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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 Oct 20. 2022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빨갛게 익지도 못한 채로 하나, 둘 떨어질 준비를 해야 하는 나뭇잎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툭 하고 작은 새끼 나뭇잎이 내 발 아래로 떨어졌다. 익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해야 하나, 일찍 떨어진 것을 안타까워해야 하나 고민했다. 인간의 생과 사를 닮은 듯했다.


환한 빛을 받으며 파릇한 생으로 태어나서 때가 되면, 빨갛게 익는 계절이 오면 하나 둘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 자연의 섭리를 알 듯 말라가며 나무와 이별하는 것이.

축복으로 왔다가 서늘하게 죽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생각나서.


또다시 반복되는 생과 사, 그 삶 속에서 피어나는 것과 지는 것을 둘 다 축복으로 여기며 사랑해줄 순 없을까 하는 욕심이었다. 한 작은 인간의 욕심을, 동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그 작은 나뭇잎은 날아가 버렸다.


아주 가볍게 춤을 추듯이.


숨을 쉴 수 있는 바닷속에서 한참을 엉성하게 헤엄치다 육지로 올라온 것은 비밀로 부치고 싶었다.

몸을 맡기어 밑바닥까지 가보았느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오, 그럼 다시 파도와 춤을 출 수 있다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육지로 올라온 것은, 생과 사. 그 사이에서 울고 있는 여린 삶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한번 더 눈에 담아두려고, 한번 더 사랑하려고, 한번 더 안아주려고 애썼다.


생과 사 모두에게.


공평하지 못한 사랑이었으나 사랑이 닿기를 염원하며 애쓰고 있다고 표현하면 미안해할까 봐였다.

빈틈없이 꽉 안아 올려 사랑한다고 몇 번이나 외쳐줄 수 있으니 부디 사랑으로 지워지는 아픔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컸다. 반쪽짜리 사랑은 완성될 수 없음을 알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마음이었다.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사랑 앞에 내 빈곤한 사랑을 열심히 태우는 것을 몰라도 좋으니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께 바다를 보러 갔다. 며칠간 일렁거렸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꼭 그렇게 마주치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던 것처럼 익숙한 척 굴었다. 그러면서도 맑게 피어난 점 같은 별을 바라보면서 넋을 놓아 보기도 했고, 노을이 지는 바다 앞에 서서 더 가까이 다가가 보려 했다.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그 속에서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내 사랑을 태울 수 있는 재료가 하나 있을까 하고.


이번 가을은 지난가을 보다 더 사랑하려 애쓴다.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 본 적 없는데 이미 여러 번 사랑한 사람처럼.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려 한다.


감히 생과 사, 중간 어딘가에서 유영하고 있을 모든 생과 사를 사랑하려 한다.

생이 끝나는 날 사랑한 벌을 받겠지.


그런 가을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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