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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함께한 퇴사

by 김지만

그렇게 나는 병원 내의 한 구성원으로, 1인분의 퍼즐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병원을 다니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인간관계내 몸 관리였다.


1) 인간관계

내가 실수를 하나 하면 이 실수가 병동 전체에 소문이 날까 무서웠고,

그래서 조금 더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내가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행동이 움츠러드러 버벅거릴 때도 많았다.


압박 되는 상황에서, 나에게 나오는 방어기제는 다음과 같다.

(1) 억제 : 불안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걸 애써 무시. / 낙관적으로 ~하겠지 알아서 되겠지 (미리 추측하고 낙관적인 마음)

(2) 자기에게로 향함 : 자신에게 화풀이

(3) 합리화 : 그럴 듯한 이유 대기

(4) 지성화 : 경험보다 그냥 생각하고 관찰하기만 하는 거. 수준높은 토론 같지만 문제해결에는 도움되지 않음.


이런 4가지의 상황이,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실수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럼 나는 또 '자기에게로 향함'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내가 나에게 다시 또 삿대질을 해댔다.


그리고 이 4가지의 방어기제가 결국 환자에게로 잘못되게 향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잠을 자지 못했다.


2) 내 몸 관리

그리고 3교대 근무 특성상 밤을 새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 때 유독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폭식하는 경우도 많아서,

일에 대한 부담감과 3교대 근무 패턴 때문에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개인적으로 몸이 안 좋아져 방문한 병원에서

피검사와 초음파를 하고, 조금 더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말에 지금 다니던 병원에 갔다.

피검사를 받고 더 정밀한 검사를 위해 뇌 mri 를 찍었다.


부모님은 후에 이 사실을 듣고 당장 짐싸서 내일 내려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청개구리같은 나는 오기가 생겨 조금 더 해보겠다 말을 했지만,결국 교대근무를 더이상 하면 안된다라는 의사의 소견을 받고,

나는 1년여의 치열했던 병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퇴사를 며칠 앞두고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마지막 이틀 근무는 병가로 전환되었고, 자연스럽게 1년 1개월의 치열했던 병원생활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내가 생각대로 잘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머리는 결국 몸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을 다니며 몸이 안좋아지면서,

나는 대학생활동안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할 때 몰랐던 내 업무 패턴을

뼈저리게 알았다.



나는 급박한 상황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나는 공간을 옮기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나는 제한시간을 두고 빨리빨리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 내에서 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나는 내 행동을 정리하고 문서화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정리에 대한 강박 있음.

나는 침착한 공간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낮에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식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 (당연한거아닌가?.. 당연한 환경이란 없다..아니었다..ㅋ)



나는 업무에서 모든 내 에너지를 갈아 넣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커리어우먼은 아니다.

나는 나에게 상당히 높은 기대치를 갖고 그걸 넘지 못하면 음식으로 그걸 풀고, 넘으면 음식으로 보상을 한다.

나는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보는데, 그 과정에서 걱정과 불안을 느낀다.



나는 처음은 힘들지만, 거기서 교훈을 얻고 두번째에 잘 적용한다. 그때 이럴걸 이라는 생각이 꽤 강하게 머릿속에 남고 그렇게 헛발질한 시간을 메꾸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지금 글을 쓰면서, 다시 이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1) 집과 직장을 완전하게 분리할 것이다. 퇴근을 하면 집에서 재밌게 놀 것이다.


2) 직장에서 나에 대한 소문은 그리 신경쓰지 않고,

에라이 비속어 한 번 날려준 뒤, 내 건강관리에 힘쓸 것이다.



3) 직장과 휴식에 집중하고, 그 이외 자기계발은 하지 않을 것이다.


4) 우선순위를 조절할 것이다.

주변에서 뭐라 해도 나만의 배움 우선순위를 정해서,

모든 내용을 다 한꺼번에 익히지 않고 차근차근 해나갈 것이다.



5) 실수하면 즉각 보고할 것이다. 숨기지 않고 보고할 것이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하고 감추지 않을 것이다.



6)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미리 명확하게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7) 한명이랑 친해져서 붙잡고 전체 흐름 다 물어볼 거다.

업무 끝나고 제발 질문 받아주세요 얘기할 거다.

업무 시간 동안에는 업무 로딩될까봐, 무서워서 질문을 못했어서,

업무 끝나고서라도 제가 지금 이거 안물어보면 큰일날거같으니까

애써 모른척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더 큰 사고를 불러온다.

모르면 물어야 한다.


8) 난 차근차근 미리 하는 게 나에게 맞다.

난 마감기한에 맞추어서 빨리 후다닥 처리하는 거 어려워한다.

차근차근 천천히 정확하게 하는 게 제일 빠른 것이다.

후다닥 하고, 다시 점검하는 것보다 말이다.




첫 직장에서 1년 후 퇴사를 했고,

나는 내가 아주 적당한 때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더이상의 미련과 후회도 없이 정말 보람차게 일했고, 대학생활동안 느끼지 못했던

내면의 아주 깊숙한 감정들을 1년동안 압축해서 느낄 수 있었다.


어느때보다 밀도 있게 살아내어서

너무 내 자신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고 미안했다.


그 이후의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것도 내 몫이 되겠지만,

처음이라서 많이 힘들었을 나에게 포옹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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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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