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는 비평보다는 몰소 실천해 보이는 모범이 필요하다."(조제프 주베르)
올해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의 한 해였습니다. 바로 내 아이가 태어난 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항상 육아는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직 말도 못하면서 고집을 피우면서 뒤집고 떼를 쓰는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도 나중에는 허탈한 웃음이 지어집니다. 아이와 주말 내내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일요일 저녁이 됩니다.
결혼하기 훨씬 이전부터 아이를 돌보는게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학생 때나 20대 때 사촌이나 어린 친척동생을 돌보게 될 일이 있으면 아이를 울리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기술이 부족하니 무턱대고 놀리고 몸으로 놀았고 그 장난이 지나쳐 결국 울음으로 잠깐의 임시 육아는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나와 달리 비슷한 나이대의 누이가 자유자재로 아이를 다루었고 또 그 아이가 누이를 잘 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육아에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육아와는 그 결은 다르지만 대학생 시절 과외할 때도 그리 훌륭한 과외선생은 아니었습니다. 과외학생에게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주면서 실력향상을 인도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었으나 그 실력은 썩 신통치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저를 따라오게 하는 리더십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육아에 대한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훌륭한 아버지가 되보겠다는 생각으로 아빠 준비라는 것도 해보았습니다. 육아 관련된 책들도 사보고 아빠 육아와 관련된 동영상를 찾아보기도 하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훈육이 아니라 직접 모범을 보이는 아버지로서의 장및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TV나 핸드폰은 절대 보여주지 않고 책을 읽어주며 재밌게 놀아줘야 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빠로서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면서 훌륭한 아버지로서의 청사진은 자기 수련과 고행의 길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항상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고 아빠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로보트가 아니었습니다. 원하는 시간에 자지 않았고 필요한 시간에 먹지도 않았으며 시도때도 없이 울거나 떼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계속해서 현실과 타협하고 있었습니다. 우는 아이와 티비도 보았고 인터넷에 빠져 아이 앞에서 핸드폰을 켰으며 집에 들어오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놀아주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항상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 수행과 반성의 과정이라는 점을 느낍니다. 아이의 모습을 이해하고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그릇된 아빠로서의 모습에 반성하고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는 그런 과정 말입니다. 결국 최고로 훌륭한 아빠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아이의 인생에 아빠로서의 빈자리는 느끼지 않게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요.