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찐 살 대학 가면 다 빠져'의 진실
나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먹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큰 행복은 맛집 탐방이다. 한국에는 어찌나 그렇게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지 지금 카카오맵에 저장된 맛집 표시만 200개가 넘어간다. 그리고 나는 왜 싫어하는 음식이 한 개도 없는 건지 다 내 입맛에 맞고, 19년 동안 살면서 365일 입맛이 없던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어른들이 음식을 먹고 있으면, 한 입만 달라며 온갖 애교를 부렸다고 한다.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에 갈빗집에서 새빨간 소 간을 소금에 착 찍어서 날름 먹었으니, 이 정도면 내 식성이 얼마나 좋았는지 꽤 짐작해 볼 수 있다.
타고난 식성 덕분에 친구들이 나를 묘사할 때면, '통통한 아이' 라고 불렀다. 뚱뚱이도 아니고 통통이라니 얼마나 귀여운가. 그게 다 키로 갔으면 하는 어머니의 바람이 통했던 것일까. 작고 통통했던 나는 대학생 때까지도 쭉쭉 커서 다행히 여성 표준 키에 도달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한동안 음식과 거리 두기를 시도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고3 때 찐 살, 대학 가면 다 빠진다.'는 이야기를 무수히 들어왔던 터라, 대학생이 되면 신데렐라의 할머니 요정이 나타나 '비비디 바비디 부' 마술을 부려서 내가 바라던 몸매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밤샘과제, 엠티, 야식, 동아리, 술모임 등으로 이미 생긴 먹성이 더 생긴 것이다. 밴드 동아리 첫 공연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 마법은 없구나. 내가 빼야 하는구나.
대학생 첫여름방학. 패기롭게 학교 헬스장을 등록했다. 당시 유행했던 연예인 다이어트 방법, 페이스북 동기부여 글을 저장했다. 매일 아침 계절학기 강의가 끝나면 학교 헬스장으로 갔다. 인터넷에서 본 플랭크, 스쿼트, 런지, 런닝머신 1시간을 매일 했다. 스쿼트를 너무 못했던 탓인지 헬스장 관장님의 눈에 띄었고, 그 이후로 헬스장에 갈 때마다 관장님이 넌지시 운동방법과 식단관리 방법을 알려주셨다.
관장님이 알려주신 모든 내용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고, 집에 돌아오면 간단히 저녁을 먹고, 매일 2시간씩 걸었다. 폭염주의보가 뜬 날에도 어김없이 걸었다. 인터넷으로 보니 밀가루, 설탕, 맵고 짠 음식은 먹지 말라고 하길래 방학 동안 내가 그렇게 사랑했던 빵, 라면, 탄산 등을 모두 끊었다. 너무 더워서 입맛이 없을 때는 그냥 하루 종일 액체만 먹기도 했다. 2주 만에 5 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다이어트에, 살도 쭉쭉 빠지니 신이 났다.
가족들과 헬스장 관장님께서는 너무 절식하는 거 아니냐며 나무라셨지만, 이미 다이어트 속도에 탄력이 붙었고, 적게 먹는 내 모습 자체에 도취되었다. 묵묵히 기존에 내가 세운 다이어트 법칙을 이어나갔다.
이쯤에서 김지만 인생 난생처음 다이어트 법칙을 알려주고자 한다.
1) 세끼는 꼬박꼬박. 그러나 작은 그릇 한 줌에 다 들어가게. (밀가루, 설탕, 맵고 짠 음식 제외)
2) 6시 지나면 저녁 안 먹어도 금식
3) 물 2리터 이상 마시기.
4) 매일 운동하고, 유산소 1시간 이상 하기.
생각보다 별거 없다. 근데 1번 하나 지키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8년이 지난 지금 이걸 어떻게 지켰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방학 내내 거의 모든 시간을 다이어트에 쏟아부었다. 배고프면 먹방을 보고, 안 먹어서 속이 쓰리면 나가서 물을 마시면서 걸었다.
그렇게 50일 동안 15KG을 감량했다.
성취감의 끝은 달콤해서 계속해서 나를 밀어붙였다. 이전에 입던 옷이 안 맞아서 새로 사야 했고, 주변에서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덕분에 건강한 입맛으로 강제로 바뀌었지만, 지나치게 빨리 감량해서 한동안 몸에 무리가 왔다. 그리고 몇 년 뒤에 크게 후폭풍이 왔는데 이 내용은 다음에 다뤄보기로 하겠다.
난생처음 다이어트 이후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지만, 20대를 통틀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점은
1) 운동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이전 편에도 언급했지만, 대학 입학 후 소심쟁이에서 주체적인 성향으로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었고, 운동은 거기서 오는 압박, 스트레스를 환기하기에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그리고 헬스장 관장님과 대화하면서 내 몸을 분석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앉아서 공부하는 게 내 몸의 쓰임인 줄 알았는데 사람마다 몸의 형태가 달랐고, 그에 따라 운동 방식도 조금씩 달랐다.
나는 생각보다 상체에 비해 하체가 길었고, 생각보다 체력이 좋았다. 유산소에 신기할 정도로 재미를 붙였다.
난생처음 다이어트 이후로 여러 운동을 찍먹 해보았다. 헬스, 러닝, 필라테스, 요가, 복싱, 크로스핏, 등산, 수영, 자전거 등등.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전공도 '간호학과'이다 보니 해부학을 배울 때, 운동과 연결시켜 공부하니 더 기억에도 잘 남았다.
2) 그리고 내가 가진 장점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이 아닌 내가 결심하고 선택했기 때문에, 이 다이어트 방법은 지나치게 빡빡하고, 힘들고, 외로웠다. 하지만 계속 움직이고 적게 먹는 습관을 만들고 계속 유지하는 습관은 내 몸 세포 어딘가에 깊게 남아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긴 성실함, 끈기, 의지, 꾸준함 등의 가치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능력을 주었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이렇게 힘들게 나랑도 싸워봤는데 지금 포기하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다음은 목표 몸무게 달성 후 개인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의 일부이다.
여기서 끝난 줄 알았겠지만, 난생처음 다이어트는 그저 시작이었을 뿐, 이때의 다이어트경험은 20대 이후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서 내 감정을 롤러코스터 가장 높은 곳에 데려다주기도 하고, 지하 10층까지 내리꽂기도 했다. 그만큼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를 접어들 때 급격한 다이어트는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시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이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고, 좋은 의미로 또는 슬픈 의미로 덕분에 많이 바뀌었다.
tip. 무작정 굶는 게 다이어트라고 생각한 이전과는 달리 '다이어트는 습관이다.'라는 프레임을 거는 매체들이 점점 많아지던 시기였다. 그 당시 인기 많았던 다이어트 매체는 제이제이살롱드핏, 다신, 다노 등이 있었다. 이 중 일부는 아직까지 순항 중이고, 일부는 플랫폼의 형태가 바뀌기도 했다. 체중감량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선택하고, 행동하는 게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