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퇴사 마음먹기.
6월 퇴사 말씀드리기.
7월 퇴사하기.
퇴사는 그렇다 치고 가장 큰 고민 거리는 ' 뭐먹고 살지?' 였다.
블로그에 나의 과거를 회상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지원했다.
탈임상을 한 사람들의 강의를 들었고,
마음의 길을 잃고 정처 없이 떠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라는 궁금증을 품고 인터넷 속을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아래는 내가 1년동안 나를 탐색해 본 결과다.
1. 헬스트레이너
나는 내 지식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 그럼 헬스트레이너를 해보자.
헬스트레이너를 하려면 자격증이 필요하겠지?
직장을 다니며 취미로 준비하였고 5월에 친 필기시험을 합격했다. 퇴사를 준비하면서 헬스트레이너 실기 시험을 봤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한국체육대를 가고, 연수를 등록했다.
퇴사를 하고 나서도 제주도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온라인 연수를 듣고, 오프라인 연수를 들으러 다시 서울에 갔다.
그렇게 8월까지 5개월 간의 자격시험을 다 완료하고
헬스트레이너를 지원하려던 찰나, 경쟁이 심한 트레이너 사회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트레이너는 단순히 잘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자기 관리, 영업, 마케팅 등 많은 요소를 다 고려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운동과 가르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그저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헬스트레이너 하시는 분들을 너무 존경하지만, 막 퇴사를 앞둔 내가 성급하게 결정하는 진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원서의 커서가 깜빡깜빡 거리는 걸 며칠 내내 보다가 결국 지원서 작성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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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난 지금 이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헬스트레이너는 그냥 그 헬스장에 가서 지원하면 되는 거였고,
한 달을 하던, 두 달을 하던, 하고 나서 별로면 그만두면 되는 거였다.
나는 두려운 마음에 준비과정만 길게 잡았다.
오히려 자격 없이도 지원할 수 있는 거였는데, 사실 나는 간호사라는 이미 좋은 자격이 있는데,
나는 내 불어난 몸이 두려워, 잘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가 있어서 자격증 취득에서 멈추었다.
자격증만으로 되지 않고,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그 자격증으로 가족들과 친구들, 학생들 위주로 가르쳐주고 있지만,
내 행동이 먼저 있어야 그 뒤에 감추어진 자격이 보인다는 걸 알았다.
최근에는 노인 자격증을 땄다. 이걸 자격으로만 두지 않고, 써먹으려면
나를 좀 더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한국어양성과정, 요가자격증까지 다 생각했는데,
그냥 한 번 시도해 보고, 자격증은 같이 준비해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자격을 따는 과정에서 마음까지 더 들떠서 시행하는 게 어렵지,
막상 시작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 미국 간호사
사실 일반 회사 취업을 하려다 결국 3차 대형병원 간호사로 눈길을 돌린 것은 언젠가 나는 해외로 갈 것 같다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퇴사를 준비하면서 정말 많은 가능성을 고려했는데, 그중에 미국간호사가 있었고. 5월부터 차근차근 미국간호사 서류를 준비했다.
당시 미국간호사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에, 서류 제출 후 시험을 보기까지는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 과정을 염두에 두고, 일찍 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다시 미국간호사 면허를 합격하고,
경력을 쌓기 위해 병원 지원을 하고, 병원 합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다시 두려움이 올라왔다.
병원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도 느껴지는 소독냄새에 저항감을 느끼는 내가,
다시 이 회사에 들어가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며칠간의 입사 제의 연락을 뒤로하고, 결국 입사 철회를 했다.
1번과 마찬가지로,
미국간호사 자격증은 시작이었다. 자격증과 함께 충분한 경력이 있어야 했고,
나는 경력을 쌓을 만큼 그리 간절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전 병원보다 낮은 곳으로 갔다는 이미지에 나는 사로잡혔던 것 같기도 했다. 생각보다 나는 보여지는 이미지에 마음을 쓰는 편이구나.
아니면 내가 바라는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간호사의 형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나는 부서지기 싫었다.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하는 건 부서지지 않는다. 앉은 만큼 내가 지식을 얻고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돈을 벌고 일하는 것은 충분히 부서질 수 있다. 마음이 부서질 수 있다.
이제 막 퇴사를 하고 요양을 위해 제주도로 내려온 나는
요양을 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준비했다.
다들 앞서나가는데 나만 멈춰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게 너무나 두려웠다.
공부 잘하는 것과 취업하는 것은 다르고 / 취업하는 것과 일 잘하는 것은 다르고 / 일 잘하는 것과 돈 잘 버는 것은 다르고 / 돈 잘 버는 것과 행복한 것은 다르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행복하다고 연관 지어 생각했으니,
이번 경험은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을 퇴사를 하면서 시험해 가는 과정이었다.
3. 보건교사
사실 이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어릴 때 교사가 되고 싶었다는 생각으로 1학년 때 교육학 수업을 들었다.
그 해 운 좋게 1등을 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상위 4명 안에 들어서 보건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언젠가 교육계통에서 일할 수도 있겠지 라는 생각을 보험으로 둔 채,
졸업할 때 간호사 면허증과 함께 교원자격증을 하나 더 손에 쥔 채로 졸업했다.
이건 다시 헬스트레이너를 처음 생각했던 마음과 비슷하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건강의 가치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라는 핵심 가치관이 반영됐다.
이미 다 큰 성인이 아니라, 학교에서 어린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동의 중요성을 알려주면,
나중에 커서도 운동을 이어서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응원도 있었다. 부모님, 친구들, 언니들 등등 너라면 뭐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다행히 주변에 임용고시를 통과한 친구들이 몇 명 있었고,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도전적인 성향이고, 안정적인 것을 기피하던 나였는데,
결국 이 시험과 직장을 택하다니,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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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는 사실 나는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내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지'를 바꾼 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한데, 그걸로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으니,
그 과정이 꽤 험났했을 테다.
게다가 나는 1년간의 병원 생활에 대한 치유 없이,
25살의 나는
이제 뭐 하면서 먹고살지 고민이 많았다. 해외여행은 사치라고 여기고,
단 1초의 여유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하다.
보듬어줘도 충분한 시간일텐데.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 치열했던 과정을 거치면서
그때는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게 되었다.
그걸 용납해 주었던 주변 환경이 있었고,
극한의 스트레스 환경을 버텨준 몸뚱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직장이 '이래서 좋다' 라는 거에는 마음에 끌리지 않고
굉장히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며 나의 심신의 안정에 맞는 방향을 찾아나갔다.
내 생애주기, 가치관과 부합해서 그 진로를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서사가 있다면 나는 결국 나에게 설득당해 주저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편이다.
이름값을 하는 것, 확실한 돈 보상을 가져다주는 것에 혹할 때도 많지만
결국 내가 나에게 설득당하지 않는다면
결국 포기하고 좀 더 심사숙고한다.
첫번째 직장에서 퇴사를 하고
그 후에는 미래의 불안으로 나를 달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때의 나를 돌아보고 요양하고 있다.
이번 글은 나를 치유하는 글이다.
매일매일 불안에 떨며 살았던 나에게,
그래서 너가 여기까지 왔고 단단해졌다고 말하기 위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