연락 남겨 놓을게요.”


나무는 아빠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귀찮음을 느꼈다. 할머니와의 통화는 늘 그런 식이었다. 할머니와 아빠의 서먹함은 늘 모두를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나무는 굳이 자신이 지금 거기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아빠와 자신에 의해 만들어질 서먹함으로  그 순간이 더 불편해질까 봐, 나무는 아빠가 다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나무는 잠에 들지 못해 벽을 보고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지금 움직여서, 인기척을 내면 지쳐 잠든 다른 사람들을 깨울 것 같아, 나무는 그 자리에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미안하다고 한 번만 말해주지..”


나무는 뒤돌아 누워 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무의 엄마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자기만의 생각 속을 끝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 생각의 끝에 그 한마디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어졌다. 지금껏 자신에게 매정한 엄마였음을, 엄마의 죽음이 이 순간 드디어 실감 났지만, 그래서 눈물이 났지만, 미웠다. 화가 났다.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지금껏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 아니 이 모든 시간에 대해 어떤 말도 해주지 않고 떠난 자신의 엄마가 야속해 눈물이 났다.


나무는 소리 없이 움직여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살짝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지만, 나무는 위로를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고, 엄마가 원할지도 몰랐고, 그냥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슬픔이 엄마의 뒷모습에 가득했지만, 나무는 그 슬픔에 손을 뻗지 못했다. 별일 아니라고 말하던 엄마의 표정이 떠올라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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