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완벽해서 문제였던 새벽 기상 루틴
새로운 경험을 시도할 때 내가 염두하는 것은 평소의 습관, 즉 루틴이다. 이게 뭔 말인가 싶겠지만, 통역봉사, 캐나다, 학과 공부 등을 하며 새로운 자극을 접할 때마다 감정적 반응이 오래가는 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이 끝나면 그 기분이 계속 이어져 들뜬 기분이 오래 유지된다.
기분이 훅 올라간 상태는 낮부터 잠이 들 때까지 유지되고, 자기 전에도 심장이 콩닥콩닥 거린다. 그리고 그 반응이 끝나면 감정기복이 훅- 밑으로 내려가 이유 없이 울적해진다.
이렇게 감정과 호르몬의 영향을 계속 받는 나라는 녀석을 위해 나는 감정에 상관없이 내 일상을 유지시켜 주는 여러 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감정 기복 방지 장치를 위해 몇 가지 루틴 처방을 내려주기로 했다.
당시에도 계속 저녁에 다이어트 식단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에 에너지가 있는 일, 머리 쓰는 새로운 일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 내가 마음껏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되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인 새벽을 선택했다.
새벽 루틴
5시 기상.
5시~6시 맨몸운동. 멍 때리기.
6시~7시 전날 못한 과제 완료. 일기 쓰기.
7시~8시 먹고 싶은 음식 아침으로 먹기. 준비하기.
8시 학교로 출발!
이 루틴을 거의 2년을 유지했다. 중간중간 빼먹은 적도 있고, 늦잠 잔 적도 있지만, 일주일에 4일 이상은 지켰던 것 같다. 당시에는 새벽기상, 미라클 모닝 등의 단어가 유행되기 전이기도 했고, 새벽에 일어난다고 하면 어르신 소리를 들을까 봐(..?), 혼자 새벽에 일어나는 게 어색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평범한 기준에서 벗어나 보이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다.)
아무튼 20살 남짓에 시작한 이 루틴으로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시간, 나는 나와 계속 대화를 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왜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아했는지, 어떻게 해소하는지, 내가 욕망하는 것, 내가 결핍을 느끼는 부분, 내가 3년 뒤에 이루고 싶은 것들.. 등등을 일기장, 노트북에 빼곡히 적었다.
그 루틴을 이어나가면서 3가지를 느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__9suNqwLg
1.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시간이 필요하다.
내 생각을 하기가 힘들어지는 요즘이다. 시간을 빼앗아가는 도둑들이 많아졌다. 유튜브, SNS, 지인의 지인의 약속,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불안, 질투, 게으름, 귀찮음 등의 수많은 감정들은 내가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을 막는다. 우리는 AI 가 아니고 사람이기에 감정과 꿈, 목표를 갖고 있다. 나만 알고 있는 '나'라는 자아가 조금씩 말을 걸 때 이걸 무시하고 그 시간도둑들과 친해지면, 어느 순간 내가 가졌던 꿈과 목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숨어버리고,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게 될 수 있다. 나는 풍부한 감정, 많은 꿈과 목표들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조용한 시간 속,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과감 없이 써 내려갔다.
나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떠나,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2. 노래를 통해 우리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루틴을 이어가며 최애 유튜브 플레이스트를 알게 되었다. 5시에 일어나 맨몸운동을 하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서 유튜브 검색창에 '강경민'을 검색했다.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인디 노래를 들으면서 동이 트는 창밖을 보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일기를 썼다. 지금도 이 영상은 내 최애 플레이리스트이고, 이 노래를 통해 2017년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내 2017 은 이 노래에 다 들어있어서, 이후에 있었던 다른 추억들과 겹치면 안 되니까 1년에 1~2번씩 들을 정도로 아껴서 듣고 있다.
3. 루틴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지, 루틴이 항상 우선이어서는 안 된다.
1,2번까지 보면 너무 착실하게 루틴이 내 삶을 바꿔준 것 같지만, 2년만 하고 끝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새벽 루틴을 6개월 이상 지속하면서 강박이 생겼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고 늦잠을 자면, 그날 하루는 이미 망한 것 같고, 내가 만든 약속조차 지키지 못해서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인터넷을 보면 멋지게 사는 사람들은 새벽 기상을 착실히 잘 이어나가는데, '왜 나는 못하는 것인가. 이걸 실패했으니 나는 멋진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인가' 지금 보면 얼토당토않은.. 자책을 했다.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면 아예 안 하는 게 나아'라는 심보였다. 그렇게 1년 6개월을 이어나갔지만, 결국 모든 루틴을 놔버린 이유는 '루틴은 완벽한데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서'였다.
지금 2025년의 내 모습과 비교하면 그때의 나는 대견할 정도로 갓생을 살았다. 지금의 나도 알고, 가족들도 알고, 모든 사람이 다 아는데, 딱 한 명. '2017년의 나'만 나를 막 대했다. 하루하루 내 몸이 건강해지고, 나랑 친해지고 있는 과정에 칭찬을 해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잠깐 나오는 생채기를 가지고 망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생채기조차 없애려고 내 세상을 견고히 지키려고 노력해서 과하게 예민해지기도 했다. 어느샌가 내가 이 루틴에 끌려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 A를 해야 한다!'라는 강압적인 문장들에 거부감이 크게 들었다. 루틴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내 몸이 편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융통성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 2017년의 나는 그 단계까지 성장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지 뭐.
8년 뒤, 지금의 나는 여유를 가지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느끼는 순간조차 스스로 나약하다 생각하고 지나쳐버렸지만, 지금은 멈춰서 숨을 고를 지점을 대강 알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A를 해야 한다!'는 말에 스스로를 몰아붙였지만, 사실 그건 '정말 간절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해아 한다'는 당위로 바뀐 것이었다. 명상을 하고 싶으니 해야 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으니 그렇게 해야 했다. 장학금을 받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 욕구를 이뤄줄 몸은 너무나 순수해서,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열심히 따랐던 것뿐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욕구를 해소하는 것보다, 욕구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한 자기 연민 연구의 선구자인 크리스틴 네프는 자신을 비판하기보다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태도인 자기 친절,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동일시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마음 챙김, 자신의 고통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 경험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인간 경험의 보편성 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운다고 설명했다. (Self-Compassion: The proven Power off Being Kind to Yourself) 이 세 가지는 나와 대화를 하면서 능력을 키워간다. 이 문구를 읽고 퍼뜩 ' 아 나도 내 욕구와 대화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이거 정말 하고 싶구나. 그런데 어쩌지, 지금은 내가 너무 피곤한데...'
욕구란 녀석은 어린아이 같아서, 처음에는 칭얼대다가도 내가 조곤조곤 타일러주면 조금은 진정한다. 그 아이의 말에 무작정 따라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본질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지금의 나와 상태를 비교해 가면서 조금씩 조율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글 쓰고, 음식을 차려 먹는 습관, 운동하고 스트레칭하는 루틴. 이런 삶을 만들어가는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다가 안되고, 또 하다가 안 되는 날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걸 실패로 보지 않는다. 이건 그저 '내가 좀 더 잘 살려는 욕구 중 하나'일뿐이다.
가끔은 '게으르게 살고 싶은 욕구'와도 마주친다. 나는 그 욕구도 무시하지 않고 대화한다. "오늘은 그냥 좀 쉬고 싶어. 운동, 명상, 독서 다 알겠어. 잠깐만 나 회복할 시간을 줘." 이렇게 욕구와 협력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친하게 지내다 보면, 나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루틴을 이어가도 좋고, 이어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중요한 건 그 루틴을 통해 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나와 친하다. 그래서 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