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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든 Sep 20. 2023

그가 처음 자신의 이름을 말하던 순간에 있었다


  종율이를 보자마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목구비가 아름다웠다. 나는 나와 다른 것들을 아름답다고 믿었다. 쌍꺼풀이 크게 진 눈, 길고 얇은 체구, 사랑스러운 표정, 하얀 피부…… 같은 것을 동경하기까지 했다. 종율이는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 종율이 엄마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 사람 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타인이 제법 있었던 듯 익숙한 모습이었다.


  종율이가 또래보다 말이 느리다고 해요, 종율이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고 유민이를 떠올렸다. 나란히 두고 살필 수 있는 존재가 그밖에 없었다. 종율이와 유민이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였다. 당시 종율이가 28개월, 유민이가 23개월로 생일 때문에 개월 수가 조금 차이나는 정도였다. 그쯤 유민이는 한 두 글 정도의 단어를 자신 있게 말했다. 특히 이름 세 글자 중 두 글자를 누군가 불러주면 이어 자신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민'을 외치는 것은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것이 장기였다.


  종율이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래도 더 많이 물어보고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몸과 마음이 버거우면 내가 유민이 엄마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이런 발상을 하는 내가 우스우면서도 유민이 엄마 특유의 친화력을 떠올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또 원래 유민이랑 함께할 때처럼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리거나 뛰어 놀았다. 종율이가 환호하며 내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어깨가 가볍게 느껴졌다.


  약속했던 세 시간이 지나면 종율이는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종율이 엄마는 다소 기쁜 듯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이러는 건 처음, 이라고 말해줬다. 우리는 즐겁게 소란스러운 마음으로 나지막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후 종율이는 내가 하는 말의 리듬을 따라 했다. '바나나'라고 말하면 '음음음'하는 식으로 입을 다물고 리듬을 따라 소리 냈다. 강아지 사진을 보고 '멍멍'이라고 하기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감격하는 순간이 왔다.


  우리 아기 이름이 뭐지요, 라고 운을 띄우고 나서 종율이의 이름 두 글자를 하나씩 말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글자까지 말하려던 차였다. 그동안 틈날 때마다 반복하던 일종의 놀이였다. 마지막 글자는 종율이가 말하는 거라는 걸 알 수 있도록 기다렸다가 말하곤 했다. 그동안 틈날 때마다 반복하던 일종의 놀이였다. 두 글자를 하나씩 말할 때마다 혹시나 싶어 기대했고 이어 종율이 눈치를 보고 긴장했다가 마지막 글자를 아쉽게 내뱉었다. 이번에도 그렇겠지, 싶었던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율, 그냥 율보다는 유울에 가까운 그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드디어 종율이에게서 나왔다. 반갑고 신기하고 대견한 마음이 뒤섞여 벅차올랐다. 그동안 종율이와 유민이를 번갈아 만나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유민이의 주특기에 예전처럼 편하게 웃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유민이는 쉽게 벌써 셀 수 없이 많이 한 이걸 종율이가 아직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잠겨서였다. 서둘러 종율이 엄마를 불렀다. 그가 내게 그런 것처럼 조심스럽게 겨우 마주하긴 했지만 걸음이 빨라지는 건 어쩌지 못했다.


  다시 한번 종율이가 율, 이라고 했다. 약간 심드렁한 표정이었던 종율이 엄마의 표정이 막 첫 숨을 불어넣은 풍선처럼 팽창해졌다. 우리 아기가 이름을 말하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종율이에게 다가갔다. 두 손으로 종율이의 얼굴을 감싸고 어느 때보다 기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아 칭찬해 주었다. 이후 종율이는 자신의 이름을 시도 때도 없이 말했다고 한다. 엄마 이름이나 아빠 이름을 물을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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