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 떼라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다
피스 떼라(Fisterra)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나라에 '해남 땅끝마을'이 있듯이, 피스 떼라는 스페인의 땅끝마을이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가 지구구형론(지구는 둥글다)라고 주장하기 전에,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라고 생각했다. 즉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한참 가다 보면 낭떠러지에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도착한 순례자들 중에는 땅끝마을인 피스 떼라까지 가는 이들이 많다. 스페인에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기에 나도 피스 떼라에 가고 싶었다. 피스 떼라에 가면 대서양도 볼 수 있고, 피스 떼라 등대도 있고, 순례길 0km라고 적혀 있는 표지석도 있기에 가 볼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에서 피스 떼라까지 걸어가는 순례자들은 3일 정도 걷는다. 피스 떼라로 가는 길에도 알베르게는 있지만, 순례자들이 많지 않을 때는 오픈하지 않는 알베르게도 있다. 나는 사흘 후에 바르셀로나로 가야 하기에 피스 떼라까지는 버스로 가고, 피스 떼라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오는 길은 대서양 해변 순례길을 따라 하루 동안 걸어보기로 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피스 떼라까지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꼬불꼬불 시골길을 1시간 이상 타고 가니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는 아름다운 대서양이 펼쳐져 있는데, 버스 안에서 그 바다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아쉬웠다. 버스 안에는 외국인들이 가득 타고 있었기에 누구에게 내색도 하지 못하고 빨리 피스 떼라에 도착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기억이 난다. 피스 떼라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큰 숨을 내쉬면서 10분 정도 속을 달래고 나니 컨디션이 좋아졌다.
정류장에서 피스 떼라 등대까지는 3.3km 정도 오르막길로 걸어가야 했다. 천천히 걸어가면 1시간 남짓 걸릴 거리였다. 5월의 햇살을 받으며 아름다운 대서양 바다가 왼쪽에 펼쳐져 있기에, 하루 종일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봤더라면, 나는 50대 아줌마가 아니라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띠며 춤추듯이 걷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으리라! 하늘이 아름답고 바다가 아름답고 구름이 아름답고 바람이 아름다웠다.
10 여분 걸어서 올라가니, 길 오른쪽에 피스 떼라 성당이 보였다. 순례길의 여느 성당처럼 아담한 모양이지만, 존재 자체로 나는 깊은 영성을 느끼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제는 '기도 길'이기에 걷는 중에 만나게 되는 성당은 나의 기도처였다. 땅끝마을의 성당이기에, 나는 3주 동안의 순례길에 함께 동행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뿐만 아니라 성당에 들어온 모든 순례자들의 얼굴에서 순례길의 감격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다시 피스 떼라 등대를 향해 걸어 올라가는데 대서양 바다를 배경으로 아이들 놀이터가 있는 것이 보였다. 대서양을 바다로 매일매일 친구들과 놀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감을 느낄까라는 것을 상상하면서 나는 감동의 탄성을 질렀다. 매일매일 대서양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시인이 될 것 같았다. 매일매일 대서양을 볼 수 있는 아이들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예술가가 될 것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아름다운 미소를 띠며 까르르 까르르 웃으면서 노는 것이 아이들의 특권이 아닐까!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빌딩이 가득한 도시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된다는 사회가 만든 당위성에 끌려가는 한국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책상에서 보다는 자연에서 뛰놀 때 더 생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이 놀이터에 앉아서 대서양의 바다와 하늘과 구름을 벗 삼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피스 떼라 놀이터 사진은 지금 나의 노트북의 배경 사진이고, 온라인 미팅할 때 줌의 배경 화면이다.
피스 떼라 등대에 도착하기까지, 이곳이 피스 떼라임을 상징하는 여러 조각들과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잠시 앉아 있기도 하고 대서양 바다를 바라보면서 내가 지금 피스 떼라에 있음을 실감하면서 그 기분을 누리려고 하였다.
땅끝마을인 피스 떼라의 가장 땅끝에는 아담한 3층짜리 피스 떼라 등대가 있다. 먼 옛날부터 피스 떼라 등대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드디어 땅에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으리라! 이곳이 바로 땅끝이라는 의미인 0km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한참 동안 대서양 바다를 바라보았다.
피스 떼라 등대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등대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등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스페인의 땅끝에 온 감격과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면서 누리기 위해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에는 대여섯 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카페 벽에는 근처 해변 마을의 등대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벽에 그려진 등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 어느 등대도 같은 모양의 등대가 없었고, 제각각의 독특한 특징들을 느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카페의 작은 창을 통해서도 대서양을 볼 수 있었지만, 대서양의 바람을 직접 느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밖에도 테이블이 있었다. 나는 밖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서 한참 동안 피스 떼라의 자연을 직접 오감으로 느끼면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아시아의 동쪽 땅끝인 한국의 아줌마가 유럽의 서쪽 땅끝마을인 피스 떼라에 혼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현실을 느끼면서 즐기는 시간이었다.
익숙함이 때로는 지루할 즈음 낯 선 곳으로 한 번쯤 가보는 것은 삶의 큰 즐거움인 것 같다. 이번에 스페인이라는 나라에도 태어나서 처음 왔는데, 그 나라에서 아주 작은 마을인 피스 떼라에 와 있는 것도 신기하고 등대 앞의 작은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매일매일의 일상을 가치 있게 잘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상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때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지구의 어느 공간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는 시간을 누리는 것도 인생에서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나의 삶의 여정을 언제 마칠지는 모르지만, 그 여정을 걸어가는 동안 창조주가 펼쳐놓으신 아름다운 자연을 눈으로 바라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그 자연의 내음을 코로 맡아보는 시간들을 종종 가질 수 있기를 피스 떼라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며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