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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든 Oct 22. 2023

울어야 할 때 참고 갑자기 울면서 배웠다

   해주고 싶은 게 많아졌다. 웃음이 터지면 말이나 행동을 과장했고 유난히 잘 먹는 간식은 내 몫까지 주었다. 종율이는 슬랩스틱을 좋아했다. 내가 소파에 앉거나 바닥에 누워 자는 척하다가 갑자기 깨어나기만 해도 큰 소리 나게 웃었다. 탄력 있는 공을 힘껏 위로 올렸다가 그걸 받기 위해 우왕좌왕하면 숨 넘어가게 웃는다는 말이 어떤 건지 실감할 수 있었다.


   증편을 먹는 것도 좋아했다. 온전한 하나를 입안 가득 넣어 먹는 모습을 보면 반가웠다. 또래보다 체격이 왜소한데도 밥을 잘 먹지 않아 걱정이던 참이었다. 하얗고 동그란 모양이 귀여워 좋아하나 싶었다가 금세 아니구나 깨달았다. 반나절에서 하루쯤 냉장 보관했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건 몇 번 씹다 알아차리고는 바로 뱉어버렸다. 그런 모습도 밉지 않았다.


   해보고 싶은 게 늘어났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 예쁜 우비가 보이면 선물했고 당시 대학생이던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물건이나 간식도 가져가 소개했다. 그래선지 종율이는 내 가방 안에 있는 걸 하나씩 결국 모조리 다 꺼내놓곤 했다. 늘 새로운 뭔가가 나오니 매번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에 대해 내 친구는 '그냥 너 택배인 줄 아는 거 아니야?'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부정하기 어려웠다.


   머리를 감겨주고 싶었다. 여름이 되면 종율이는 땀을 많이 흘렸다. 주로 뛰어놀아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독 그 작은 손이 여러 번 소매로 거칠게 이마를 훔치는 날이었다. 나는 욕실로 향했다. 이후 뒤따라온 종율이를 수건으로 감싼 뒤 품에 안았다. 세면대의 물이 적당히 쏟아지게 틀었고 손에 조금씩 담아서 종율이의 머리를 적셨다. 그러기 전까지 종율이는 다소 불안한 표정이었다가 이내 웃고 말았다. 그럴 수 있도록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들어주었다.


   머리를 말려주고 싶었다. 종율이는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고개를 돌려 머리의 물기를 털었다. 흡사 물에 젖은 강아지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였다. 잠시 흐뭇해하는 사이, 종율이는 다시 집안 이곳저곳을 내달리고 있었다. 싫은 걸 억지로 하게 했나 걱정스럽다가도 머리 감는 동안 옷이 젖지 않아 다행이었고 물기가 떨어지기 전에 어서 머리를 말려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게 다 처음 해본 일이었지만 고단하지 않았다. 이를 본 종율이 엄마가 내게 말했다. 종율이가 누나를 정말 좋아한다고.


   종율이가 엄마랑 머리를 감을 때는 꼭 한 번씩 운다는 뜻이었다. 평일 낮 약 3시간 정도를 함께하는 나는 그를 알지 못해서 머리를 감기겠다는 무모한 일을 벌일 수 있었다. 결과는 이 정도면 대성공.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살펴서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그와 함께 해보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나아갔다.


   종율이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참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종율이가 가구에 부딪쳤는데도 울지 않았다. 그새 자라서 이전에는 쉽게 지나던 높이를 조심해야 했다. 이마가 빨개졌는데도 종율이는 입을 앙 다문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견뎠다. 그때도 종율이 엄마는 종율이가 누나를 정말 좋아한다고 내게 말했다. 약간 놀라거나 감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묻어나는 반응이었다. 아프다고 하면 누구보다 빨리 가서 위로해 줄 텐데, 처음에는 종율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릴 때는 당황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상황 판단이 안 되었다. 머리를 부딪치고도 안 우는 종율이가 이렇게 큰 소리로 울다니. 순식간에 몸이 얼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울음이 재난처럼 느껴졌다. 종율이 엄마가 다급하게 왔다. 나는 어쩐지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의사에게 간 기분이 되었다. 최선을 다해 돌봤는데, 아이가 아파서요. 병명은 뭘까요. 그런 말을 하는 마음이 됐다. 병명을 듣듯 울음의 이유를 가만히 기다렸다. 내 말에 의사 같이 고개를 끄덕이던 종율이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잠이 왔다고.


   정말 순식간에 종율이는 엄마 품에서 잠이 들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며 종율이 엄마가 나를 격려했다. 이후로도 종율이는 신나게 웃다가도 뜬금없이 울었다. 대처방법을 알았으니 더는 당황하지 않았다. 내 품에서 잠드는 날도 있었다. 잠이 아니라 밥을 원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졸음과 허기를 배웠다.


   졸려서 눈꺼풀이 무겁고 몸이 나른해지던 때를 떠올렸다. 허기져서 소리가 나고 배가 쪼그라는 것 같은 때를 떠올렸다. 성인인 나도 그때가 유쾌하진 않았다. 아마 종율이는 졸음과 허기로 울음이 터질 때까지 나와 노는 것을 중단하기 어려웠나 보다. 나는 3시간 있으면 가는 사람이어서 참고 참았나 보다. 좋아하니까. 그게 종율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쓰는 마음이니까.


   나도 그렇게 잘 참다가 울고 말았던 많은 날을 떠올렸다. 종율이의 집에서 나오면 20대 대학생으로 돌아가는 일상은 역동적이었다. 부모, 교수, 선배, 친구, 연인, 학자금, 도서관, 데이트, 용돈 등이 넘쳐나는 작은 세상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그 울음의 이유를 정리했다. 오롯이 배움이 됐다. 가치관이 됐다. 모르는 마음을 모르는 채로 두지 않아서 가능했다.


   나의 모름으로 너의 모름을 이해한다. 너의 울음으로 나의 울음을 이해한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있구나.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있구나. 나는 이렇게 갑자기 우는 종율이의 마음을 헤아린다. 거리에서, 서점에서, 지하철 한 구석에서, 그 밖의 모든 곳의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눈물을 훔치는 당신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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