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by 정윤

빗소리에 재이는 눈을 떴다.

숲 속 눈 위에 쓰러져 잠이 든 것 같은데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겨울인데도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온 눈 속을 헤치며 걸었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얼굴이 시리고 손이 얼어 빨갛게 부풀어 오르던 느낌도 가시지 않았다.


재이는 오두막집에서 화를 내던 동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하가 죽던 날, 힘들게 숨을 몰아쉬던 동하의 절박한 표정을 기억한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다 숨을 멈추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뻔히 눈을 뜨고 숨진 동하의 눈을 재이가 감겨주었다.


재이는 동하가 시위 현장에서 또 죽을까 봐 나서지 말라 했던 거였는데 동하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앞으로 오지도 말라며 매몰차게 재이를 내쫓았다. 재이는 서럽고 외로웠다. 눈 쌓인 숲 속을 걸어오면서 동하가 야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군부가 권력을 잡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죄 없는 광주시민들을 희생의 도구로 삼은 사건이 광주 민주항쟁이었다. 광주시민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나마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었음을 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재이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자니?”

엄마가 재이의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시계의 시침은 오후 2시가 지나 있었다.


“방학이라고 늘어지게 자는구나. 엄마 나가니까 찌개에 밥 먹어. 알았지?”


“알았어, 엄마.”


아빠는 벌써 나갈 채비를 다 마치고 재이의 방으로 들어왔다.

“아들, 방학이라 심심하지?”

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빠가 말했다.

“아니야, 아빠.”


“조금만 참아, 우리 아들. 머지않아 아빠가 포장마차 처분할 거야. 그땐 아빠랑 캠핑도 가고 그러자. 알았지?”

“다녀오세요, 아빠.”

엄마 아빠가 나가자 재이는 방으로 들어와 펜던트를 꺼냈다.


동하와 정민은 어디에 있는 걸까. 오늘은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궁금했다.

재이가 펜던트를 반짝반짝 닦자, 재이의 방안은 푸른 초원으로 변했다.

입구 중앙에 높은 석탑이 있고 양쪽으로 묘역들이 질서 있게 늘어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광주 5.18 묘역

재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장소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많은 묘비와 묘소들이 즐비한 곳을 따라 걸었다.

묘소마다 태극기가 꽂혀 있고 꽃들이 놓여 있었다.


-아! 슬프다. 아 슬프다.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었으니 가엾어라.

-당신이 못 이룬 민주주의 꿈 우리가 이루겠습니다.

-이승에서 못 이룬 꿈 천상에서 이루기를.


재이는 묘비에 새겨진 수많은 사연을 읽어가면서 뭉클해졌다.

이곳은 광주 5.18 묘지였다. 묘비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어쩌다 초등학생들까지 희생자가 됐을까.

재이는 숙연한 마음으로 천천히 묘지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묘지 앞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노인이 힘없이 앉아있었다.

노인은 침통한 얼굴로 묘비를 어루만졌다. 재이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묘비엔 ‘이정민’이라고 씌어 있었다. ‘이정민’이라는 이름 옆에 조그만 사진이 박혀 있었다. 정민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정민은 뿔테 안경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재이는 가슴이 턱 막혔다. 그대로 묘비 앞에 주저앉았다. 가슴이 북받쳐 올라왔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고 묘비 앞에서 절을 올렸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재이구나, 재이야!”


노인은 재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재이도 노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노인은 동하였다. 노인은 비록 늙어있었지만, 입가에 보조개만은 여전했다.

재이가 겨울 숲 오두막집에서 동하와 헤어질 때가 불과 이틀 전이었는데, 며칠 사이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러버린 거였다.


노인이 된 동하는 재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재이, 니는 그대로 다이. 나가 많이 늙어뿌러서 놀랐제? 니가 못 알아볼 줄 알았드만 용케 알아보네잉. 니하고 오두막집에서 헤어지고 벌써 41년이 흘러부렀다.”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잔주름이 패어 있는 동하의 모습도 많이 늙어있었다. 재이는 41년 동안 동하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동하가 먼저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해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동하와 재이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말없이 앉아있었다.

41년이 흘렀지만, 동하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광주의 거리와 도청에서 최후를 마친 친구들의 모습이 더욱더 뚜렷이 떠올랐다. 지금은 이렇게 사진만 한 장 남겨놓고 땅속에 묻혀버린 친구들. 그들에게 미안하고 살아남아 있는 자신이 죄스러웠다.

희생자들의 사진이 진열된 5.18 기념관


석방 후 몸을 회복한 동하는 날마다 망월동 묘지를 찾았다.

정민의 묘지 앞에서, 동하가 알고 지냈던 시민군들의 묘지 앞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곳엔 이름 없는 묘지들이 많았다. 깨지고 뭉개져 누군지 알 수 없는 시신들은 신원을 확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이제 모든 미움과 원한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살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아직도 숨진 친구들 생각만 하면 가슴속에 돌이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아팠다.


한참 만에 동하가 입을 열어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재이에게 들려주었다. 광주 도청을 지키다가 살아남아 끌려간 이야기, 정민의 죽음, 북한에서 지령을 받고 내려온 간첩으로 몰려 무지막지한 고문을 받은 이야기, 교도소에서의 생활들에 대해서.

재이는 잠자코 동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너무나 기막힌 이야기였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을 겪고 난 동하의 주름진 얼굴은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두 사람이 앉아있는 묘비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정민의 묘지 앞에서 쭈뼛거리며 서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렸다.


“미안허다. 정민아! 나가 미안허다. 나가, 죄인이다!”


그 남자는 묘비 앞에서 고개를 꺾고 꺼이꺼이 울었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남자가 동하의 손을 잡았다.


“동하야. 나 명수여. 미안허다!”


“명수? 명수야! 이 새끼, 그래도 살아있었네이. 난 니가 안 보여서 죽어뿐 줄 알았다.”


동하는 명수가 반가워 덥석 명수 손을 잡았다.


명수도 많이 늙어있었다. 주름진 얼굴이 그동안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동안 어찌 그리 소식이 없었냐? 어디서 뭐 허고 있었냐고.”


명수는 한참을 주저하다 간신히 말을 꺼냈다.


“사실은 나, 공수부대로 투입돼서 광주에서 계엄군 생활했다. 광주사람들 많이 죽이고 나…, 용서받지 못 헐 짓을 많이 했다. 미안허다!”


동하의 눈이 놀라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이 새끼, 니가 계엄군이었어? 근디, 니가 무슨 낯짝으로 여그까지 왔냐?”


명수는 동하에게 무릎을 꿇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작전 명령대로 움직여야 해서 총을 쏘고 시민들을 학살했지만, 괴로웠어. 미안허다! 이제 와서……, 이미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용서해 주라.”


“인자 와서 용서해 달라고? 다 죽어 없어지고, 썩어 문드러져 뿌렀는디, 인자 와서 미안허다고? 누가 누구를 용서해? 용서해 줄 사람은 이 땅에 없어. 아무도 없다고! 알아?”


동하가 울면서 소리 질렀다.


“알아.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는 거. 나도 마음 한구석에 항상 죄책감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웠어. 사는 거이 사는 게 아니었어. 그동안 하루도... 마음 편히 발 뻗고 잠들지 못했응께. 나, 광주에서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어서 가족들하고 타지로 떠돌아 댕겼다. 그래도 가슴속에 돌이 박힌 거 맹키로 묵직헌 거시......, 박혀서 시방도 이르케..., 쓰리고 아프다!”


명수는 자신의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


동하 얼굴이 점점 차갑고 싸늘하게 변했다.


동하가 명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을 학살했던 계엄군들이 모두 다 사과하고, 그 당시 작전 지시를 했던 지휘관들이 모두 다 사과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직도 광주 5.18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너무나 많고, 5.18 광주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명수가 엎드려 소리 죽여 울었다.


재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 동하의 마음이 달라질까 알 수가 없었다. 상처가 깊을수록, 배신감이 클수록 용서는 더욱 어려울 것 같았다. 그동안 쌓인 상처로 이미 마음 문이 굳게 닫힌 동하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재이는 또 졸음이 몰려왔다. 급격히 쏟아지는 졸음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재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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