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그렇게 대단한 성과를 얻은 건 아니지만, 10대 시절 소심했던 나와 비교하면 지금 내 모습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장학금 고지서를 보고 나보다 더 기뻐하는 부모님을 봤고, 영어에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고, 체중 유지를 위해 계속 운동하러 다녔다. 성장의 욕구에는 한계가 없다. 더 성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제주도라는 좁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그 틀을 깨준 캐나다 한달살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국립대 + 평화의 섬 + 관광지 + 국제 포럼의 장'이라는 환경 덕분에 해외 대학교와 여러 협약을 맺고 있었다. 또한 내가 입학하던 시기에 학교에서 방학을 활용한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침 캐나다의 W 대학교와 협약을 맺었고, 학교에서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모아 단기 어학연수를 파격적인 지원으로 보내주겠다는 공지사항이 10월 즈음 올라왔었다. 비행기, 기숙사 등 학교에서 다 지원을 해준다고 하니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위의 내용은 시간이 워낙 지난 터라, 제가 알고 있는 정보가 조금 왜곡되었을 수 있습니다.)
당시 나 말고도 자신의 삶에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많은 학과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때와 다르게 경쟁률이 치열했다. 대망의 발표 날, 조마조마하며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선정명단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두 달 전부터 틈날 때마다 여행 영어회화 문장을 외우고 교내 외국어교육원에서 1달 동안 영어회화 수업도 들었다. 도서관에서 캐나다 어학연수, 여행 관련 책들을 빌려서 읽었다. 캐나다 어학연수 카페에 가입하고 카페 매니저와 1시간 동안 통화하면서 캐나다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처음 보호자 없이 낯선 곳으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긴장됐고, 준비를 한 만큼 더 많은 경험을 해오고 싶었다. 학교에서 여는 어학연수 오리엔테이션도 틈틈이 참여하고 그 와중에 학과 공부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운동도 다녔다.
시간이 지나 출국 당일이 되었다. 선정된 사람들과는 캐나다 현지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인천공항에서 캐나다까지는 나 혼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가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에 혼자 가는 게 뭐 별일이냐 싶겠냐마는, 그 당시 비행기에서 승무원의 "Beef or Fish? " ,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라는 질문에도 긴장하며 대답했다. 무사히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고, 20여 명의 언니오빠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다 나이도, 학과도 모두 달랐다. 그중에 공통점은 같은 학교였고, 다들 자신의 삶에 책임을 가지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한 달간의 캐나다 어학연수 동안 나는 이런 원칙을 세웠었다.
1) 매일 새로운 경험하기.
2) 주말 동안 반드시 여행 가기.
3) 매일 일기 쓰기.
이렇게 적은 목표는 캐나다 생활뿐 아니라 그 이후 15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세 번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매일 적은 일기장을 아직까지 갖고 있다. 그중 최대한 인상 깊은 점만 요약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무슨 수업을 들었냐면요,
7시 즈음 일어나서 기숙사에서 제공해 주는 서양식 아침을 먹고, 친구들과 인사한 뒤, 책가방을 챙겨 나온 뒤 문을 열면 시원한 캐나다의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Dormitory에서 나와 차도를 하나 건너면, 눈이 조금 녹아 있어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심하게 걸었던 도보가 나오고 그렇게 5분을 걸으면, Language center 건물이 나온다. 건물 문을 열면 히터 공기가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1층엔 도서관, Office 가 있고 나는 3층에서 평일 오전부터 오후 2시까지 중급반 영어 수업을 들었다. 한국 친구들 외에도 중국, 멕시코, 아랍, 스페인에서 온 친구들까지 다 합치면 10명 정도 되었다.
논문 출처 작성법(AP 기준), 보고서 쓰기, tz/ts/v/w 등 어려운 영어 발음법, 환경/일상/사회이슈와 관련된 주제를 두고 토론하는 수업이 대다수였고, 가끔씩 시험을 치기도 했다. 말 그대로 한국에서 배운 교양수업의 영어 버전이었다. 캐나다 선생님들은 말씀이 빠르셨고, 1시간 동안 많은 내용을 전달하셨으며, 워낙 에너지가 넘쳐서 마이크가 없어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저 뒷자리 학생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토론 수업 내내 옆자리 중국 친구, 멕시코 친구, 히잡을 쓴 친구와 대화하고, 끝나고 왓츠앱 번호를 주고받고, 가끔씩 오후에는 같이 보드게임 치러 가기도 했다.
매일 새로운 경험을 어떻게 뭘 했냐면요,
아침밥을 먹고, 수업을 가고, 점심밥을 먹고, 오후에 새로운 경험을 하러 떠났다가, 저녁밥을 먹고, 친구들과 그날 무슨 일을 했는지 얘기를 하다가 잠에 든다. 이걸 매일 계속 반복했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는 주위를 둘러보는 예민한 감각과 담대함이 필요하다. 학교 공지사항, 이벤트를 찬찬히 훑어보고 대학교 홈페이지도 들어가고, 캐나다 1월 행사를 검색하고, 달력에 표시하고 한 번 놀러 가본다. 그리고 위험한 곳만 아니라면 발 닿는 대로 가본다. 친구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것들은 거절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함께 간다.
그렇게 했던 경험들은 사소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것보다 값진 에피소드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학교 하키 시합 보러 가기
노래방 가라오케 만들어서 외국인 친구들과 놀기
캐나다 대학생들과 학교 맛집 뿌시러 가기
팀홀튼 가서 바나나라떼, 티, 카페 등등 다양하게 먹어보기
캐나다 시장 가서 길거리 음식 먹기
소규모 그림 모임 참여해서 각자 그림 그리고 발표하기
VR 총 게임 하기
월마트랑 한인마트 놀러 가서 한국과자 싹쓸이해오기
이런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 일상생활 루틴이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든든한 밥이다. 기숙사에서 제공해 주는 캐나다 유기농 음식들은 너무 맛있었다. 캐나다 기숙사 카페테리아는 아침/점심/저녁 모두 8가지 이상의 유기농 야채와 3가지 이상의 콩, 구운 빵이 기본으로 있었고, 커틀렛, 스테이크, 파스타 등 매일 메인 메뉴가 바뀌었다. 너무 맛있어서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갔다가 기숙사의 일요일 저녁 식사를 먹기 위해 서둘러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운동. 캐나다에 가서도 헬스장은 빠지지 않았는데, 학교 헬스장을 등록해서 기어코 주 3회는 근력운동을 하러 갔다. Kg 이 아닌 lb(파운드) 체중계가 있어 신기했다. 아령을 들고 낑낑대고 운동한 뒤 벤치에 앉아 쉬고 있자, 근육질의 남자분이 툭툭 나를 치더니 운동 다 했으면 벤치 써도 되냐고 물어서 허겁지겁 나온 기억도 난다. 그 외에도 근육 빵빵한 멋진 언니오빠(멋있으면 다 언니오빠지..) 보면서 동기부여 잔뜩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디를 여행했냐면요,
내가 세웠던 세 번째 목표. 주말마다 여행 가기. 금요일 오후 2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챙겨두었던 짐을 가지고 친구들과 캐나다 곳곳을 여행했다. 도시 근교 시장, 토론토, 몬트리올,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내가 살던 지역은 토론토까지 버스로 3시간 걸렸다. 버스 예약을 잘못해서 버스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기차를 예상날짜의 다음날로 예약해서 출발 직전에 새로 기차표를 사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겨울의 캐나다는 어찌나 추운지, 바지 두 겹, 양말 두 겹은 필수였고, 1시간을 걷다가 추위를 피해 맥도널드로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친구와 나눠먹으며 몸을 녹인 적도 있다. 눈을 헤치고 찾아간 몬트리올 유명한 스모크미트 집에서 음식을 받고, 친구와 요리조리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 100장을 찍는데 옆자리에 앉은 노부부가 우리를 신기하게 봤던 기억도 난다. 토론토에 살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하루 종일 길거리 음식을 먹고 페리에서 오들오들 떨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언니오빠친구들과 주말마다 각자 다른 도시를 여행하고 일요일 저녁 기숙사 1층 카페테리아에 모여서 여행에 대한 소회를 나눴다. 뜨악할 정도로 큰 사건도 있었고, 우와~ 가 나올 정도로 부러운 사건들도 있었다. 당시 도깨비 드라마가 워낙 유행을 했어서 도깨비 촬영장소 탐방이 꽤 인기였고, 그 곳의 사진들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뭘 느꼈냐면요,
갓 스무 살을 넘긴 아이의 경험들은 사소하고 실수 투성이었지만, 차곡차곡 쌓여 담대한 정체성을 만들어주었다. 그전에는 사소한 일도 선택하기 두려웠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었다. 평일 저녁에는 나서서 학교 이벤트를 찾아다니고, 주말 내내 보호자 없이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아졌다. 실수조차 추억으로 남는 경험이 많아지면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두고,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두렵지만 기대감을 갖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쟁이가 되었다.
영어에 대한 또 다른 시선도 생겼다. 통역봉사도 하고, 한국에서 영어공부도 했지만 해외에서 영어 말하기, 듣기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같은 반 친구들과 대화할 때, 한국어로 생각하는 내용을 다시 영어로 바꿔 말하려니 말이 안 나와서 답답하기도 했고, 한국의 설날을 1월 1일 새해와 비교해서 이야기하려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용이 문법적으로 맞는지 고민하다가 대답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외국인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갔을 때, 나 혼자 맥락을 잘못 이해해 슬퍼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내가 웃어버려서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진 적도 있다..
당시에도 띄엄띄엄 단어만 들리고, 모든 문장을 다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20년간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온 친구들과 K-pop, 불닭볶음면, 유튜브, 여행 등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상황이 너무 재밌고 신기했다. 영어는 대화의 수단이고, 전혀 다른 세계와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도구였다. 맥락을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집중해야 대화가 통한다. 정확한 문법을 알 때까지 말하지 않기 또는 정답 맞히기 식의 영어공부와는 이제 정말 안녕을 고해야 함을 깨달았다.
비행기 타고 돌아오면서 생일을 맞았고, 그날 일기장에 적은 내용이다.
"나는 작고 세상엔 배울 점이 많다. "
나는 지구에서 깃털 같은 존재지만, 그런 나도 배울 자세가 있으면 세상은 언제든지 기회를 주었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지 8년이 지났고, 같이 갔던 언니오빠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멋지게 살고 있다.
최근에 캐나다에 같이 갔던 친구들과 제주도에서 캐나다 8주년 기념 8KM 달리기를 했다.
캐나다 여행, 기숙사,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 어느덧 졸업 후 사회인들의 고민까지 이야기하게 된 우리가 신기하고 뿌듯하다. 어릴 때 함께 공유했던 경험은 할머니가 돼서도 기억이 날 것이다. 50주년 기념 50KM 달리기까지 고고-!
이 쯤에서 그렇게 1년 전 내가 나에게 썼던 편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겠다.
2017년 1월 1일의 김지만에게,
지만아 안녕? 나는 2016년의 김지만이야. 잘 살아있니?
지금쯤 너는 15kg 빼서 다이어트도 정말 성공하고, 과탑으로 장학금을 받을 거고,
지금 이 맘 때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해외에서 영어공부 중일 거야~
(이하생략)
성인으로서의 첫 번째 해를 무사히 잘 보낸 네가 너무 대견해~
앞으로도 우리 친하게 지내보자! ㅎㅎ
의식하지 않았지만, 모두 이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