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동물원>, <내일의 동물원>
언니,
언니가 보낸 편지 구절 하나하나 깊이 공감하며 읽었어.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미안함과 걱정, 불안함과 죄책감이 온통 뒤섞여 한숨만 나와. 과연 10년 후, 20년 후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가끔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힘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면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 우리의 작은 노력이 정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부와 기업이 변하지 않는데, 나의 이 작은 실천들이 정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 페트병에 단단하게 붙어있는 비닐 포장지를 뜯어내며 종종 분노에 휩싸이곤 해. 그러다가 곧, 실천하는 개인이 많아지고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면 정부와 기업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야, 라며 들끓는 속을 달래지.
내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히 구조한 작은 아기 고양이 때문이었어.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어미에게 버려져 죽어가던, 내 생애 첫 고양이 덕분에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애정하게 되었고,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길고양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레 다른 동물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어.
지금은 다시 육식을 하고 있긴 하지만, 10여 년 전에 채식을 결심하고 실천하게 된 것도 동물권에 대한 잡지를 보고서야. 내가 봤던 그 잡지에 언니가 이야기한 실험동물로 쓰이는 토끼와 가축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거든. 그렇게 시작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 기후 문제, 생명의 문제로까지 확대가 되더라. 참 신기하지. 처음엔 그저 내 곁에 있는 작은 고양이가 너무 사랑스러운 것뿐이었는데 말이야.
언니 혹시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이라는 그림책 봤어? 이 책은 우주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건데, 너무 우울해서 한참을 책장 깊숙한 곳에 보관만 하다가 이번에 언니 편지를 받고 다시 꺼내봤어. 언니 편지를 보고 문득 이 그림책이 떠오르더라고.
<동물원>은 동물원에 나들이를 간 한 가족의 하루를 담은 그림책인데 철창에 갇혀 우두커니 서있는 무기력한 동물들의 모습, 우리 한쪽에서 다른 한쪽을 반복해서 오가는 정형행동을 하는 동물들의 모습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마음을 불편하게 해. 거기엔 동물들을 마치 물건 대하듯 하는 아빠 캐릭터의 태도도 한몫 단단히 하지.
난, 동물은 정말 좋아하지만 동물원은 좋아하지 않아. 동물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이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이 그림책 속 동물원은 내가 갔던 여러 동물원을 그대로 연상시켜. 동물원에 마지막으로 간 게 10년은 더 돼서,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동물원에 갔을 때 나는 정말 참담한 기분이 들었어. 우리 앞에 있는 팻말에는 동물들의 서식 환경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두었지만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의 환경은 실제 서식 환경과는 전혀 달랐지. 동물들이 발 딛고 서있는 땅은 대부분 시멘트 바닥이었고, 가끔 동물들을 둘러싼 벽면에 그럴싸한 숲이나 얼음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그 그림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실소만 나오더라. 어떤 우리에는 정말 정말 커다란 독수리가 있었는데, 그 독수리는 커다란 날개를 펼치지도 못할 만큼 작은 우리에 갇힌 채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어. 자연에서 그 독수리가 얼마나 멋지게 하늘을 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아팠어.
예전에 일 때문에 싱가포르에 갈 일이 있었어. 동물원 문제에 관심이 많을 때라 싱가포르 동물원을 검색해 봤는데, 거기는 철창이 없는 동물원이라는 거야. 지형의 높낮이나 물, 울타리 같은 자연물을 활용해서 동물과 사람을 분리시켰다고 하더라고. 사진을 보는데 정말 놀라웠어. 한국의 동물원에서 보던 익숙한 쇠창살과 유리창이 없는 동물원이라니. 일이 없는 주말에 설레는 마음으로 동물원에 갔지. 따뜻한 나라답게 울창한 나무가 가득한 동물원은 정말 인상적이었어. 동물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머리 위로 원숭이들이 나무를 타고 날아다니는데, 정말 이상적인 모습 같았지. 동물원의 환경은 확실히 한국이랑 비교하면 훨씬 좋아 보였어. 동물들은 적어도 시멘트 바닥이 아닌 흙과 풀 위에서 거닐고 있었고 좁고 답답한 우리 대신 비교적 넓은 곳에서 지내고 있었거든. 하지만 동물원을 돌아보면 볼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마찬가지였어. 동물원의 환경이 아무리 좋다한들, 원래 살던 땅만큼 좋을 리가 없잖아. 쇠창살과 유리벽이 없어서 마음이 편해지는 건 사람들일 뿐, 동물들에게 ‘갇혀있다’는 건 변함없다는 걸, 여전히 힘이 없어 보이는 동물들을 보고 깨달았어.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은, 눈에 보이는 우리 대신 보이지 않는 전기 울타리 같은 게 있어서 동물들이 영역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전기 충격을 받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몇 번 충격을 받으면 더 이상 경계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
그림책 <동물원>에서 가족과 함께 동물원에 다녀온 아이는 그날 밤 꿈을 꿔. 쇠창살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꿈.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동물들도 꿈을 꿀까?”
언니, 만약 동물들이 꿈을 꾼다면, 어떤 꿈을 꿀까?
<내일의 동물원>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그림책이야. 수의사 잭은 일 년에 한 번 동물원의 동물들을 진찰하러 가. 보아뱀이 잭에게 말하지. “우리 안이 불편해요.” 코끼리는 말해. “내 코로 정글 냄새를 맡고 싶어요!” 사자와 기린은 사바나 들판의 마른풀 냄새를 맡게 해달라고 하고, 펭귄과 북극곰은 흰 눈과 새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여 달라고 해. 하마와 악어는 실컷 헤엄칠 수 있는 물,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넓은 곳이 필요하다고 하지. 동물들의 증상은 알약 몇 개, 주사 몇 대로는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것이었어.
수의사 잭은 자신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속상해. 잭은 고민 끝에 동물들을 이끌고 그들이 살던 곳으로 가지.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글쎄, 정글은 나무가 다 잘려나가서 허허벌판이 되어 있고 사바나 들판은 불에 다 타버렸어. 극지방엔 빙산 대신 석유를 퍼 올리는 기계만 솟아 있었고 아프리카의 강은 다 말라붙었지. 그러니까 동물들의 고향이 다 사라져 버리고 없는 거야!
<동물원>이 극사실주의적으로 현실을 보여준다면 <내일의 동물원>은 그림책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해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를 사용해서 동물들의 현실을 보여주는데, 그 현실이 너무 현실 같아서 슬퍼. 그럼에도 이 그림책이 참 좋았던 이유는 우리에게 ‘기회’를 던져줘서야.
마지막 페이지에 동물들을 찾아 나선 동물원 관리인과 수의사 잭은 잠든 동물들 곁에서 생각해. “어떻게 하면 동물원을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만들면 어떨까?”하고.
책은 ‘일단 쉬고, 내일 당장 시작하자’는 수의사 잭의 말로 끝나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 알록달록한 동물들의 발자국이 어딘가로 향하듯 찍혀있는 게 보여. 나는 이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두근거렸어. 이 발자국을 따라가면 조금 더 좋은 동물원이, 아니 정말 새로운 세상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거든. 알록달록 찍힌 동물들의 발자국이 아직 우리에게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 기회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 상상할 기회, 고민할 기회, 변화를 만들 기회 말이야.
언니,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해. 인간이 잔인할 수 있는 이유는 상상력이 부족해서란 생각 말이야.
만약 우리가 좁은 우리 속에 갇혀 날개 한 번 펼치지 못하는 독수리가 얼마나 답답할지 상상할 수 있다면 절대 독수리를 그 좁은 우리 안에 가둬두지 못하지 않았을까? 만약 우리가 동물들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다면 단지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토끼의 눈에 약품을 넣지는 못했을 거고, 만약 우리가 풀 냄새를 맡으며 무리와 함께 자유롭게 들판을 거닐고 진흙 목욕을 하는 코끼리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상상할 수 있다면 동물원을 만들더라도 완전히 다른 방식의 동물원을 설계했을 거야.
아니, 어쩌면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우리는 상상하기를 멈춰버렸는지도 몰라. 다른 존재의 아픔,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느끼고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고통을 상상하는 건 너무나 아프기 때문에 그냥 상상하기를 멈춰버린 것일 거야. 그 아픔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을 파고드는 압도적인 슬픔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외면할 수 없으니까.
내가 채식을 선택했던 이유는 가축으로 길러지는 동물들의 사육 환경과 도살되는 방식을 상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였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수십 마리의 닭을 가둬놓고 스트레스를 받은 닭들이 서로를 쪼지 못하게 태어나자마자 부리 끝을 잘라버리는 것, 제대로 움직일 수 조차 없는, 24시간 조명이 켜진 곳에서 끊임없이 사료만 먹다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도축되는 것을 생각하니 그 맛있던 치킨이 더 이상 ‘치킨’으로 보이지 않더라.
내가 앞에서 말했던 동물권 잡지를 보기 전에는 이런 공장식 사육에 대해 몰랐냐 하면, 그건 아니야. 종종 접할 기회가 있었어. 그냥 귀를 닫고 눈을 감은 채 오랫동안 그 문제를 들여다보길 외면했던 것뿐이야. 그런데 희한하게 10여 년 전 그 어느 날, 더 이상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겠더라고. 눈을 뜨고 귀를 여니까,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까. 사람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의 아픔을 상상하다가 결국 채식을 하게 된 거야.
지금은 아이를 키우면서 채식을 중단한 상태인데 문득문득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에 불편해질 때가 많이 있어. 하지만 곧 생각하기를 멈춰 버려. 그렇지 않으면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수도, 아이에게 요리를 해 줄 수도, 함께 먹을 수도 없거든. 그러니까 그냥 눈을 감아 버리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 알면, 생각하면, 상상하면, 많은 것들이 불편해지니까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거지.
그래도 이제는 불편해져야 할 때인 것 같아. 불편하고 힘들어도 눈을 뜨고 우리 앞에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언니가 실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의지가 불끈 솟아올랐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이 사소한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는 핑계로 모른 척하던 많은 것들에 더 이상 눈감지 않으려고 해.
나도 우리 우주가 그리고 다른 모든 아이들이 내가 경험했던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미세먼지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온갖 자연재해로 불안하고 암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말로 그러면 좋겠어.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한다면, 분명 그럴 수 있을 거야.
상상하는 사람들의 힘을 믿으며,
2023.2.19
다경
동물원
글, 그림 : 앤서니 브라운
옮긴이 : 장미란
논장 | 2019
내일의 동물원
글, 그림 : 에릭 바튀
옮긴이 : 박철화
봄볕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